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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정희 시절엔 탄피로 기표하기도"

박인규의 집중인터뷰[12/19] '선거전시회' 연 서울시립대 박물관장 염인호 교수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청취자 여러분, 오늘 투표하셨습니까?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대통령을 뽑는 투표가 지금 한창 진행 중인데요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도 합니다만 수많은 정치적 소용돌이를 거친 우리 국민들에겐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한다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역대 선거에서 사용했던 선거 포스터나 표어들을 보면 해방과 분단, 개발독재, 민주화 운동 등의 시대상이 잘 나타나 있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역대 우리 선거의 자화상을 볼 수 있는 '선거전(煎) 다시 보는 선거'전(展)을 열었던 서울시립대 박물관 관장, 염인호 국사학과 교수를 초대해 선거전을 통해 되돌아본 우리 나라의 선거 역사와 선거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염인호 교수입니다. 염인호 교수는 1957년 경남 함양 출생으로 81년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고 95년 국민대에서 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7년부터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현재 서울시립대 박물관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현재 제 17대 대통령선거가 진행 중인데요 우선 염교수님 투표는 하셨습니까?

염인호 : 아직 못했습니다. 마치고 바로 가서 하겠습니다.

박인규 :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급하시네요.

염인호 : 알겠습니다.

박인규 : 제가 10월 초부터 이달 초까지 서울시립대 박물관에서 '선거전(煎) 다시 보는 선거'전(展) 선거전 선거전 하니까 보통 선거전 하면 표를 얻기 위해서 싸우는 전쟁 전자를 쓰는데 이건 그게 아니죠. 선거 이전에 다시 보는 선거 전시회, 그런 의미입니다. 어떤 전시회였습니까?

염인호 : 역대 우리나라 선거 관련된,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의회선거 선거에 관련된 각종 유물들을 모아서 전시했습니다. 거기에는 투표함이라든지 아니면 출마자들의 홍보물 등등 이런 게 많이 있습니다.

박인규 : 선거관련 전시회라는 건 저도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데 이전에 이런 전시회가 있었나요?

염인호 : 제가 알기로는 아마 처음인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어떻게 해서 이런 전시회를 하기로 마음먹으셨어요?

▲ ⓒ프레시안

염인호 :
시립대학교 박물관은 근대생활사 특별기획을 항상 해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편엽서를 모아서 전시하기도 하고 기차 관련된 걸 모아서 하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선거도 우리 생활의 일부로 정착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기획했고 마침 또 올해가 대통령선거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박인규 : 우리나라 선거의 역사가 해방 직후로 따지면 한 60년이 넘어가는데 이런 전시회가 처음 열린다는 것도 좀 신기하기도 하고. 제 생각엔 우선 이런 전시회라면 일개 대학보다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하는 게 더 맞지 않나 싶은데, 선관위에서 한 번도 안 했습니까?

염인호 : 저희들이 할 때는 다른 기관은 신경쓰지 않고 했습니다만 알고 보니 그렇게 하지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선관위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서울시립대의 전시를 보고 자극을 좀 받으셨군요.

염인호 :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인규 : 앞으로 그럼 좀 더 대규모의 전시회가 나올 수도 있겠네요. 선거 관련 포스터나 투표함 같은 물품이라고 하셨는데 대략 몇 점이, 어떤 종류입니까?

염인호 : 저희들이 한 5백 점을 모았는데 이번에는 그 중에서 특별히 2백 점을 골라서 전시했는데요 크게 보면 선거홍보물들이 많습니다. 포스터, 투표함, 투표기구,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그걸 기념해서 사진첩을 만들기도 하는데 사진첩도 구해서 전시했고. 또는 1970년대 같은 경우네느 선거 관련해서 당시 영상물들이 있습니다. 유세장면 이런 것도 함께 선을 보였습니다.

박인규 : 좀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실 선거 관련 물품은 선관위가 가장 많이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런 5백 점이나 되는 선거 관련 포스터나 잘들을 어떻게 모으셨습니까?

