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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상식…"돼지, 얼굴 보고 잡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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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상식…"돼지, 얼굴 보고 잡나요?"

[시론] BBK 사건에 링컨의 말을 떠올리다

매년 링컨 대통령의 생일인 2월 12일이 되면, 주요 미국 일간지는 전면 광고를 내 링컨의 삶과 그의 숭고했던 정신을 기념한다. 링컨이 한 말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러한 광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의 어록 중에 눈여겨 볼 게 여럿 있다. 그 중 하나다.

"강자를 약하게 만든다고 약자가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BBK 주가 조작 등을 둘러싼 이명박 후보의 관련 의혹에 결국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따라서, 표면상으로는 '태산명동에 서일필'로 끝난 셈.

물론 타 후보들이 검찰의 수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태세는 전혀 아니다. 신선함은 떨어지나, 촛불 집회를 열며 저항했다. 아예 유세 자체를 취소하겠다며 으름장도 놓는다. 어째 꼭 허투로만 하는 말 같지는 않다.

그 심정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거의 모든 것을 BBK 사건에 걸었는데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으니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하지만 따져 보자. 상황을 이렇게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몰아간 것이 과연 누구였는가?

'노망'이라는 막말까지 들었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게 아니다. BBK 사건은 제쳐 놓고, 그동안 드러난 것만으로도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은 낙제점이다. 이미 많이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더 가지려고 움킨 손을 놓지 않는 탐욕스러움. 나는 이 후보같은 사람이 내가 옳다고 믿는 보수 우파의 가치를 대변하고 나섰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러나 문제는, 대통령 선거가 미인 대회가 아니라는 것. 아름다움(도덕성)은 매우 훌륭한 덕목이나, 사람들이 여기에만 홀려 표를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선거는 상품 설명회에 더 가깝다. 따라서 사람들은 상품 정보에 대한 기대를 갖고 매장에 나온다. 그런데 막상 무슨 상품을 파는지 도통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온통 파는 사람이 사기꾼입네, 아닙네 하는 공방 뿐. 그리고 이러한 공방을 주도하거나 또는 부추김으로써 반사 이익을 탐한 것은 이명박 후보를 제외한 타 후보들이었다.

물론 이들이 이런 전략에 '올인'한 것은 '강한 자(여론 조사에서 앞선 후보)를 약하게 만들어서 약한 자, 즉 자신들의 지지율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앞에서 소개한 링컨의 말처럼 이것은 애초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검찰 수사 결과는 엉뚱하게도 이명박 후보에게 날개를 달아 준 셈이 되고 말았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시대와 장소를 뛰어 넘는 링컨의 통찰 앞에 나는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었다.

도덕성 말이 나왔으니 이것도 한 번 따져 보자.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을 통해 얻게 된 큰 깨달음은 '연구 대상(난자 제공자)에 대한 윤리와 연구자의 윤리는 정도와 정직이라는 원칙에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네이처>의 사설은, 이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논문 조작 추문으로 미루어 보건대, 비윤리적인 행위(난자 채취 : 편집자주)와 명백한 연구 부정의 둘 사이가 매우 가깝다는 것이 확실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득세한 자칭 개혁ㆍ진보 세력을 지켜보며 동일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은 흥미롭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들이 '능력은 몰라도 도덕성은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요컨대, 국가 운영은 서툴러도 (즉, '연구 대상'에 대한 윤리적 처우는 미흡했어도), 스스로에게는 철저했을 것 (즉, '연구자'의 윤리는 지켰을 것)이라는 기대.

하지만, 상황은 전혀 달랐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해도,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대기업으로부터 10억을 받아 구속된 일이 있다. 이해찬 전 총리도 골프 로비를 받았다는 논란이 일어 낙마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통과된 삼성 특검법에 참여정부의 '당선축하금' 의혹 문제도 포함됐다. 황우석 박사가 연구 대상과 연구자의 윤리 기준에 모두 한참 미치지 못했던 것처럼, 개혁ㆍ진보 세력도 객체(국가 운영)와 주체(자신)에게 요구되던 윤리에서 연속으로 낙제점을 받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신당의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을 비판하는 전략으로 나선 것이 적어도 나같은 범인(凡人)에게는 기이해 보인다. 자신의 도덕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지지율이 높은 후보의 부도덕함을 공격한다고 냉소적인 사람들의 마음이 풀어질 리는 없기 때문. '강자를 약하게 만든다고 약자가 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링컨의 말은 이 경우에도 진리이다.

품평회에서 아무리 입에 침을 튀기며 자신의 상품을 선전하더라도 과거에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 물건을 팔았는지 알면 더 이모저모 따져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기 물건 팔 생각은 않고, 더군다나 남의 물건에 이런 저런 하자가 있다는 지적도 하지 않으면서, '경쟁 상점의 주인이 부동산 투기했으니 그 집 물건은 사면 안 된다'라고 핏대만 세우는 사람에게 해 줄 말은 딱 이것이다.

"돼지, 얼굴 보고 잡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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