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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읽어주는 위원장에서 詩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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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읽어주는 위원장에서 詩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5/15] 선린인터넷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이수호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하면, 강한 카리스마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인물로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노동운동가이기 전에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쳤던 국어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뒤에는 시를 쓰며, 문학청년을 꿈꿨던 청년시절의 순수함과 학생들에게 좋은 시를 낭송해주고, 제자들을 보듬어줬던 따뜻함이 숨어있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 해 최근 민노총 위원장직을 사퇴한 뒤에 미련 없이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올해부터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서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며, 최근에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스승의 날을 맞아 노동운동가에서 다시 교단으로 돌아간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봅니다. 그가 원하는 스승과 제자상은 어떤 것인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이수호 선생님입니다.
오늘 만나볼 이수호 선생님은 영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1974년 경북 울진군 근남면 제동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서울 신일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과 관련하여 해직됐습니다. 해직 10년만인 1998년에 서울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다시 복직됐지만, 2001년 전교조위원장, 2004년 민주노총 위원장이 되면서, 교단을 떠나야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20일 민노총의 간부비리와 내부갈등이 빚어지자 모든 책임을 지고 위원장을 사퇴했고, 올해 1월부터 선린인터넷고등학교로 돌아와 현재 국어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직과 더불어 최근에는 <나의 배후는 너다>라는 첫 시집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박인규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이수호선생님 : 반갑습니다.

박인규 : 우선 스승의 날 축하드리고요 저희 프로그램에서 사실은 작년 5월 24일에 민주노총 위원장님으로 초대를 했었는데 오늘은 선생님으로 모시게 됐습니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신 지 두 달 남짓 되셨는데요. 맨날 투쟁을 하시다가 어린 학생들 가르치시니까 소감이 어떠십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97.3MHz)'

이수호선생님 : 저는 천생 교사고 교육 노동자기 때문에 제가 전교조 위원장이나 민주노총 위원장을 할 때도 항상 스스로 교사다. 교사의 역할 중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이런 역할도 나는 요구받았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면서 늘 교사라는 자기 신분을 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이제 나이도 이렇게 됐고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하고 또 그만두는 과정이 별로 흔쾌한 과정이 아니고 해서 그런 감정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아이들에게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는 이제 바깥으로 안나올 꺼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좀 더 새롭고 아이들을 만나는 감회가 그 전보다는 뜨거웠죠. 그런데 아이들은 그 사이에도 많이 변했고 우리 사회가 변하는 만큼, 저의 그런 마음과 아이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 사이에서 아직도 제 눈높이를 아이들에게 맞추어 조정하는데 여러 가지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우선 말씀하신 중에 다시는 안나올 꺼다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 앞으로 교사생활로서 살아가신다 그런 뜻?

이수호선생님 : 저는 교사로서 교육운동이나 노동운동에 헌신하고 봉사를 했습니다. 사실 민주노총 위원장 역할까지 했기 때문에 이제는 최전선에 나가는 그런 일은 이제는 없지 않을까 생각이 되고요. 가만 그래도 뒤에서 어려운 우리 노동운동이나 민주노총 운동을 위해서 함께 하고 도와주는 역할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충분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고 다시는 최전선에 서서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나가는 일은 이제 저로서는 그만해야 되지 않는가.

박인규 : 앞으로 주연보다는 조연으로?

이수호선생님 : 예.

박인규 : 교사 생활을 시작하신 지가 이제 32년째이십니다만 10년 동안 공백도 있었고 2000년대 이후로 왔다 갔다 하신 게 있으셔서 올해 3월 첫 수업이 설레셨을 거 같아요. 어땠습니까?

이수호선생님 : 예, 그렇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학 수업을 하게 되어서 저로서는 다행스럽게 생각을 하면서 첫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아이들에 대한 생각, 관점이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요즘 아이들이 긴장하는 시간이 길지 못한 것 같아요. 아마 인터넷 시대 이런 것 때문에 그런지 계속 클릭하면서..