염인호 :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희 서울시립대학교에서는 근현대생활사전을 늘 준비해왔기 때문에 그동안 여러 가지 물품을 모았는데 그 가운데서 선거 관련 자료들이 꽤 많이 있었고요

박인규 : 기존에 갖고 있던 게 있었다

염인호 : 네. 그리고 이번에 선거전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집중적으로 각체에 연락을 해서 많이 모았습니다.

박인규 : 신문보도를 보니까 인사동 같은 곳의 고서점에서도 구하셨다던데 아직도 그런 게 남아있습니까?

염인호 : 남아있습니다. 거기서는 선거전을 위해서 모은 건 아니고 역시 근현대사의 유물들을 쭉 모아왔는데 저희들이 선거 관련된 것을 집중적으로 선별해서 보내달라 이렇게 요청했고 거기서는 그렇게 응해서 이번에 집중적으로 모으게 된 겁니다.

박인규 : 이번 전시회를 다섯 개 분야로 나눠서 했다던데 설명을 좀 해주시죠.

염인호 : 제일 먼저 일제시대 자료관을 설치했습니다. 일제시대 때는 1920년부터 매년 3,4년마다 선거를 실시했는데 그때 나왔던 선거홍보물들이 많습니다. 두 번째 코너에는 이승만 시대 유물들을 전시했습니다. 거기에는 1948년 5.10총선, 그리고 50년의 제 1회 총선거, 또는 56년 있었던 제3대대통령선거 등등 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박정희 시대 코너라 할 수 있는데요, 박정희 시대 때도 선거가 많았지 않습니까, 선거뿐 아니라 국민투표도 많았는데 국민투표 관련된 자료도 많습니다. 네 번째는 특별히 1987년의 대단했던 대통령선거에 관한 유물을 코너로 만들어서 마련했고요,

박인규 : 민주화 이후의 첫 선거

염인호 :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가 투표함이라든지 기표용구 그런 것들만 따로 전시했습니다. 대개 다섯 가지 코너가 전시돼 있습니다.

박인규 : 13대 대통령선거까지만 전시돼 있는데 그 이후 것을 전시 안 하는 것은

염인호 : 이것은 어차피 역사박물관이기 때문에 최근 것은 역사의 범주에 넣기는 좀 어렵다. 그런 차원에서 20년 전 것까지만 전시했습니다.

박인규 : 90년대 이후는 아직 역사로 하기엔 뭐하고 현재다.

염인호 : 네. 자료는 갖고 있습니다. 많지만 그건 아마 세월이 흐르면 다시 한 번 전시할 기회가 있습니다.

박인규 : 말씀 들어보니까 시대별로 전시하신 것 같은데, 1920년대 일제시대라는 말씀을 들으니까 그때도 무슨 선거가 있었나 싶어요.

염인호 : 일반적으로 미군정시대부터 선거가 있는 걸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만 1920년부터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는 아니고 오늘날로 말하면

박인규 : 지방자치선거입니까?

염인호 : 네. 서울시의회 선거, 또는 도의원 선거, 그리고 읍,면 의회 선거 이렇게 있습니다. 좀 말씀드리면 일본 사람들이 3.,1운동을 겪고 나서 한국사람들을 완전히 배제하고는 통치하기 어렵다.

박인규 : 이른바 문화통치.

염인호 : 네. 그런 차원에서 뭔가 이 사람들 의견을 좀 들을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선거를 실시했꼬. 또 하나는, 한편으론 선거제도 자체가 세계사적으로 보면 근대적인 제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일본사람들이 한국에 근대적 제도를 실시한다 하는 선전 차원에서 실시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저희는 선거 하면 일단 다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군요. 식민지 시대에도 선거가 있었군요.

염인호 : 네.

박인규 : 실제로 보시면 그 당시 서울시의회, 경성부의회? 선거양상이 어땠습니까?

염인호 : 맞습니다. 그때도

박인규 : 그때는 보통선거가 아니었다는 말도 있던데

▲ ⓒ프레시안

염인호 :
네. 물론 보통선거가 아니고 지방세 5원 이상을 내는 세대주, 그리고 남자만 선거권 또는 핀선거권이 있습니다.

