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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태일'을 말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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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금, '전태일'을 말하는 진짜 이유

전태일 다시보기 토론회 열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외침과 함께 전태일 열사가 숨진 지 40년이 지났다. 의미 있는 숫자를 기려 행사위원회가 출범했고, 평화광장 앞 청계천의 버들다리를 전태일 다리로 명명하자는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민주노총은 8월부터 전태일 평전 읽기 운동을 시작했고, 기일에 맞춰 대규모 노동자대회를 준비 중이다. G20 개최와 맞물리면서 서울시설공단이 버들다리에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전시되어 있던 정부 풍자 만평을 철거하는 등 '전태일'을 둘러싼 노동계와 정부의 긴장도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과거의 영웅에 대한 예우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단기 파견 근로자들이 회사 앞에서 1895일 동안 천막을 치고 복직을 요구한다. 정규직 한 명 없이 사내하청 노동자들로만 채워진 자동차 공장이 있다. 사측의 노조 탄압에 지부장이 몸에 시너를 끼얹고 불을 댕긴다. 청소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허덕이며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앳된 청년들이 대기업 반도체 공장에 들어가 혈액암에 걸려 쓰러진다. 모두 40년 후 지금 한국 사회에 일어나는 일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전태일이 없다. 전태일을 말하는 게 더욱 각별한 이유다.

▲ 전태일을 말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향수가 아니다. 변하지 않는 노동 현실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프레시안(김봉규)

"전태일의 요구는 계급의식이 아닌 시민의식에서 나온 것"

3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전태일을 말한다, 전태일이 말한다'라는 이름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노동권에서 소외당하는 이들이 늘어가지만 더 이상 전태일은 없는 시대에 그가 남긴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 전망과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조국 서울대 교수가 사회를 본 가운데 홍윤기 동국대 교수,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제를 맡았다. 김선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패널로 나섰다. 미셸 이주노동자노조위원장, 박희진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 김주원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교선부장 등 전태일이 필요한, 그들 스스로가 전태일이 되고자 하는 이들도 토론에 가세했다.

▲ 홍윤기 동국대 교수 ⓒ프레시안(김봉규)
홍윤기 교수는 전태일을 시대를 앞서간 시민의식을 가진 이로 평가했다. 그는 "전태일은 노동자 해방운동의 선구자라기 보다 사회와 국가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면서 법치주의를 내면화하려 애썼지만 국가에 의해 버림받아 좌절한 시민"이라며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던 그의 요구 역시 계급의식이 아닌 시민의식에서 나온 요구"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그의 삶은 (분신으로 인해) 비극으로 귀착됐지만 민중적 토양 안에서, 자기 삶 안에서 도덕과 사회적 판단능력, 자기표현 능력, 동료와 연대하는 능력을 습득했다"며 "민주적 제도 안에서 실천을 통해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표가 개발된다면 이름을 '전태일 지수'로 명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공동발제에 나선 김영훈 위원장은 전태일의 삶에 비추어 현재 민주노총이 가진 한계를 반성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 민주노조는 연대 투쟁이 되지 않는다는 본질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비정규직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사장이 아니라 정규직"이라며 "계급 간 연대를 말하기 전에 계급 내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프레시안(김봉규)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 하면 파벌다툼이라는 이미지가 오고, 싸움에서 지고 나면 서로 남이 잘못했고 한다. 스스로 반성을 일상화 하면서 분열을 치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타임오프 때문에 민주노총이 열악해지고 있지만 없는 예산 탓할 게 아니라 있는 예산의 20~30%를 비정규직 예산으로 강제하고 정규직 동의를 얻어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 조합원들이 '이제야 정신 차렸다'며 전적으로 지지할 것이고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는 민주노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태일 정신을 받드는 방법은 '문화 투쟁'

김선수 변호사는 전태일이 독학으로 공부하던 근로기준법의 현실을 조망했다. 김 변호사는 "40년 전에 비해 현재 노동법이 진전된 측면이 있지만 '보호'라는 이름 아래 교모한 해석을 통해 노동권을 제한하기도 한다"며 "노동자 절반이 비정규직인데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해고를 정당화 하고, 특수고용 노종자는 아예 법률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게 그 예"라고 말했다.

1970년대 반유신 싸움을 촉발시킨 YH무역 농성사건 당시 노조위원장을 맡았던 최순영 전 의원은 당시의 노동 현실을 복기하며 현실을 진단했다. 최 전 의원은 "당시 YH무역은 정상화가 되지 못해도 민주노조를 보호하기 위해 왕창 깨지더라도 크게 소리를 내는 싸움을 했다"며 "전태일 열사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내놓았고 민주화가 왔다"고 말했다.

최 전 의원은 "하지만 지금 노동현실을 보면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노노 갈등 등 사회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민주노총 간부들에게는 지금의 위치를 하나의 권력으로 생각하지 않는지 묻고 싶다"며 "1970년대 노조활동 목적이 민주화였다면 지금은 사회 양극화와 이에 따라 갈린 사회적 지위의 세습 문제를 짚어보고 노동자가 어떻게 평등하게 희망을 품고 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프레시안(김봉규)
홍세화 기획위원은 '전태일 정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문화투쟁'을 제안했다. 홍 기획위원은 "삼성으로 대표되는 물신주의와 욕망에 노동운동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투쟁하나"며 "가치관의 문제에 천착하지 못하고 욕망에 휘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기획위원은 "운동권에서 말하는 의식화를 받아들이는 순간 학습을 멈추고 물신지배의 욕망에 휩쓸리는 게 연대의 가능성을 문화적으로 가로막는다"며 "삼성 불매운동을 예로 들면 민주노총은 욕망이라는 문제에 걸려 노조를 부정하는 기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기표 "노동 운동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목표 설정 못한 것"

'전태일'을 기억하는 이들의 발언이 이어진 다음에는 노동자들과 청년 실업자를 대표하는 이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미셸 위원장은 "토론회에서 들은 1970년대 한국 노동자들의 상황이 현재 이주노동자가 처한 상황과 같다"며 "잔업수당이 없어 하루에 8시간을 일하든 16시간을 일하든 월 100만 원을 받는 건 똑같다"고 말했다.

미셀 위원장은 "전태일은 이미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몸을 불사른 이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다른 단체에 공감이나 동정을 바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존엄성은 우리 스스로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며 "젠더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존엄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전태일 정신"이라고 덧붙였다.

박희진 대표는 "전태일의 삶을 보면서 청년들에게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찾아야 한다고 설득해도 대부분 도서관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전태일 40주기를 계기로 청년층이 노동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바로잡고 더 나은 사회를 개척하는 이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21세기에 전태일이 부르짖던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다. 왼쪽부터 미셸 이주노동자노조 위원장, 박희진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효, 김주원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교선부장. ⓒ프레시안(김봉규)

5년 간의 싸움 끝에 이날 사측과 복직을 합의한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의 김주원 교선부장은 "지금 동희오토 현장이 난리가 났다. 빨리 들어가서 민주노조 만들고 큰 투쟁을 보여주겠다"고 인사했다. 그는 "전태일도 특별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열사로 남았듯이 자기 처지가 자기 문제인 줄만 알고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대중들에게 우리가 열심히 투쟁하고 홍보해서 특별한 계기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국 교수가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 1호'라고 소개한 장기표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이들의 발언을 끝까지 지켜본 후 마이크를 잡았다. 장 이사장은 "현재 노동 운동은 힘이 약하기 때문에 목표를 관철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목표를 설정하지 못했다"라며 "전태일이 꿈꿨던 인간해방, 노동해방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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