박인규 : 몇 초안에 승부를 내 줘야, 결과를 내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수호선생님 : 자꾸 새로운 뭔가 변화를 줘야하는데, 한 5분 이상 똑같다기 보다는 어떤 데 집중적으로 얘기하면 금방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내가 뭔가 잘못됐구나, 우선 이 아이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아이들에게 맞춰가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의 연설투라던지 상당히 심각한 얘기를 하게 되는데. 요즘 아이들이 심각한 거 안 좋아하잖아요. 가볍고, 모든 것들을 이렇게 생각하니까. 사실 생각보다는 힘들죠. 오히려 몇 천 명씩 놓고 민주노총 간부들이나 조합원들을 교육할 때는 그래도 오히려 괜찮았는데 이게 더 힘들구나 그런 생각하고 그랬어요.

박인규 : 아직 노동운동 지도자 때가 아직 안 벗어지신 모양이군요.

이수호선생님 : 예, 저는 꾸준히 그런 삶을 살면서도 교사란 입장을 견지해 왔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어렵다. 그런 생각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학생들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저는 인간의 본성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고 보고 그것과 함께 간다면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로 간다 하더라도 아날로그도 필요한 게 아니냐. 농담 삼아 저는 다 디지털 하면 아날로그로 한 번 하고 아이들이 그것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언을 오히려 다른 옆에 선생님들이 하더라고요. 선생님은 그냥 아날로그로 하십시오. 너무 자꾸 멀티 시스템을 활용한다든지 입체적으로 수업을 한다든지 이런 기법들이 상당히 발달했는데 이런 거 저런 거 신경쓰다 보면 자기 페이스를 잃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박인규 : 학생들이나 선생님이나 민주노총 위원장 하면 뭐, 거창한 직함이고 해서 그런 거 가지고 반응이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까?

이수호선생님 : 보통 그렇죠. 처음 갔을 때 다들 긴장하고 어떤 차원에서 보면 인기인 대하듯이 그렇게 대하기도 하고 또, 교육운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저에 대해서 잘 알죠. 그래서 즐거워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이들은 요즘 검색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서 네이버든 뭐든 제 이름만 치면 주루룩 나오니까 그런 정보를 가지고 좀 신비롭게 대하기도 하는데 역시 요즘 아이들은 그런 거 크게 인정하지 않아요.

박인규 : 문학을 좋아하셔서 그동안 산문집도 내시고 동화집도 내셨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 , 라는 시집을 내셨는데 사실은 제목이 사실은 셉니다. 어떻게 해서 시집을 내시기로 결정하셨는지요.

이수호선생님 :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저는 국문학 전공을 했고 시도 좋아했고 늘 좋은 시를 베껴서 읽고, 남에게 읽어주는 것도 좋아하고 특히 아이들 가르치면서 좋아했는데, 그러는 사이에 저도 조금씩 써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사실은 전교조, 노동운동 시작하면서 굉장히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예를 들면, 감옥에 간다거나 농성을 하면서 혼자 단식을 한다거나 이럴 때 그런 단상이나 이런 것들을 짧은 글이죠. 긴 글을 쓸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니까. 글을 써놓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번에 작년 10월 20일 날 그런 사태가 있고, 갑자기 시간이 생기니까 그동안에 정리도 해보고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도 하고.. 그런 수단은 글 쓰는 거 이상 없다고 보고요.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긴 글 이런 거 보다는 군더더기 다 걷어내고 아주 짧게 쓰는 게 더 좋더라고요. 그런 글들을 써서 함께 하는 카페에도 올리고 나누어보고 이러는 사이에 같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책으로 펴 내보자 이래서 부끄럽게 이 나이에 첫 시집이라고 내게 된 거죠.

박인규 : 지난 가을 겨울에 거쳐서 본인의 50넘는 반세기 넘는 인생을 시집으로 정리를 하신 셈이군요.