박인규 : 재산이 있는 남자만.

염인호 : 네. 그래서 보통선거가 아니죠.

박인규 : 혹시 그 당시에도 부정선거시비 이런 게 있었나요?

염인호 : 있었죠. 1931년 선거를 끝내고 나서 경성부의회에서 남긴 자료집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선거열기가 대단했고 열기가 지나친 나머지 선거부정사건도 있고 그것이 재판에 회부되기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박인규 : 어쨌든 일제시대에도 선거가 있었다고 하니까 선거가 곧 민주주의의 징표다,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염인호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인규 : 해방 이후에, 아마 56년이 최초의 본격적인 대통령직선표결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당시 신익희 선생이었죠 야당 후보가? 못 살겠다 갈아보자. 또 이승만 자유당에서는 갈아 봤자 별 수 없다. 상당히 살벌하기도 하고. 그 당시 배경은 어떤 거였어요?

염인호 : 50년대 하면 한국전쟁, 6.25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사람들 삶이 답답한 거죠. 도대체 죽은 사람들이 많고 그 유가족들이 많고, 농촌은 파괴돼서 피폐하고. 도시는 실업자가 넘쳐나고 그런 가운데 부정부패는 또 만연하고. 아주 답답한 심정들이 굉장히 많았죠. 그런데 본격적인 선거를 하게 되니까 야당 쪽에서는 일반 국민들의 답답한 심정에 호소한다는 차원에서 상당히 호소력 있는 구호. 못 살겠다 갈아보자. 이런 구호들이 나왔다고 생각됩니다.

박인규 : 그 당시 해공 신익희 선생이 열차유세하시다가 아마 심장마비로 돌아가시지 않습니까?
이게 60년대, 말하자면 이승만 정권의 몰락을 초래한, 3.15부정선거라고 하죠? 그때도 죽나 사나 결판내자. 좀 굉장히 살벌해졌어요.

염인호 : 그렇죠. 선거가 그때는 대단히 살벌했죠. 요즘처럼 이미지선거가 아니고 어떻게 보면 구호가 갖는 위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 물론 상황도 팍팍했습니다만 구호가 갖는 위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아마 그런 당시에는 호소력 있는 구호를 선정했다고 생각됩니다.

박인규 : 민주당은 죽나 사나, 그야 말로 이판사판 결판내자. 자유당 구호는 나라 위한 80평생, 합심하여 또 모시자. 이게 이승만 대통령 모시자는 얘기죠.

염인호 : 네. 이게 야당이 좀 더 선정적이고 좀 심하게 말하면 선동적인 구호를 사용했다면 여당인 자유당 쪽에서는 이승만의 카리스마에 기대는 구호를 많이 내세웠습니다. 그 당시 이승만의 카리스마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제 1회 대통령선거도 하여튼 나라 위해서 평생 헌신하신 이승만을 모시자든지, 합십하여 또 모시자, 그렇게 했습니다.

박인규 : 그 당시 포스터들이 남아 있습니까?

염인호 : 남아 있습니다. 저희들이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63년에 5.16쿠대타가 나고, 윤보선 후보가 박정희 후보였는데 그때부터는 뭔가 선거구호가 근대적이 됐다고 할까나, 좀 달랐다던데요? 여기 보니까 나라 운명 달린 표다, 사심 없이 바로 찍자. 빠짐없이 투표하여 이룩하자 복지사회. 조금은 톤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염인호 : 톤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제가 볼 땐 특히 공명선거를 많이 강조했습니다. 부정선거 하짐 말고 양심적으로 찍자. 그것도 일종의 선거전략 차원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워낙 1공화국 이승만 시대의 부정선거가 일반 사람들에게 남은 인상이 좋지 않기 때문에 아마 그런 구호를 네세웠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박인규 : 71년 7대 선거는 유신 직전의 선거였고. 그 당시 김대중 후보가 박정희 대통령의 총통제음모를 포착하고 있다고 해서 장충단유세였나요? 대단했다고 하던데, 그 당시에 또 이색 후보도 많았다고

염인호 : 말씀하신 대로 71년 선거는 대단히 긴장된 선거였죠. 그리고 당시 야당 후보께서는 이번에 지면 총통제로 가기 때문에 다시는 선거가 없다. 아주 결사항전의 각오로 했고 또 거기 맞서서 여당 후보도 마찬가지로 아주 대단한 각오를 갖고 했던, 대단히 긴장된 선거였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일반 사람들에게 약간은 긴장을 완화시켜주고 웃음을 주는 후보가 있었는데요, 유명한 진복기 후보가 바로 그 분인데요

박인규 : 카이젤의 수염...

