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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아침, 인터넷으로 아름다운 詩 한 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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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아침, 인터넷으로 아름다운 詩 한 편을"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5/12] '詩 배달부'로 나선 도종환 시인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직장인이 하루에 받는 이메일 중에서 90%가 스팸메일이라고 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스팸메일 지우는 게 하루일과가 될 정도죠. 하지만, 쏟아지는 스팸메일 속에서 반가운 사람에게서 온 안부메일이나, 좋은 글을 만나게 되면 그야말로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 되기도 합니다.

기분 좋은 하루를 열어갈 수 있도록 '아름다운 시'를 배달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도종환 시인입니다. 3년 전, 지병으로 교단을 떠나, 산골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가 최근 4년 만에 신작 시집을 내고 시를 배달하는 문학 집배원으로 나서게 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새로운 시작활동과 함께 문학집배원으로 나선 도종환 시인을 만나 그동안의 은둔생활과 앞으로의 문학활동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도종환 시인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1986년 부인과의 애끓는 사별을 문학으로 형상화한 시집 <접시꽃 당신>을 발표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접시꽃 당신'은 당시 100만 부가 넘게 팔렸고 1988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가 해직 10년만인 1998년 충북 진천 덕산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재개했고, 교육문화활동에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3년전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희귀병으로, 2004년 교단을 떠나게 됐고 최근까지 요양생활을 해오다, 지난 4월 신작시 60편을 모아 <해인으로 가는 길>이라는 시집을 펴내면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박인규 :
안녕하십니까?

도종환 시인 : 네 안녕하세요.

박인규 : 우선 무엇보다 건강이 어떠신지 여쭤보고 싶은데요

도종환 시인 : 네, 괜찮습니다.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이 있어서, 그 덕분에 지금은 괜찮습니다.

박인규 : 속리산 근처 산골에서 한 2년 동안 말하자면 은둔생활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도종환 시인 : 네 번째 봄을 맞았으니까 만 3년이 좀 넘었구요. 은둔이라고 하면 좀 너무 거창하구요, 그냥 좀 쉬면서 지냈습니다.

박인규 : 산에서 지내신 게 건강을 회복하시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신 것 같아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97.3MHz)'

도종환 시인 : 네. 깊은 산 속에 아주 외따로 떨어져 있는 황토집이거든요. 산이 주는 힘, 숲과 나무가 주는 치유력, 황토가 주는 생명력이랄까 그런 것들이 있어서 굉장히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박인규 : 자연의 치유력이란 게 대단한 거 아닙니까.. 지난 5월 8일이 어버이날이고 월요일이었는데, 그 날부터 도종환 시인께서 집배원이라고 해야 될지 우체국장이라고 해야될지.. 시를 배달하시는 일을 했는데. 그날 어버이날이라서 이승하 시인의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라는 시를 이메일을 통해서 전했다고 들었습니다.

도종환 시인 : 플래시로 제작해서요, 직접 낭송도 하고..

박인규 : 글만 보는 게 아니라, 그림도 나오고 사람의 육성으로 낭송이 되는 거군요? 제가 알기로는 매주 월요일에 하신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시게 됐는지..

