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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가 실망스러웠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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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가 실망스러웠던 이유

[2009 위기의 KBS 해부] 드라마,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지난 4월 5일 KBS2TV에서 방송된 <개그콘서트>는 '끝장TV'라는 코너가 선보였다. 이 코너에 등장하는 네 명의 출연자들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드라마 주인공인 그들은 부부(夫婦)이며, 부자(父子)이고, 모자(母子)이며, 고부 관계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속 '비밀'은 항상 등장인물들 서로가 엿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묘사된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자의 복수로 마무리되며 허무하게 끝난다. 최근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우는 드라마들을 패러디한 것이리라.

말 그대로 최근 드라마는 끝장으로,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드라마속 주인공들은 모두 한 가족이며,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는 너무 복잡하다. 그들은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갈등 관계에 빠진다. 이처럼 드라마 속에서 묘사되는 '사회'는 과정은 생략된 채 오직 사건과 결론만이 존재한다.

물론 TV드라마 속의 비현실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의 반복,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가족관계의 묘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막장 드라마', 단지 '경영위기' 탓인가?

많이 언급되는 이유 중 하나를 살펴보면, 작년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 '경제 한파'라는 것이다. 경제 위기로 시청자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이 늘어났고, 심리적 압박은 자극적 설정의 드라마를 보고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해소된다는 것이다. 물론 일정부분 이러한 논의는 맞기도 하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여가 비용 지출이 비교적 덜 부담스러운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선회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방송사 역시 경제적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광고가 크게 줄어들고 방송사 경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청률 중심의 편성과 함께 시청률 중심의 내용구성, 특히 자극적인 설정의 드라마 제작에 집중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 조기 종영된 <TV 소설 청춘예찬> 포스터. ⓒKBS

하지만 지금 드라마에서 재현되는 내러티브의 특징과 편성의 문제를 단순히 '경제 위기'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이러한 '막장 드라마'의 징후는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온 방송사의 경영전략에서부터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방송사에서 질 높고 재미있는 드라마 콘텐츠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 대한 준비가 매우 중요하다. 드라마의 경우 특히 연출가와 드라마 작가의 발굴에 매우 많은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 대한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지금의 경제 위기와 맞물리면서 짧은 시간에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막장 드라마' 제작으로 그 방향을 선회했다.

이를 반영하듯이 KBS를 포함한 방송3사 모두 단막극을 낮은 시청률과 이에 따른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폐지했다. KBS는 다시 편성된 단막극 <드라마 시티>를 지난해 3월 다시 폐지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드라마 <TV 소설 청춘예찬>도 조기종영을 결정했으며, <TV소설>은 시청률을 이유로 폐지결정을 내렸다.

KBS 시청률 지상주의가 남긴 드라마들

이와 같이 KBS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시청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공익성이나 사회적 작품성을 떠나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으로 편성하는 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물론 방송사가 광고나 시청률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지금의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프라임타임대가 아니어도 편성해야 할 의무가 방송사, 특히 다른 어떤 방송사보다 공영방송인 KBS에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과 실험적 정신을 찾아볼 수 있는 드라마들을 점차 변방으로, 이제는 드라마의 폐지로 결정한 이후 남겨진 드라마들을 살펴보자. 최근 높은 시청률로 종영한 KBS 드라마들의 특징은 캐릭터만 존재하고 이야기 전개의 과정은 부재한다는 것이다.

▲ KBS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의 한 장면. ⓒKBS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은 연기자의 연기력 논란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비설득력과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주인공들의 비밀은 너무 쉽게 노출되고,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이중 삼중으로 꼬여있으며, 불치병까지 소재로 선택되면서 드라마의 완성도는 바닥을 쳤다.

