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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클라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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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클라멘

[한윤수의 '오랑캐꽃']<47>

엊그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나는 작년 여성의 날에는 베트남에 있었는데 하노이 시내는 온통 꽃물결이었다. 꽃장사가 거리거리마다 진을 치고 꽃을 사고 선물하고 받는 사람들로 시가지는 울긋불긋한 꽃대궐을 이루었다. 그날 꽃을 못 받는 여성들은 없으며 여성들은 일체 부엌에 들어가지 않고 다 놀러 간다. 그만큼 외국에선 여성의 날 행사가 대단하건만, 우리나라에서는 발렌타인 데이만도 못하니 한국으로 시집와 있는 이주 여성들은 보통 쓸쓸한 게 아닐 것 같다.

일요일은 우리 센터가 가장 바쁜 날인데,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공교롭게도 여성의 날이 하필이면 일요일이어서 우리 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쉬지도 못하고 더 고생했다. 보통 일요일엔 상담을 30건 정도 처리하면 그만이지만, 지나간 일요일은 삼일절이라 한 주 쉬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노동 상담만 48건을 처리했고 차례를 기다리다 지쳐서 돌아간 노동자들도 많았다. 덕분에 여성 통역들은 물 한 모금 먹을 새도 없이 바빴다.

하지만 의주 파발도 똥 눌 새는 있듯이, 바쁜 와중에도 점심은 먹어야 하기에 단골 중국집 테이블에 통역과 직원 모두가 둘러앉았다.

우리 센터에서 일하는 통역 4명은 모두 한국 남자와 결혼한 이주여성들이다. 나이는 39세부터 24살까지 다양한데 한국여자들처럼 나이로 서열이 정해져 서로 언니 동생 하는 사이들이다.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국 통역 와라펀은 속이 아프다며 밥을 조금 밖에 먹지 않았다. 왜 안 먹느냐고 했더니 그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금요일날 모처럼 태국 모임에 가서 매운 태국 음식을 너무 많이 먹었거든요. 매워서 속이 아프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뭐라고 놀리는지 아세요? 매운 거 못 먹는 거 보니 이제 한국 사람 다 되었대요."

그러면서 그녀는 쓸쓸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한국사람 다 되었는데, 우리 남편은 태국말도 모르고 태국 음식도 안 먹어요."

그녀의 푸념에는 짙은 원망이 드리워 있었다. 그녀는 외로워서 몇 번 태국으로 돌아가려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두 딸을 키우는 재미로 외로움을 잊고 사는 중이다.

39살인 그녀의 현재 고민은 두 가지다. 하나는 네 살 연상인 남편, 또 하나는 일곱 살짜리 큰 딸 채린이.

그녀의 집은 오산이지만 남편은 안성에서 돼지를 키우기 때문에 집에 잘 오지 않는다. 설날에도 오지 않아서 "남편도 없는데 무슨 떡국?"하며 떡국도 안 끓여 먹었단다. 그래서 올겨울이 더 추웠다는 것이다.

"태국은 안 추운데 여긴 너무 추워요. 여름만 빼고 다 추워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추위가 익숙해지지 않아요."

▲ ⓒ프레시안

그녀의 또 하나의 고민은 큰딸 채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닷새 밖에 안되었는데도 벌써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학원은 좋아했는데 학교는 왜 싫어할까? 채린이가 물었단다.

"엄마, 나 맨날 학교 가야 해?"
아이가 체력이 약해서 걱정인데다가 담임선생이 외국 출신인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많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다 된 그녀지만 알고 보면 아직도 겉돌고 사는 인생이랄까.

필자의 아내가 배도 아프고 춥다고 하는 그녀가 너무나 안되어 보였는지 그녀의 양 손을 잡고 엄지와 검지 사이의 합곡(合谷)을 계속 주물러주었다. 그러기를 5분여 마침내 끄윽 하고 트림이 나오자 와라펀은
"이상해요. 체한 게 쑥 내려가요."
하며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이렇게 조금만 보살펴주면 좋아하는 순진한 여성들인데! 한국 남편들이 조금만 신경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라 음식을 먹어준다든지 "안녕" "고마워" "천만에요" 정도는 그 나라 말로 해준다든지!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러시아 통역 최 스베틀라나가 <시클라멘>이라는 조그만 붉은 꽃 화분 하나를 사왔다.

그녀는 30살로, 아홉 살 많은 남편과의 사이에 일곱 살과 여섯 살짜리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남편은 미군부대 안의 백화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한다. 그녀는 현재 평택대학교에서 '다문화가족 복지' 전공의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외국인 복지센터에서 통역으로 일하거나 상담일을 하는 게 꿈이다.

