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시장의 합의가 공정할 수 있으려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시장의 합의가 공정할 수 있으려면…"

[이정전 칼럼] 경제학자가 말하는 '정의'

지난주(2월 10일)에 대규모 경제학 공동학술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대회의 공동주제가 "공정사회와 경제학"이었다.

과학을 지향하는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정의나 도덕과 같은 규범적인 문제를 학술적으로 다루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경제학자들마저 정의의 문제를 떠들고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가 심각한 불공정 사회가 되어나 싶기도 하다.

한국경제학회 회장의 인사말에는 이명박 정부가 "공정사회를 제창한 것은 현 정부의 형태에 걸맞지 않지만 이 시대, 우리 사회의 대명제를 대변한다는 측면이 큽니다"라는 의미심장한 표현이 있다.

이날 공정(公正)에 대하여 여러 가지 주장이 나왔지만, 경제학자가 발표한 논문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장은 요컨대 시장이 공정하다는 것이요, 시장에서 결정된 소득분배는 공정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시장이 공정한가? 부를 창출하고 사회발전을 가져오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만장일치의 합의과정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앞의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에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뒤의 주장을 편 논문만 간략하게 짚어보자.

이 논문은 자유경쟁시장에 참여하여 사람들이 얻는 몫은 관련 당사자들 모두 합의하는 가운데 결정된다는 점을 공정성의 근거로 삼고 있다. 물론, 이 논문의 주장대로 자유경쟁시장에서는 거래 당사자 모두의 합의가 없는 거래는 이루어질 수 없다. 뒤집어 말하면, 일단 시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거래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있었다는 뜻이다. 시장이 이와 같이 상호이익을 증진하는 제도적 장치임은 오래 전에 마르크스도 이미 강조한 사항이다. 노동시장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거래는 노동자와 자본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그는 <자본론>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몫에 경영수완(지도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포함된다는 점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시장이 상호이익 증진을 위한 장치라는 엄연한 사실로부터 시장은 공정하다는 결론으로 치닫는 것은 논리적으로 비약이 좀 심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 논문은 여러 가지 징검다리 주장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를 테면 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의 합의 아래 결정된 소득분배는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다"라는 주장, "빌 게이츠의 높은 소득도 사회가 합의를 거쳐서 인정한 것"이라는 주장, 노숙자의 비참한 생활은 사람들이 이들의 노동이나 이들이 일한 결과를 사주지 않기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며 따라서 노숙자의 무소득을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 등.

이런 일련의 주장들은 은연중에 시장의 합의가 곧 사회적 합의이며 따라서 공정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고양이가 많아도 호랑이가 될 수 없듯이 그런 엉성한 주장만으로는 시장의 공정성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물론, 정의라는 것이 사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기본원칙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그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합의는 어디까지나 거래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이지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는 점부터 우선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러브호텔을 예로 들어보자. 러브호텔 고객과 호텔주인 사이의 거래는 자발적이며 이들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러브호텔에서 배출되는 각종 수질오염물질은 하천을 오염시킴으로써 불특정 다수에게 큰 피해를 준다. 다수의 선의의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당사자들 사이의 자발적 합의를 과연 사회적으로 타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환경 문제는 시장에서 다수의 자발적 합의가 누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외부효과 문제라고 하면서 예외적인 사항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환경 문제가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널리 퍼져있고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단순히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가볍게 볼 것인가. 소수의 자발적 합의가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게 된다.

경제학자들은 환경 문제가 공정성과 관계없는, 효율 차원의 문제요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단속은 업계의 반발 때문에 힘을 잃는 경우가 너무 많다. 업계는 늘 경쟁력이니 실업 문제를 이유로 내세우지만, 결국 이윤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부의 단속에 강력하게 반발한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문제의 해결이 지지부진한 배경에는 소득분배의 문제가 깊게 걸려 있다.

이런 문제는 복잡하니까 일단 정부의 강력한 단속 덕분에 러브호텔과 결부된 환경오염문제는 없다고 치자. 그렇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러브호텔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왜 그럴까? 왜 러브호텔 주차장은 차단막으로 늘 가려 있을까? 주택가나 학교 근처에 러브호텔이 들어서면 왜 다른 지역 사람들도 성토하고 나설까?