염인호 : 네. 맞습니다. 우선 포스터에 카이젤의 수염으로 유명했던 분이고, 뿐 아니고 공약을 자세히 보면 대단히 기발한 공약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투표장소, 바로 그 장소에서 개표하자. 그 당시 개표부정시비가 있었으니까. 또는 1등이 된 후보가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엔 세 명을 추려서 결승투표를 하자. 그런 것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재밌는 건 그 당시 여섯 분이 후보로 나왔는데 그 분이 3등으로 당선됐습니다. 진복기 후보가. 그랬기 때문에 아마 결승투표를 했으면 진복기 후보도 결승투표에 갔을 겁니다.

박인규 : 진복기 후보는 그 뒤에도 출마하시지 않았나요?

염인호 : 네. 그 뒤에도 출마를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많은 분들이 대통령 선거 하면 진복기 후보를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어느 기자분께서는 추억의 대통령후보, 이런 타이틀을 붙인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많은 분들이 지금도 기억하실 겁니다.
71년 대통령선거에서 90만 표 차이인가로 박정희 대통령이 3선이 됐고 72년도에 유신, 이른바 쿠데타를 했습니다. 유신에 관해서도 국민투표를 했는데 그 당시에 관한 자료도 남아있다고 들었습니다만

▲ ⓒ프레시안

염인호 :
네. 당시의 유신홍보물도 저희들이 좀 갖고 있고요, 당시에 정부측에서는 유신을 반대하는, 유신체제를 철타하는 운동이 활발했기 때문에 한편으론 그것을 억누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 국민에게 직접 물어보자. 그래서 국민투표에 회부했거든요. 그래서 회부할 때의 대통령 담화문이라든지, 그 다음 선거포스터라든지 또 그 다음에 왜 이 체제를 옹호해야 하는가에 대한 홍보물, 이런 것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박인규 : 야당 쪽의 홍보물도 남아 있습니까?

염인호 : 저희들이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만 당시의 그런 건 아직 보질 못했습니다.

박인규 : 워낙 엄혹했던 시대기 때문에 그런 걸 공식적으로 찍어내기도 힘들었던 모양이죠. 말하자면 그 당시 자료는 주로 정부의 관변 홍보물이 많았다.
72년부터 87년까지는 사실 아주 엄혹한, 유신과 5공 군사독재 시절이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78년 총선, 또 85년 2.12총선은 말하자면 민주화를 위해 나아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이정표가 된 선거라고들 이야기하는데 그 당시에 관련된 자료들에서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염인호 : 78년도 선거는 자료들은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니 그건 우리들... 박물관에서 노력이 좀 부족한 측면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78년 국회의원 선거라고 하는 것이 일반인들이 크게 기대를 안 했던 선거였던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그 당시에는 유정회라고 해서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나머지 3분의 1 가지고 하는데 물론 야당 쪽이 의석은 적었지만 제 기억으로 1.1%인가 득표율이 앞섰던... 민심은 확실히 야당이다라는...

염인호 :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3분의 1은 대통령이 사실상 임명했고, 또 나머지 선거를 해봐야 또 당시에는 소선거구제가 아니고 중선거구제기 때문에 여당, 야당이 동반당선이 되기 때문에 국회의원 수가 야당이 많기는 어려운 체제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1.1%를 더 받았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민심이 집권당을 떠났다고 하는 걸 아마 보여줬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 이제 야당 쪽에선 대단한 힘을 얻고. 그리고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강경파가 새로운 당수로 당선되고.