제작단계부터 큰 주목을 받았던 <꽃보다 남자>는 이미 일본에서 유명한 카미오 요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했고, 일본과 대만에서도 제작한 드라마가 높은 인기를 끌었던 콘텐츠이기 때문에 해외의 드라마와 비교하면서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극적인 볼거리와 사건들만이 나열된 드라마로 끝나게 되면서 또 다른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물론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던 '즐거움'의 의미를 평가절하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원작이었던 만화 특유의 판타지는 드라마 속의 세계를 받아들이는데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며,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시청자들을 아우르는 효과를 가져왔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아직도 F4라 불리는 주인공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많은 관심이 쏠려있고, 수많은 광고뿐만 아니라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의 패러디를 통해서도 계속 즐거움을 전달해주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 금잔디가 왜 집단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세심한 설명보다는 집단 따돌림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었는지 자극적 비주얼만 나열하였고, 만화원작에서 보여줬던 자존심 강했던 금잔디는 수동적인 여자로 바뀌었다. 상황의 심각성, 혹은 사건의 해결 과정에 대한 묘사보다는 사건의 묘사, 비주얼 중심의 이야기들로 집중되면서 드라마 콘텐츠에 대한 '해석'의 즐거움은 많이 반감되었다.

▲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한 장면. ⓒKBS

<내 사랑 금지옥엽> 역시 주말 가족 시청시간대의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갈등구조, 스토리 전개 역시 자극적이고 억지스러웠다. 마지막 방송에서는 지금까지의 억지스런 설정을 무마하려는 듯 갑자기 '이 시대의 아버지'를 설명하는 내레이션과 자막으로 평화로운 가족을 묘사하는 장면을 보여주었지만, 이마저도 억지스러웠다.

이처럼 지금까지 살펴본 드라마들이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 미니시리즈로 분류할 수 있고, 각 드라마의 주 시청자층이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개방식이나 캐릭터의 묘사가 모두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이와 같은 드라마 제작 환경 속에서 서정적인 정서를 보여주었던 <TV소설>, 그리고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가와 연출가의 발굴 창구였던 단막극의 폐지는 앞으로 KBS가 시청자들과의 교감을 포기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유일한 농촌 드라마인 <산너머 남촌에는>이 폐지되지 않고 편성에서 살아남았지만, 농촌의 현실성과 비현실성에 대한 논란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방송된다는 것에서 안심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소재들을 더 많이 발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 KBS의 드라마 속에는 사교육으로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는 청소년, '88만 원 세대'라 불리는 대학생들을 포함한 청년세대, 계속 늘어나고 있는 1인 가구, 고령화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중장년층의 변화 등 한국의 인구 구성비의 특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비상식적인 내러티브 구조만을 복잡하게 엮는다고 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음을 방송사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 만을 주는 드라마, 시청자 외면 부른다

텔레비전 텍스트는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인기를 얻기 위해 다의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으며, 수용자는 그런 다의성으로부터 일탈적 해독을 경험하게 되다는 존 피스크의 말처럼 드라마 텍스트의 전체적 틀이 가부장적이거나 지배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고 해도 수용자들은 텍스트를 일탈적으로 해독함으로써 기존 가치, 도덕, 위계질서 등을 위반하는 저항적 즐거움을 느낀다.

하지만 지금의 드라마들은 과연 이러한 즐거움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을까? 드라마가 주는 "즐거움"은 수용자가 텍스트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지만, 지금의 드라마속 세상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만을 느끼게 한다.

KBS가 이미 폐지를 했거나 혹은 폐지를 결정한 드라마들이 부재한 지금의 드라마 속 세상은 원리, 원칙이 부재하며, 계층이 아닌 계급관계만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는, 해석의 여지가 없는 이와 같은 드라마를 보고 시청자들은 과연 어떤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

아무리 지금 '리얼리티'가 대세라지만, 드라마까지 이러한 사회의 불온하고 모순적인 '리얼리티'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 콘텐츠의 다양성과 완성도를 외면하는 KBS드라마의 제작과 편성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시청자들 역시 TV드라마를 점차 외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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