도종환 시인 : 2가지 이유가 있겠는데요, 하나는 지금 문화예술위원회 내 문학나눔 사업추진위원회가 있어요. 그래서 문학을 소외계층에 있는 분들과 어떻게 나눌까 고민하던 중에 시도 직접 사무실 책상, 안방으로 배달해 드리자 이렇게 얘기가 됐구요. 또 집배원이라고 하면 또 하나 연상되는 게 있는데, 제가 산 속에서 3년 간 지내는 동안 저를 늘 찾아오는 집배원이 한 분 계셨는데요, 이 분은 저 있는 산 속까지 우편물 하나를 갖고 오시다가 중간에 칡꽃이 예쁘게 피어 있으면 꺾어오시고, 산도라지가 있으면 캐 갖고 오시고, 좋은 열매가 있으면 따 갖고 오셔요. 잠깐 오토바이를 멈추고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뭔가를 가져가려는 생각. 우리는 그저 출발에서 목적한 데까지 곧장 가는 삶을 사는데요.. 가다가 한번쯤 더 생각해서 이 사람에게 뭐가 도움이 될까를 생각해서 뭔가를 가지고.. 기쁨과 함께, 늘 찾아오는 그런 집배원을 만났어요. 이 분은 저한테만 그런 게 아니고 산 속에 시골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 아프고 병드신 분들을 위해서 산삼도 수십 뿌리를 캐다가 그냥 주시고 그런 걸 제가 봤거든요. 나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또 내가 전하는 것이 위안이 되고 용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학으로도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잘됐다 한 번 해보자. 이렇게 시작하게 됐죠.

박인규 : 요새 TV에 나오는 공익광고 보니까 신문 집어주는 시간 몇 초 몇 초. 그런 게 나오던데, 똑같은 걸 실천하시는 거네요?

도종환 시인 : 그렇죠. 그 작은 마음 씀씀이가 삶을 아름답게 하고 풍요롭게 하고 나누게 하고,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거죠

박인규 : 그렇다면 이번에 시를 이메일을 통해서 직접 육성으로 전달하자는 아이디어를 직접 내신 건가요?

도종환 시인 : 아니요. 문학나눔사업추진위에서 같이 회의를 했는데요, 저도 방금 말씀드린 것 같은 좋은 경험이 있어서 기꺼이 집배원을 하겠다고 했죠.

박인규 : 도종환 시인께서 하시는 일은 어떤 겁니까?

도종환 시인 : 시를 무엇을 어떻게 배달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시기시기에 맞는.. 그날이 어버이날이면 부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시라든가, 그 날이 아카시아 꽃이 많이 지는 때다 그러면 그것을 노래한 시인은 어떤 게 있을까.. 오늘이 단오날이라면 단오와 관련된 아름다움을 전해줄 수 있는 시가 뭐가 있겠는가.. 그런 것들을 찾아서.. 그런 일들도 하고 직접 낭송도 하고, 또 플래시 제작에 관여도 하고 그렇습니다.

박인규 : 제가 보기에는 집배원 보다는 우체국장과 비슷하신 것 같은데요, 이제 어버이날 딱 한 번 하셨는데요, 시를 배달하셨더니 반응이 어땠습니까?

도종환 시인 : 반응은 아침, 새벽부터 배달을 시작했는데, 반응은 뜨거웠구요. 두 번 정도 아마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 홈페이지가 다운됐던 것 같아요.

박인규 : 그럼 대성공이네요 일단..

도종환 시인 : 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또 배달받기를 신청하시고..

박인규 : 언론보도에 따르면 약 2만 명.. 중고교 국어선생님, 또 문화예술위원회 회원들한테 보냈다고 들었는데, 새로.. 나도 좀 배달받읍시다 하고 신청하신 분들이 꽤 많은가요?

도종환 시인 : 네, 제가 알기로 그 날 하루 동안 한 4만 명 정도의 회원이 늘어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박인규 : 2만 명으로 시작했는데 딱 한 번에 4만 명. 200퍼센트를 늘렸다면 대성공이네요. 혹시 다음주 월요일은 스승의 날인데 어떤 시를 고르셨는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도종환 시인 :
네. 선생님으로서, 또는 아이들 키우는 부모로서 교육이란 게 어때야 되는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시인데요, 김시천 시인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라는 시를 골랐습니다.

박인규 : 아직 모르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 나도 이메일로 시를 배달 받고 싶다는 분들은 어디다 어떻게 신청하면 됩니까?

도종환 시인 :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 홈페이지에 오시면 신청하실 수 있게 돼있습니다.

박인규 :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를 그냥 치고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도종환 시인 : 예. 그렇게 치셔도 되구요..

