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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소속 구단에 쩔쩔매는 경남,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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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소속 구단에 쩔쩔매는 경남, 안쓰럽다

[최동호의 스포츠당] 한국 '을'로 보는 QPR에 고개 숙이기 바쁜 경남

졸부의 천박한 돈 자랑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박지성의 소속팀인 퀸스 파크 레인저스(QPR)와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 얘기다. QPR은 오는 7월 19일 경남FC와 하기로 했던 친선경기를 취소했다. 무례인지 무시인지 구분이 안 가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레드냅 감독은 QPR의 2부 리그 강등 이후 선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다. 영국 지역신문 <풀럼 크로니클>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팀을 "쓰레기"라고 말할 정도였다. "팬들은 우리가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QPR은 사실상 쓰레기와 같다." <풀럼 크로니클>이 전한 레드냅 감독의 인터뷰 내용이다.

QPR은 또 지난 2월 한국어 트위터 서비스를 통해 '박지성 선수의 2군 경기를 감상하세요"라는 홍보 문구를 띄워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박지성 선수가 2군 경기에 출전한다고 홍보한 것을 보면 QPR은 마케팅에만 열을 올렸을 뿐, 한국엔 관심도 없었고 공부도 안 했던 것 같다. QPR은 레드냅 감독 취임 이후 물먹은 박지성을 지켜보는 한국 팬의 불편한 심정도 몰랐을 뿐더러, 2군 경기라도 박지성이 뛴다면 한국 팬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경기력만큼이나 구단 운영도 함량 미달이었다.

페르난데스 구단주의 선수단 운영 개입, 구단 운영엔 오히려 독

QPR이 속한 잉글랜드 프로 축구 프리미어리그(EPL)는 세계 최고의 리그이자 세계적 부호들의 비즈니스 경연장이다.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러시아 석유 재벌이고 맨체스터시티의 구단주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역시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 투자 그룹의 소유주다. 러시아 광산왕 알리셰르 우스마노프는 아스널의 지분 29.63%를 소유하고 있다. EPL 20개 구단 중 외국인이 소유한 구단이 9개이고 영국인과 외국인의 공동 소유 구단이 4개라는 사실은 EPL이 세계적 부호들의 비즈니스 경연장이자 사교 클럽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를 아시아 최대 저가 항공사로 키운 페르난데스는 QPR의 구단주로 EPL에 입성했다. 페르난데스는 2011년 QPR의 주식 66%를 매입하며 3500만 파운드(624억 원)를 투자했고 이후로 박지성, 줄리우 세자르, 파비우 실바, 에스테반 그라네로 등 쟁쟁한 선수들을 영입하며 6000만 파운드(10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목표는 구단 재건과 글로벌 마케팅 강화였다.

QPR이 2012~2013 시즌 개막 후 1승도 올리지 못하고 4무 8패로 부진하자 페르난데스는 12경기 만에 마크 휴즈 감독을 경질했다. 구단주가 영입할 선수를 결정하고, 12경기 만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을 해임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구단주가 선수단 운영에 개입하면 할수록 팀이 몰락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사례가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QPR은 한국 마케팅을 시도했으나, 그 자세는 환영받지 못했다. ⓒ로이터=뉴시스

환영받지 못했던 친선경기와 페르난데스의 일방적 취소

QPR과 경남의 친선경기는 출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4월 22일 안종복 경남 대표이사가 경남과 QPR의 친선경기를 발표했지만 축구팬의 반응은 싸늘했다. 박지성 선수는 주전 자리에서 밀려난 뒤 잊힌 선수가 된 느낌이었고 이영표의 후계자로 기대를 모았던 윤석영 선수는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상황이었다. EPL 그라운드에서 얼굴조차 보기 힘든 박지성·윤석영 선수가 한국에 돌아와 그라운드의 중심에 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한국팬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발부터 환영받지 못했던 친선경기는 마무리 또한 아름답지 못했다. QPR의 갑작스런 취소 통보는 페르난데스 구단주의 결정이었다. 페르난데스는 QPR의 2부 강등이 결정된 직후 "아시아 투어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며 전격적으로 친선경기를 취소했다. 경기장 밖 공식 행사에선 언제나 정장을 차려입어야 할 정도로 품격을 강조하는 EPL은 친선경기도 꽤나 까다롭게 추진한다. 비행기 좌석, 호텔 룸, 식사 메뉴 등 시시콜콜한 사항까지 자신들의 기준에 맞출 것을 요구한 사례들이 많이 있었다. 격식과 품격, 매너를 강조하는 EPL에서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해외 친선경기 취소가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는 페르난데스 구단주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위약금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박지성을 위한 길?

EPL 구단의 친선경기는 글로벌 비즈니스다. 당연히 철저한 계약 사항이 있고 약속 위반에 대한 위약금도 있다. 안종복 경남 대표이사는 친선경기 취소와 관련해 QPR에 위약금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위약금 청구가 박지성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과연 위약금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박지성을 위한 길일까?

계약서상의 권리와 의무에 기초한 위약금 요구는 경남의 당연한 권리 행사이다. 당연한 권리 행사를 포기하고 QPR의 일방적인 결정에 끌려다니는 것은 경남뿐만이 아닌 한국 축구의 위상에 관계된 일이다. QPR의 사례가 전례가 된다면 K리그 클래식은 EPL의 선수 공급 시장이자 일방적인 마케팅 시장으로 전락해 버릴 뿐이다. 명문화된 계약 사항을 일방적으로 위배하는 EPL 구단과 EPL 구단의 일방적인 계약 위반을 스스로 감수하는 K리그 클래식 구단의 비즈니스 모델은 축구 식민화를 자처하는 것이 아닐까? 박지성의 팀 잔류 혹은 임대, 이적이나 기용 여부는 박지성의 가치와 활용도를 감안해 QPR이 훨씬 더 냉정하게 결정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덧붙여 박지성의 위상은 경남의 위약금 청구 여부에 영향을 받는 수준이 아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엔 해프닝이 많았다. 제대로 된 스포츠 에이전시가 없었고 한국 축구 자체에 해외 진출을 주도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부족했다. 유명 선수가 국제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는 황당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젠 사정이 다르다. 한국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한국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해외 팀끼리 경쟁을 벌이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EPL 팀이기 때문에 와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구단의 생존을 위해서, 또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 글로벌 시장을 뚫고 선수와 구단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되는 시점에서 "위약금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박지성을 위한 길"이라는 엉뚱한 발언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 발언의 주인공이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축구 행정가이자 마케터라는 점은 더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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