그녀가 사온 꽃을 보고
"아니, 센터에서 꽃을 사줘야 하는데 거꾸로 되었네요."
하며 내가 미안해하자 그녀가
"여성의 날이라 사무실에 있는 여자분들에게 모두 하나씩 사주려다가 대표로 하나만 사왔어요. 시어머니 꽃을 사면서 하나 더 산 거에요."
하고 말했다.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한국인 며느리보다 더 극진한 것 같았다. 하긴 그녀는 우즈벡 출신으로 거긴 우리나라 60년대로 보면 된다. 하지만 시어머니에게 극진한 그녀에게도 가족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오빠(남편)가요 나는 니네 나라 말 안 배워도 되지? 니네 나라 갈 일 없으니까! 하는데 정말 서운했어요. 그리구요. 시어머니가요 우리 애들한테 러시아 말 못 쓰게 해서 속상해요."

아이들에게 어머니 나라 말을 못 쓰게 하는 건 누가 봐도 잘못인 것 같았다. 어머니 나라 말을 쓰게 하는 것이 2개 국어를 잘하는 유능한 한국인을 기르는 일이라는 걸 왜 모를까?

하지만 여성의 날인 그날 태국 통역 솜차이와 베트남 통역 짱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태국 통역 솜차이는 35살로 평일에는 과자 포장 공장에서 일하는 정식 노동자이다. 남편은 여섯 살 연상의 용접공으로 금슬은 좋은 편이다. 하지만 아기가 안 생겨 고민이다. 그날은 과자 공장에서 특근이 있어 센터에 나오지 못했다.

베트남 통역 짱은 유감스럽게도 그날부터 출근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 센터에 베트남 말을 조금 할 줄 아는 여직원이 입사해서 통역 없이도 상담이 가능하다고 내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짱이 있으면 상담하러 온 베트남 사람들에게 훨씬 더 좋았겠지만 재정 형편이 어려워 한 달 통역료 28만원이라도 절약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칠 전 나는 짱에게 전화로 양해를 구했었다.

"미안해요. 나중에 센터 형편이 나아지면 통역으로 꼭 부를 게요."
나 같으면 무척 서운하련만 짱은 씩씩하고 명랑하게 대답해주었다.
"목사님 괜찮아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나중에 불러주세요."

짱은 우리 나이로 24살 밖에 안된다. 대학교육은 안 받았지만 대학원을 졸업한 석사보다 똑똑하고, 언어 감각 또한 천부적이어서 베트남의 어느 명문대학 한국어과를 나온 사람보다 한국말을 더 잘한다. 한국에 온 지 1년여 밖에 안 되었지만 시댁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데다가 주위 사람들을 휘어잡는 능력이 있고 시집살이 1년 만에 분가했다. 그녀에게는 쓸쓸함이 없고 무슨 일을 하든 전능해 보인다. <브루스 올마이티>처럼! 남편과는 16년이나 차이가 나지만 그 정도 나이 차이는 그녀에겐 전혀 문제가 아니다. 생후 7개월짜리 딸 하나를 두었는데 남편이 딸을 보러 매일 일찍 칼퇴근할 정도이고 아내가 외출하면 혼자 아기를 즐겁게 본다. 남편은 제지회사 기술자로 인테리이고 가정형편도 유족한 편이고 금실도 좋다.

내가 여성 통역들의 프로필을 쭉 썼지만, 이날 내가 4명의 여성을 보고 생각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물론 짱은 한국 사회에 훌륭히 적응했다고 본다. 하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아직도 어설픈 위치에 있다. 외국인 센터에서 통역을 할 정도면 이주여성으로선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각 가정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다는 게 숨길 수 없는 내 느낌이다.

한 가지 기뻤던 것은 그날 오후 뜻밖에도 짱이 필자 아내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 온 것이다. 내용은 이러했다.

HAPPY WOMAN'S DAY
( ngay quoc te phu nu )
그 동안 잘해주셔서 너무 고맙고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예쁘고
지금처럼 기회 있으면 또 찾아뵐게요.


짱의 문자가 오는 바람에 모처럼 여성의 날 분위기가 살았다. 또한 체불임금을 받은 필리핀 남성이 케이크를 사왔는데 오후 3시쯤 방문객이 줄어든 짬을 이용해서 그 케이크를 잘라 먹는 것으로 기분을 냈다.

▲ ⓒ프레시안

그리고 다 저녁 때 밀린 퇴직금을 받은 베트남 노동자가 중학생 머리통만한 큰 배를 세 개 사왔다. 퇴직금을 받아준 사람은 남자직원이었지만, 나는 그 배를 통역 두 사람과 여직원 하나에게 나누어 주며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여성들한테만 줘도 되죠? 세계 여성의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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