박인규 :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 사실 저는 처음 들어보는 조직인데, 어떤 조직인지.. 시 배달 말고 다른 일도 좀 하십니까?

도종환 시인 : 우수문학도서를 분기별로 선정해요. 지금 우리나라에 출판되는 많은 책 중에서 분기별로 좋은 소설, 좋은 시, 산문, 또 어린이 문학에 관한 책들까지 선정을 해서 그 책들을 소외지역, 소외계층, 또 교도소라든가 군부대나 시설 등에 보내주는 일을 해오고 있구요. 또 소외계층을 초청해서 행사도 하고 찾아가서 문학강연을 들려주기도 하고 작가와의 만남도 갖고. 이런 일들을 해오고 있죠.

박인규 : 3년 전인가요, 병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두시고.. 그러면 학교는 이제 완전히 떠나시게 된 건가요?

도종환 시인 : 네, 몇 번 몸이 안 좋아서 휴직을 했다가 지금은 완전히 퇴직을 했습니다.

박인규 : 그럼 이제 선생님에서 문학나눔사업을 하시는 활동가랄지.. 그것도 어떻게 보면 교육은 교육이죠. 모든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쪽으로 바뀌셨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도종환 시인 : 뭐, 문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는 거죠.

박인규 : 한 3년을 산골에 계시다가 나오셔서 인터넷 통해서 독자들도 만나고, 기분이 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도종환 시인 : 혼자 있는 시간이란 것이 대개.. 고요하게 성찰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이런 시간들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시간을 갖기 전에는 주로 행동하고 실천하고 움직이고, 여럿이 모여서 뭘 궁리하고 그런 일들을 주로 해왔는데.. 다시 만나는 이 기간이, 생각하고 사유한 뒤에 행동하고 실천하는 그런 시간으로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 첫 사업으로 이런 시를 배달하는 사업을 하니까요, 사유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을 만났다는 생각을 합니다.

박인규 : 3년동안 산골에서 쌓아온 기와 내공을 확 펴시는 그런 것 같습니다. 시배달도 하시지만 그전에 4월말에 <해인으로 가는 길>이라고 새 시집을 펴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그럼 요양생활을 하시면서 쓴 시들인가요?

도종환 시인 : 네. 거기서만 쓴 시들입니다.

박인규 : 한 60편이라고 들었습니다.

도종환 시인 : 네. 주로 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고 발견하게 된 것들. 또는 불교적인 어떤 이미지? 이런 것들과 시적 이미지가 만나는 작업. 이런 것들을 지난 3년 간 해왔고 그 작업들이 이번 시집에 다 들어있습니다.

박인규 : 4월 말에 <해인으로 가는 길> 출판기념회를 하시면서 이번 시집의 인세는 전액 기부를 하겠다...

도종환 시인 : 네. 베트남의 평화학교를 짓는 기금으로 내놓기로 했는데요, 제가 청주에서 지내는데 충북 민예총에서 베트남과 문화교류를 몇 해 째 해오고 있어요. 한해에 한 번씩 우리가 가기도 하고 베트남 공연단이 저희 지역에 와서 공연도 하는데요.. 그런 교류 중에 베트남 쪽에서, 학생들이 학교가 없어서 공부를 제대로 하기 어렵단 얘길 하면서 학교를 지어줄 수 있겠냐고 부탁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우리가 먼저 시작한 것도 아니고 부탁을 하는데.. 베트남 쪽에는 우리가 빚진 게 있잖아요. 그 생각이 나고 그래서, 좋다 시작해 보자 그래서, 작년 일년 동안 그림전시도 하고 서예작품 전시판매도 하고 공연도 하고 해서 돈을 모아봤는데요,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은 돈이 1200만원이었어요. 그걸 2월 달에 전달해주고 와서, 9월 달에 잔금을 다 주기로 했는데, 그 기금을 어떻게 모을까 고민하다가 시집 인세를... 이미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기로 약속을 했던 거거든요. 근데 그걸 어디다가 써주면 좋겠다고 부탁할 수 있는 권한은 있나봐요. 그래서 이왕이면 그걸..