박인규 : 김영삼...

염인호 : 그 분이 중심이 돼서 반유신운동을 하게 되고 그것이 나중에 유신붕괴의 중요한 발화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박인규 : 85년 2.12총선도 상당히 중요한 총선이었는데 그 당시 것은 자료가 많이 남아 있습니까?

염인호 : 그 자료도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포스터도 좀 갖고 있습니다만

박인규 : 좀 기억나는 건, 돌아온 사형수. 이철 의원 같은 경우... 기억나는데

염인호 : 네. 아주 특이한 후보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어쨌든 서울시립대에서 새로운,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선거전시회를 했기 때문에 선관위에서 좀 더 많이 모아서 본격적으로 해보면 또 우리가 민주주의를 한 번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염인호 : 네. 아마 앞으로 선관위가 중심이 돼서 좋은 전시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인규 : 10월 9일부터 12월 6일까지 전시하셨잖아요? 그동안 준비도 몇 달 동안 하셨을 테고. 준비하시면서 또 선거전시회를 쭉 하시면서 선거에 대해서 나름대로 색다른 느낌을 가지셨을 것 같은데요

염인호 : 여러 가지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만, 특히 87년 선거는 저희들이 자료를 많이 모았습니다. 굉장히 많이 모았는데 아마 87년 자료만 가지고도 아마 선거전을 한 번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료가 많습니다.

박인규 : 그때는 치열했죠.

염인호 : 선거가, 당시 저도 경험했습니다만 선거전이 상당히 요란하고 대단했죠. 그런데 쭉 공부하다 보니 선거전에는 우리 사회의 여러 계층간 혹은 지역간의 갈등관계가 아주 대단히 심했고 폭발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란한 선거가 끝나고 나서 갈등이 굉장히 줄어들었던 것 같은 느낌을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선거야 말로 우리 사회를 정화하고 갈등을 축소시키는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점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인규 : 선거가 국민통합의 계기가 됐다는 말씀인데, 선거전의 양상과 관련해서도 말이죠. 이번에 나온 '선거전 다시 보는 선거전' 자료를 보니까 56년도에 신익희 후보께서 한강 백사장에서 30만을 모아서 엄청난 사람을 끌어모으니까 그 뒤에 자유당정부에서 백사장 유세는 안 된다. 그랬다는 말도 있고. 장충단공원에서도 김대중 후보가 많이 모았었고. 87년까지도 여의도, 보라매공원에서 엄청났거든요. 이른바 장외집회. 이제는 사이버선거운동이다 그러는데 선거운동의 양상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염인호 : 그런 것 같습니다. 그건 누구나 다 느끼는 거지만 선거전 준비하면서는 보니까 56년도 신익희 후보하고 이승만 후보가 격돌했던 그 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에도 보면 정말 장외집회라는 게 대단히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세를 과시하고

염인호 : 네. 수십만 군중을 모아 놓고 열변을 토하는 그런 방식이 쭉 이어져 오고 했던 것 같습니다만 87년 선거를 계기로 해서 점차 미디어선거로 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유세장으로 가기보다는 TV 앞에서 조용히 후보의 유세연설 또는 토론을 보면서 판단하고 그런 선거로 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박인규 : 약 두 달간 전시회를 하셨는데 관람객들은 많았습니까?

염인호 : 기대했던 것보다는 많았습니다.

박인규 : 왔다 가신 분들이 어떤 말씀들을 주로 하시던가요 그걸 보시면서?

염인호 : 우선 다양한 층들이 오셨는데요 학교 내에서 학생들이나 또는 교직원들이 많이 보셨고. 지역 주민들도 많이 와서 봤습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 이끌고 와서 단체로, 거기서 수업하는 것도 봤습니다. 쭉 보여주면서.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다 낯선 광경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역 주민들이나 장년층 이런 분들은 오셔서 굉장히 추억에 잠기는 걸 많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선거도 대단히 요란하지만 이것이 10년 20년 지나면 이게 또 모든 이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한테는 똑같은 추억이 되기 때문에, 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박인규 : 투표함이라든가 여러 가지 선거물품들도 많이 수집하셨다던데 시기적으로 좀 특징이 있습니까?