이수호선생님 : 네, 그렇게 봐야겠죠.

박인규 : 노동 운동 하시면서 쓰신 농성이란 시가 있더라구요. 잠깐 제가 읽어보자면, 이게 아마 전교조위원장 하시면서 사립학교 법 개정하라고 국회 앞에서 20일간 단식농성 하시면서..

이수호선생님 : 한나라 당 당사 앞에서 제가 한 20일 단식하면서

박인규 : 열흘 째 쓰신 건데,

<농성>

그대
먼 산사에서 꿈쩍도 않고
나는 오늘도
초라한 내 마음의 성 안에
혼자 갇혀 있네.

말하자면 이게 서로 교감이 안 되는, 소통이 안 되는 그런 상황인거죠?

이수호선생님 : 예, 그렇습니다. 저희들이 운동을 하면서 거의 마지막 수단으로 머리도 깎고, 단식도 하고, 농성도 벌이고 하는데, 사실 그런 것들은 상대로 하여금 얼마나 절박한가를 보여주는 그런 것이고 우리편으로 하여금 정말 우리가 긴장해서 싸우자 그런 것인데 요즘 우리 운동이 그런 절박성이나 진지함이 부족하잖아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저번에 지율 스님 농성 할 때도 보셨지만 죽어가도 죽어가는가. 요즘 평택에서 미군기지 확장 때문에 난리를 치고 있지만 사실 제가 참 시적으로 '그대'로 표현하고 '먼 산사', 아무 반응도 없이 있다 이런 표현인데 그런 안타까움 그런 것들을 그때 메모했던 것을 다시 정리하고 해 본 거죠.

박인규 : 사람에 대한 어떤 애정이나 존경이 갈수록 없어지는..

이수호선생님 : 그런 걸 안타까워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대를 아주 나쁘게 표현하기보다는, '그대'라든지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서 끊임없이 그런 교감과 관계의 회복 그런 것들, 인간 관계의 중요함 이런 게 끊임없이 제가 추구하는 그런 가치라고 해야겠죠.

박인규 : 이수호 선생님은 전교조 위원장 하실 때나 민주노총 위원장 하실 때도 회의 앞서서 심각한 일이 있으면 시도 한 편 읽어주시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이수호선생님 : 그렇습니다. 특히 전교조 같은 경우 교사들이니까 그런 분위기니까 덜한데 민주노총 같은 경우 굉장히 살벌하고, 특히 생산직 노동자들이나 노동 운동의 최전선에 있는 활동가들은 항상 긴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제가 시를 하나 읽겠다고 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저도 분위기에 안 맞는 거 같다고 하면서도 거기 맞는 시를 골라서 읽어주고 하면, 마음도 좀 편안해지고 일체감이 들고 또 때로는 시가 갖는 명징한 선동성이라든지 어떤 본질의 정수를 꿰뚫어 표현하는 그런 것들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그 뒤부터는 당연히 회의 시작하기 전에 위원장이 시를 읊는다. 내가 바빠서 준비를 못하면 오늘은 왜 안 하는가, 재미있게 했습니다.

박인규 : 나의 배후는 너다 이번 시집의 인세를 좋은 일에 쓰시기로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수호선생님 : 요즘 시가 원체 안 팔려서 얼마나 수입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이걸 부끄럽게 내게 된 또 하나의 동기는 또 하나 인세 수입이나 판매 수입이 생기면, 사실 노동운동의 최전선에 있는 활동가들, 운동가들이 굉장히 열악한 조건에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의 어려움에 동참하는, 복지문제라든지 또는 이런 여러 가지 돕는 일에 써 보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하면서 마침 이제 초판 2000부를 발행을 했어요. 10% 인세를 200만원을 통장에 넣어 주더라구요. 그래서 그거 가지고 우리 민주노총 상근자들이 수련회를 간다고 해서, 일부를 수련회 가서 그냥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재미있게 해라, 이렇게 주기도 하고요. 또 관계가 따뜻해지고 좋아지는 그게 이제 더 중요하고요. 그런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거죠. 제가 한 걸음 뒤에 물러서서 명칭은 지도위원이지만 그런 방식으로 후배들을 격려하고 함께 하는 그런 걸로 해볼까 합니다.