경제학자들은 자신들도 과학자라고 자처하고 있지만 진짜 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 자연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정상적인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남을 배려하며, 사회의 안위를 걱정하고 공익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앞의 마음을 '이기적인 마음', 뒤의 마음을 '공적 마음'이라고 하자. 예를 들면, 밤에는 러브호텔을 들락거리면서도 낮에는 정부가 러브호텔을 강력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두 가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을 싫어하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두 가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담배를 끊었다가 다시 피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사람들, 살 빼기를 위한 전쟁을 결심했으면서도 야식을 먹고 나서 곧 후회하는 여인들, 이들 모두가 두 가지 마음을 가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보통 사람들이다.

대체로 보면,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마음에 따라 행동한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시장에 나간다.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혹은 경기침체가 걱정이 되어서, 혹은 장사꾼 자녀의 대학등록금이 걱정 되어서 일부러 장보러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4~50년 전에는 정부가 국민들로 하여금 공적 마음을 가지고 시장에서 물건을 살 것을 촉구한 적도 있었다. 국산품 애용운동이 그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이것마저도 없어졌다. 대학가에도 공공연하게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시장에서는 모두가 다 자기 이익 챙기기 바쁘다. 그래서 시장은 사익을 추구하는 장소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장 밖에서는 공적 마음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선거 때 투표하는 행위는 개인적으로 별로 수지맞는 일이 아니지만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일삼아 투표장에 나간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헌신하며, 특히 약한 아이를 더 많이 배려한다. 정상적인 지역공동체는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며, 정상적인 동창회는 불우한 동창을 특히 더 보듬어 준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마르크스의 필요의 원칙을 실천한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정의란 바람직한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기 위한 기본원칙에 관한 것이다. 원칙이 권위를 갖추고 폭넓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우선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원칙을 얘기할 때 그것이 과연 객관적이고 중립적인지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결정을 공정한 결정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개인적 감정이나 사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원칙은 원칙도 아니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한다. 설령 모두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특정인에게 약간이라도 치우친 원칙은 충분한 권위를 가질 수 없다.

▲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정의에 대하여 얘기할 때면 롤스의 <정의론>이 빠지지 않는다. 이번 경제학자들의 잔치에서도 경제학자들마다 롤스 얘기를 입에 달고 있었다. 롤스의 <정의론>에서 핵심 개념의 하나는 '원초적 상황'이다. 이 상황은 인종, 성, 혈연, 지연, 학연 등 개인적 이해관계를 말끔히 털어버리고 모든 사람들이 순전히 공적 마음만으로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기적 마음을 비우고 토론에 임했을 때에 비로소 정의의 원칙에 대한 참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바로 그런 공적 마음들 사이의 사회적 합의가 권위의 원천이라고 롤스는 믿었다. 달리 말하면 사회구성원들이 공적 마음으로 합의한 정의의 원칙이야말로 권위를 가진 참된 원칙이라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마음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결정된 것은 이들의 이기적 마음을 반영한 것이며 공적 마음을 거의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러브호텔의 요금은 고객과 호텔주인의 이기적 마음이 합의한 결과일 뿐, 러브호텔은 규제되어야 한다는 공적 마음은 반영하고 있지 않다. 여름철 휴양지의 바가지 요금이나 태풍 피난민에게 강요되는 바가지요금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는 그것이 공적 마음을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경쟁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은 주로 이기적 마음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끊임없는 논쟁이 있다. 공공투자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판단할 때 자유경쟁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그대로 적용해도 좋으냐에 대하여 말이 많다. 예를 들면, 새만금간척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할 때에도 국내 쌀값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정의라든가 각종 도덕률, 관례 등 규범적인 것들은 대체로 사회구성원들의 공적 마음을 반영한 것들이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의 공적 마음을 읽고 이를 대변하는 것이다. 환경규제 뿐만 아니라 러브호텔에 대한 정부의 규제, 공공장소에서의 흡연규제, 음주운전에 대한 규제, 살 빼기를 도와주기 위한 각종 식료품규제 등 수없이 많은 정부의 규제가 바로 국민의 공적 마음을 대변한 것들이다. 국민의 이기적 마음에 대해서 정부는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시장이 알아서 충족시켜주니까.

시장에서의 합의가 진정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그런 국민의 공적 마음의 심판을 통과해야 한다. 단순히 거래 당사자들이 합의했다고 해서 그것을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