박인규 : 아름다운재단을 경유해서 베트남으로 가는 걸로..

도종환 시인 : 이미 그것을 제가 그동안 시를 쓸 때마다 한 편씩 한 편씩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에 기부를 해왔었어요. 그게 시집으로 모아지면 인세도 내놓겠다고 얘길 했는데, 그것을 마침 이런 일이 있으니 베트남 쪽에 평화학교를 짓는 데다 쓰도록 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자고 해서.. 이제 시집을 한권 사주시면 벽돌 한 장, 또 열 권을 사주시면 나무 하나가 돼서 그게 베트남에 학교로 지어질 겁니다 .

박인규 : 책 나온 지 보름밖에 안됐지만, 많이 나갔습니까?

도종환 시인 : 지금 일주일만에 재판을 찍었구요...

박인규 : 많이 사주시면 그만큼 베트남을 돕는 거군요..

도종환 시인 : 주위에서 많이들 도와주고 계십니다.

박인규 : 저희 프로그램에, 작년인가요 영남대 이동순 시인이 나오셨는데, 그분도 또 베트남 돕기 운동을 하시더라구요.

도종환 시인 : 학생들 직접 데리고 가서 하시죠.

박인규 : 이번 인세를 기증하시면서, 사별하신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란 말도 있었고...

도종환 시인 : 아 그건 제가 한 말이 아니고, 그냥 주위 분들이 그런 것 같다고 말씀하신 거죠.

박인규 : 그래도 역시 생각이 많이 나셨겠어요.

도종환 시인 :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박인규 : 예 알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4년 간의 요양을 마치고 독자와 다시 만나고 있는 접시꽃당신의 도종환 시인과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그동안 건강을 되찾기 위해 어떤 생활을 하셨는지 또 앞으로는 어떤 문학활동을 하실 지 그런 걸 여쭤볼까 합니다.
20년쯤 전에 부인을 병마로 잃으셨고, 또 본인도 굉장히 희귀한 자율신경 실조증이라는 병에 걸리셨는데 내가 그런 병이다란 걸 아셨을 때 상당히 충격이랄까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은데 그 당시에 어떠셨어요?

도종환 시인 : 연수 중에 강의를 들으며 앉아 있다가 쓰러졌거든요. 좀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게 웬일일까 생각도 들었고, 또 생각해 보니까 그런 징조가 여러 번 왔었는데 그때 그 신호를 뭔지 잘 모르고 좀 누웠다 일어나면 괜찮겠지 이렇게만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정지신호를 보내는 것이 우선 몸과 삶 전체를 다시 돌아보라는 것이 아닌가..

박인규 : 말하자면 경고가 계속 왔다는 거군요. 자율신경 실조증이란 게 실제로 어떤 증상입니까?

도종환 시인 : 사람 몸의 자율신경 중에 교감신경 부교감신경 이런 게 있대요. 그것이 몸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데 어느 한쪽을 과도하게 쓸 경우에 균형이 깨지는 거죠. 그래서 균형이 한 번 깨지게 되면 어떤 잔병이 걸렸을 때 낫지를 않게 돼요. 그게 감기든 무슨 병이든 걸리면 낫지를 않고 어떤 약을 써도..

박인규 : 자체 치유력을 잃어버리는...

도종환 시인 : 네. 그런 형태가 되니까 참 활동하기도 무력감에 빠지게 되고,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몸은 몸대로 늘 약에 취해있고 망가지고 이렇게 되죠.

박인규 : 그러면 학생을 가르칠 수도 없을 정도로 균형이 무너지는 건가요?