박인규 : '나의 배후는 너다' 이번 시집에 89편의 시가 실렸다고 들었는데요. 그 중에 딱 한편만 고르라고 한다면 좀 어려우시겠지만 한편만 골라서 낭송을 해주시겠습니까?

이수호선생님 : 제가 '한계령'이라는 시인데, 우리 민주노총도 그렇고 우리 사회도 그렇고요. 양극화되고 자꾸만 갈라지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 냈으면 좋겠다는 그런 취지인데요.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한계령>

누구나 마음속에 한계령이 있다
내 속에도 시월의 마지막 서릿발로
칼바람 맞아 더욱 청청한 소나무로
때론 돌 틈새 흔들리며 피는 패랭이 꽃으로
한계령은 솟아 있다

누구는 내려가라 내려가라 지친 내 어깨를 떠민다지만
청설모 고라니 가쁜 숨도 안아주는 산마루
오르며 지친 내 손 잡아주는 형으로
산을 쪼개거나 가르지 않고 넘겨주는
이쪽 저쪽 가리지 않고 이놈 저놈 고르지 않고
그냥 덥석 안아 넘겨주는
넉넉한 형으로 있다

박인규 : 네 잘 들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 오늘은 지난 해 10월까지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노동운동의 중심역할을 해오다 올해부터 선린인터넷 고등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하신 이수호 선생님과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박인규 : 오늘은 지난해까지 민주노총 위원장, 현재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을 하시는 이수호 선생님과 함께 하고 있는데요. 스승의 날인만큼, 스승에 관한 말씀을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89년도에 전교조가 만들어질 때 사회 일각에서는 어떻게 선생님이 노동자냐 하는 반론도 많았고, 오늘 아침에 나오다가 조간신문을 봤는데 어떤 신문에 이런 기사가 있더라고요. 요즘 교사들이 최고 인기 직종인데 과연 스승으로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문제제기를 했던데요. 30년 교직생활 하셨고, 다시 학교 가시면서 요즘 선생님들 보시면서 처음 이수호 선생님이 시작하실 때하고 달라진 것 같습니까?

이수호선생님 : 네, 많이 달라졌죠. 요즘 고용상태가 어려우니까 정년이 보장되고 방학이 있고 또 출퇴근 시간 분명하고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소위 인기라는 게 있는데 저는 그보다는 가르치는 일의 중요함 가르치는 즐거움 이런 것들로 요즘 애들 말로 인기짱 이었으면 좋겠다, 저는 솔직히 급료나 안정성을 떠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인데요. 제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느끼는 것은 학교의 체제나 특히 교사들의 태도나 여러 가지 준비나 이런 것들이 그 전보다 훨씬 안정되고 좋아졌다는 겁니다. 우리 교육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고 제도상의 문제고 관행의 문제고, 사교육 시장이 이렇게 되다보니까, 학교를 소위 공교육을 잘 못 이해하는 학부모님들이나 사회가 학교에 대한 그런 질책을 하는 거지 학교는 실제로 들어가 보면 그렇지 않다.

박인규 : 말하자면 교장과 교사와의 관계, 교사간의 관계,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가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97.3MHz)'

이수호선생님 : 그럼요. 좋아졌죠. 사실 옛날에는 교장들의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게 강했습니다. 지금은 일부 남아있지, 그렇지 않고요. 학생과 교사사이는 더더욱 그렇죠. 함부로 폭력적인 체벌을 한다거나 무슨 언어폭력을 쓴다거나 거의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당장 감시를 당하고 있고, 요즘 아이들이 다 있으니까 그렇죠.