▲ ⓒ프레시안

염인호 :
있습니다. 우선 투표함을 보면 저희들이 모았던 것이 나무 투표함인데 아주 묵직하고. 아마 그것은 투표 끝나고 나서 산골 마을에서 그걸 들고 차에 싣고 운반하는데 상당히 고생했던 것 같습니다. 그 직후 나온 게 쇠로 만든 철제투표함이고요. 그건 아마 보안이 잘 됐겠죠. 그 이후 나온 게 플라스틱이고. 그건 가벼워서 좋은 거고. 이번에 선관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만 중앙선관위에서 저희들한테 제공한 건 보니까 박스로 돼 있는 아주 가벼운 거였고요. 또 아주 재밌는 건 기표용구가 재밌는 걸 발견했습니다. 일제시대 때 투표용지를 보면 본인이 직접 이름을 썼습니다. 이름을 쓴 투표용지를 제가 봤습니다.

박인규 : 그럼 그 당시 글을 모르시는 분은 투표도 못했나요?

염인호 : 그 당시는 어느 정도 자산이 있고, 그래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48년 5.10총선거 때 선거법을 만들 때도 원래 논란이 있었습니다. 손으로 쓰게 하자. 그럼 문맹률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사표가 되는 게 많을 거다. 이렇게 논란을 벌였다가 결국은 동그라미로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런데 동그라미 치는 것도 이승만 시대 때 투표용지를 보면 지지하는 사람 밑에 동그라미를 그리시오, 그렇게 돼 있습니다. 아마 안에 연필 같은 게 제공돼 있겠죠. 그걸로 동그라미를 치는 거였는데 박정희 시대 초기에도 보니까 거기는 뭐라고 돼 있는가 하니 붓뚜껑이나 탄피로 찍으시오. 그건 투표용지에 돼 있는 게 아니고 선거에 관련된 자료를 봤습니다. 인주가 물론 옆에 있었겠죠. 탄피도 이용했다는 게 상당히 재밌는.

박인규 : 탄피, 군사독재시기라 그런가요?

염인호 : 그렇습니다. 그 이후가 되면 물론 인주와 붓뚜껑 같은 걸 직접 제공해서 거기서 찍게 돼 있는데 요즘 보면 인주는 필요 없으니까 찾지 마시오. 지금은 인주가 없습니다.

박인규 : 사람 인자가 딱 들어가 있는 걸로 찍더라고요.

염인호 : 지금은 찍기만 해도 인주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인주가 필요 없이 계속 찍는 것으로 사용하는, 그런 재밌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박인규 : 선거라는 게 민주주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긴 합니다만 일제시대에도 선거가 있었고. 또 군사독재 시대에는 말하자면 동원, 조작된 선거도 많았고 해서, 선거가 참 제대로 돼야 민주주의가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선거라는 것이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어떤, 중요한 것인지 마무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염인호 : 제가 선거전을 준비하면서 다른 나라의 선거제도도 좀 살펴봤는데 동유럽이나 일본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보통선거가 그냥 주어진 게 아니고 100여 년 이상을 거치면서 싸워서 일반 사람들이 싸워서 쟁취한 거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거나 또는 땀을 많이 흘리고 그런 거였습니다. 우리는 조금 특수한 경우입니다만.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도 보면 대통령직선제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선거가 있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는 그런 것을 상당히 중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대학교 총학생회 선거부터, 선거라고 하는 것은 빠지지 말고 상당히 중요시 여기도 반드시 참여해서 투표하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서울시립대 박물관 관장, 국사학과 염인호 교수를 초대해 우리 나라의 선거 역사와 선거가 갖는 의미.. 그리고 그 중요성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앞으로 투표 시간이 3시간 정도 남았는데요 5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는 이번 선거인 만큼 여러분께서 소중한 한 표를 꼭 행사하시길 바랍니다. 투표소에 가실 때.. 주민등록증이나 여권,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 챙겨 가시는 것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박인규였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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