도종환 시인 : 일상생활 하기가 좀 어려워지는데요, 그런데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현대인들의 병 중에 하나라고 말하기도 해요. 현대인들이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아니고 몇 가지씩 일을 잘하려고 하면서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일을 하고, 잘하려고 하다 보니까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긴장하고 무리해서 과로가 따르게 되고.. 그래서 대한민국 남성들이 40대 나이에 여기저기서 뻥뻥 쓰러지기도 하죠. 그런 것과 다 같은 병 중 하나라고 합니다.

박인규 : 그 병에 걸리셨을 때가 거의 40대 말인 것 같은데, 산으로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하신 건..

도종환 시인 : 그건, 의사인 친구들이 그냥 이대로는 안 된다 .. 치료를 한 일년 해도 아무 효과가 없으니까 다른 치유법.. 민간요법이라든가 자연치유법이나, 명상을 통한 치료라든가 여러 가지를 권유해 주고, 마음수련이라든가 여러가지를 받으며 다니고 하다가, 마땅하게 있을 곳을 찾던 중 후배들이 산 속에 좋은 요양할 장소를 물색해 줘서 거기서 지내게 된 거죠.

박인규 : 그러면 3년 간을 거기서 혼자서 지내신 겁니까? 요즘은 인터넷도 필요하고 휴대폰도 필요한데.. 그런 거 전혀 없이 혼자 계시다 보면 심심하거나 외롭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 드시던가요?

도종환 시인 : 많이 외롭구요.. 많이 무섭고, 심심하고 그랬어요. TV도 없고 신문도 안 들어오고, 인터넷도 원활하게 안돼서 모뎀 달아서 통신하는 정도니까 굉장히 적막했죠. 그런데 삶에서 하루의 어떤.. 심심한 시간이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 있는 시간 같은 게.. 하루에도 필요하고 일주일에도 필요하고 인생 전체에도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렇게 보낸 외롭고 무서웠던 시간들이, 글 쓰는 사람인 저한테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해인으로 가는 길> 이 시집이 작년 2월부턴가 아름다운가게에 글을.... 시를 다시 써야겠다고 마음먹으신 게 작년부터이신 것 같은데.

도종환 시인 : 처음에는 아프니까 아무것도 못했다가 몸이 조금씩 조금씩 균형을 되찾으면서요, 시들을 만나니까 참 고맙고,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할까. 이 고마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시를 기증하고 그런 거죠.

박인규 : 명의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암에 걸리면 암과 싸우지 말고 친해져라.' 그런 말씀을 하시던데 이번에 나온 시집 중에 '축복'이란 시를 보니까 도종환 시인도 그런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제가 잠깐 읽어보면..

<이른 봄에 내 곁에 와 피는 봄꽃만 축복이 아니다
내게 오는 건 타 축복이었다
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
세상이 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
길바닥에 내팽개치고 어둔 굴속에 가둔 것도 영혼의 담금질이었다
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
내게 오는 건 통증조차도 축복이다. >

진짜 이 아픈 걸 축복이라고 느낄 수가 있습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97.3MHz)'

도종환 시인 : 제가 시를 쓰는 사람이라서 저한테 오는 것들을 시적으로 변형시켜서 받아들이고 하는 면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로 저한테는, 제가 살아온 모든 것 지금 아팠던 시기까지 다 포함해서 저한테는 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간이 아니었으면 제가 좋은 시를 만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구요. 문학의 길을 통해서 늘 새로운 것을 찾아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문학이 더 풍요로워지고 질적으로 더 풍성해지고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3년 간의 은둔생활을 하시면서 병도 고치시고 다시 세상에 나오시게 되는 그런 과정에서... 시를 쓰시고 하면서, 3년 간의 속리산 생활이란 것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였다. 교훈이랄지 그런 건 어떤 거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도종환 시인 : 제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이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건데요, 해인이란 것이 풍랑이나 물결이 가라앉아서 고요해진 상태를 말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른바 화음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조화와 어울림과 나눔과 평등의 세상을 위해서 일을 하다가, 몸이 아파서 이제 성찰과 사유의 시간인 해인의 시간으로 보낸 3년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두 개가 별개의 것이 아니고 결국은 하나가 돼야 한다고 큰스님들은 말씀하시거든요. 그래서 그 두 개가 화음으로 힘을 합치기 직전이 해인이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듣고, 아 그렇구나... 두개가 하나가 돼서, 사유하면서 행동하고 성찰하면서 실천하는.. 그런 두개가 별개가 아니라 하나가 되는 그런 삶을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이 3년의 시간이었습니다.