박인규 : 카메라 폰도 다 있으니까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전교조가 학교 분위기를 개선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보시겠죠. 또 일각에서는 전교조 자체가 너무 권력화 했다는 비판도 있고요. 최근에 사립학교법 개정을 보면, 전교조 선생님들이 중등교육을 좌지우지한다, 문제다 이런 식의 이야기도.. 전교조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수호선생님 :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은 전교조 교사이냐 아니냐가 구분이 안 됩니다. 다 열심히 하고요. 그 전에는 전교조 교사 식별 방법이라고 해서 아이들에게 아주 잘 해주는 교사, 성실한 교사가 오히려 구분이 된,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전교조는 결국 잘못된 제도, 정책, 국가권력이나 이런 걸로 나타난다면 그걸 향해서 또는 사회의 잘못된 관행이나 이런 걸로 나타나면 거기에 대응해서 싸우는 그런 힘으로 남아 있을 수 밖 에 없습니다. 저는 그게 권력화라고 한다면 더 큰 힘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사립학교 법 같은 경우는 우리 전교조가 생각할 때는 정말 제대로 고쳐져야 하는 거거든요. 우리나라 교육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걸 아직도 사유재산으로 생각하고, 사유재산을 침해한다고 해서 헌법소환까지 하는 이런 몰지각한 사회, 이걸 우리 교육 전문가들이 수용을 해라라고 한다면 그건 안 되는 거죠. 그런 것 앞에서는 더 권력화 할 필요가 있다고 죄송한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인규 : 예전에는 전교조선생님하면 촌지 안 받는 선생님, 그런 게 없어질 정도지만 아직도 고칠 부분이 많다, 다만 이제 예를 들면 계기 수업이라는 거 있지 않습니까? APEC 때라든가. 이라크 파병 때라든가. 그런걸 보면서 선생님들이 너무 일방적인 것만 가르쳐주지 않느냐. 학생들의 판단력을 키워주기 보다는 주입시킨다는 표현까지 나오고 그러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수호선생님 : 계기수업은 7차 교육과정이 아니라 하더라도 수시로 하도록 우리 교육과정에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하고요. 사회가 혼란스럽고 이럴 때, 학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고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자꾸 일방적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할 만큼 되어있지도 않고요. 그 자체 문제제기하는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불안해하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보수적 성향이 걱정스러운거죠. 한때는 4.19도 얘기 못하게 했지 않았습니까?

박인규 : 그렇죠. 물론 아마 사회에서도 계기 수업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일방적이냐 아니냐 쟁점인 것 같습니다.

이수호선생님 : 일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박인규 : 다시 30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다시 하시겠다고 마지막으로 교단으로 돌아오셨는데요.앞으로 학생들이랑 친하게 지낼 것인지 각오를..

이수호선생님 : 끊임없이 제 눈높이를 학생들에게 맞춰가야겠죠. 그리고 제가 교사로서 교단을 떠나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동안 저는 많은 체험을 했고 또 많은 느낌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보면 제 자신 자체가 최근 현대사화의 한 모습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이 아이들에게 부교재가 되기를 저는 원하고, 제가 본 것들, 제가 느낀 것들 제가 깨달은 것들을 가지고 어느 쪽으로 정말 치우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이런 모습도 있고 이렇기도 하다라는 걸 가르치면서, 저는 교육이 일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교육적 삶을 함께 살면, 저도 배워서 더 성장하고 아이들도 더 크고 그러면서, 그냥 성적을 가지고 경쟁하고 대학을 가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서로가 자기를 성숙시켜 나가고 또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인간들로 함께 자라가는 것, 그런 일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박인규 : 선생님의 파란만장했던 삶이 이른바 참교육의 밑거름이 되길 기대해보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 오늘은 민주노총 위원장에서 고등학교 평교사로 돌아간 선린인터넷 고등학교의 이수호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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