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는 매일 폭우가 쏟아져서 파전을 즐겁게 먹던 사람들도 기상의 변화를 크게 우려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기상청은 '장마'를 대신해서 '우기'의 개념을 채택하는 것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름철 강우의 유형이 온대 지역의 '장마'가 아니라 아열대 지역의 '우기'와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소름이 끼치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지구적 파국의 전조들
지구 온난화는 인간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지구의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는 현상을 뜻한다. 인간의 활동을 통해 대기 중으로 방출된 이산화탄소 등의 여러 기체들이 지구를 둘러싸서 지구가 마치 하나의 온실처럼 된 결과 지구의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구의 기후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친 공진화를 통해 안정된 것이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이러한 지구의 기후에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이처럼 중요한 지구의 기후를 뒤흔들어 놓는 엄청난 변화이다. 지구 온난화가 이대로 계속 악화된다면, 지구는 폭우나 폭염을 훨씬 뛰어넘는 무서운 상태에 이르고 말 것이다.
지구 온난화는 어떤 문제를 낳는가?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니 빙산과 빙하가 녹는다. 빙하가 녹아서 하류에 홍수가 일어나고, 나아가 담수자원이 급속히 고갈하게 된다. 빙산이 녹아서 바닷물이 늘어나고, 바닷물이 늘어나니 작은 섬이나 바닷가 도시들이 물에 잠기게 된다. 극지대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북극곰을 비롯한 많은 생명체들이 멸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아)열대지역의 세균, 바이러스가 온대 지역으로 퍼져가며, 따라서 이것들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생명체들이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된다. 수분의 증발도 더욱 빨리 이루어져서 사막화가 더욱 급속히 진행되고, 폭우와 폭풍의 위력이 커져서 대규모 재해도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
결국 지구가 온통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세계 전역에서 지역사회가 붕괴하고, 환경난민이 폭증하며, 무력 충돌이 빈발하게 된다. 가뭄, 홍수, 폭풍, 해일, 사태, 붕괴 등의 각종 재해가 잇따라 발생하고, 당연히 전염병도 창궐하기 쉽다. 지구온난화 위기는 말 그대로 지구적 파국의 전조이다.
부시도 인정하는 지구 온난화
지구 온난화는 무엇보다 공업의 산물이다. 예컨대 석탄과 석유의 형태로 존재하던 엄청난 양의 탄소가 공업의 연료나 원료로 사용되고 이산화탄소로 바뀌어 대기로 방출되었다. 목축이나 농업을 위한 삼림의 파괴도 비슷한 문제를 낳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대규모로 자연을 파괴하는 공업이다. 지구 온난화는 공업문명의 한계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요청한다.
지구 온난화 현상은 이미 19세기 말에 과학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에 따른 결과로 지구 온난화를 다루는 논의는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이어서 1957년부터 하와이의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이산화탄소 농도를 엄밀하게 측정하면서 인간의 활동에 따른 이산화탄소의 배출과 지구 온난화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과학적 토론을 거쳐서 1997년에 '교토의정서'가 체결되었고, 이 의정서는 2005년에 발효되었다.
여전히 지구 온난화 현상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봄 어떤 토론회 자리에서 나는 그렇게 주장하는 교수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는 <사이언스>에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논문이 실렸다며 지구 온난화로 공공연히 '협박'하고 있다고 내게 외쳤다. 나는 그에게 '황우석'을 벌써 잊었냐고 되물었다.
얼마 전에 '자유기업원'이라는 곳에서 역시 공공연히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시조차 인정하는 지구 온난화를 '자유기업원'이 부정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자유기업원'의 주장대로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부시 대통령도 정말 '바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세계 15개 주요국 정상회담을 소집하다니. '자유기업원'이 똑똑한지는 모르겠지만 용감하기는 한 것 같다.
미국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세계의 노력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것은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까닭은 미국이 세계 최대의 공업국이자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4%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세계 석유의 30% 이상을 사용하고 있으며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이 심각한 불균형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
지구 온난화는 이미 우리의 생생한 현실이다. 핵발전산업에서는 이것을 커다란 기회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핵발전으로는 지구 온난화를 해소할 수 없다. 핵발전소가 늘어나면, 그 폭발 가능성이 커지고, 방사능 유출사고가 늘어나고, 핵폐기물이 증가하고, 열오염의 문제가 커지고, 송전탑 공해도 더욱 더 커지게 된다. 그리고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의 핵발전소 밀집도를 자랑하고 있다.
더 늦어서는 안 된다
문제의 근원은 반생태적 성장을 통한 풍요의 추구에 있다. 이것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지구 온난화는 머지않아 파국에 이르고 말 것이다. 지금 북한의 수해에서 볼 수 있듯이 난개발은 지구 온난화의 피해를 더욱 급속히 악화시킨다. 남한은 북한보다 조금 덜하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 손꼽는 난개발 국가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홍수지도 등 재난지도의 작성·공개와 난개발 방지는 우리에게도 이미 절박한 과제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수십 명의 예비후보들이 저마다 시대를 앞서가는 지도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무서운 지구 온난화 위기에 대해 올바른 대응방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혹세무민의 대규모 개발계획이 난무한다. 이 와중에 민주노동당이 '녹색정치선언'을 한 것은 확실히 돋보인다. 그러나 이 선언이 실질적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산업과 고용의 개혁에 관한 계획이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폭우와 폭염은 더 이상 이상기후가 아니라 이미 정상기후인 것 같다. 지구 온난화는 저기 멀리 있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다. 한국은 그렇지 않아도 세계 130위 수준의 저열한 환경후진국이다. 사정이 이렇게 위중한데도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에서도 이 무서운 상태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파국'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에너지시민연대가 8월 22일의 '제4회 에너지의 날'을 맞이하여 '지구 온난화에 브레이크를 걸자'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어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에너지시민연대는 '불을 끄고 별을 켜자'고 한다. 그렇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급속히 뿌옇게 흐려지고 더워지며 죽어 가는 이 별을 맑게 켜기 위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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