박인규 : 약간 엉뚱한 질문이긴 합니다만, 워낙 접시꽃당신 같은 경우 백 만 부 이상이 팔리고 상당히 대중들이 사랑하시던 시집이고.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정치하시는 분들이 도종환 시인의 시구를 많이 인용하시더라구요. 유시민 장관도 그러시고, 최근에 이용섭 행자부장관도 담쟁이라는 시를 인용하시고 그랬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도종환 시인 : 저는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정치라는 것이 참 대립과 갈등과 모순이 심각해지고 첨예해지는 상태이고 삭막한 싸움터 같은 곳이잖아요. 그곳에서도 순간순간 시를 통해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취임사에서 시를 읽으면서 담쟁이 같은 장관이 되겠다고 말하거나, 청문회 같은 곤혹스런 상황에서도 자기 심정을 시로 표현하면서 대변하거나, 또는 지난해는 경제부처 고위직에 계신 분이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를 인용하면서 경제도 다 이런 거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했다는 걸 들으면서 문화적으로 정치를 접근하는 것, 문화적 감수성으로 정치를 바라보면서 여유 있게 그리고 또 서로 대립을 완화해 가면서 문제를 풀어 가는 태도들은, 문학적으로 참 성숙한 태도가 아닌가, 고맙게 생각을 하죠.

박인규 : 정치하시는 분들이 시인의 마음가짐을 좀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도종환 시인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인규 : 도종환 시인의 삶이 사실 그렇게 평탄한 삶은 아니었다고 보여집니다. 부인도 병으로 잃으시고 해직 당하셨고, 본인도 큰 병을 앓으셨고, 그런 삶을 살아오시면서 꼭 삶과 연계되는 건 아니지만, 시라는 것이 나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 시라는 건 나에게 무엇이다 그런 생각들 많이 있으실 것 같아요.

도종환 시인 : 저한테는 시가 제 삶의 길이었어요. 동시에 나침반이기도 했고 이정표이기도 했어요.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알려주는 길이었고, 어느 길로 가야할까 고민할 때 시가 가라는 대로 가면 힘은 들었지만 그 길이 옳은 길이었고 제대로 간 길이었단 생각을 하곤 했거든요. 그래서 만약 문학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내가 어떤 길로 가서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문학을 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저 자신에게 늘 말하곤 하죠.

박인규 : 10대 학생들을 상대로 문학을 가르치시다가 어떻게 보면 사회 전체를 향해서 문학집배원을 하시게 됐는데, 제가 알기로는 일단 1년 동안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시배달을 통해서, 문학나눔이라는 사업을 통해서, 사회를 좀 더 예술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실 것인지 마무리 삼아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종환 시인 : 문학소외계층을 저희들이 찾아가는 사업을 하는데요, 자발적 문화소외계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계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바빠서, 너무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아서 하루에 시 한 편 읽을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일주일에 딱 이삼분, 삼사분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사회는.. 개인의 삶은 아름다워지고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신청을 하시면 누구나 다 받아보실 수가 있고 바로 책상 앞에 배달해 드리거든요. 좀 더 여러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계기로 만들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인규 : 말씀 듣고 보니까 저도 자발적 소외계층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시를 다 쓰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시를 좀 즐길 수 있는 그런 때가 올 때까지 계속 노력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종환 시인 : 네, 고맙습니다.

박인규 :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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