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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많아야 돈 번다? 이젠 착해야 돈 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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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많아야 돈 번다? 이젠 착해야 돈 법니다"

[현장] '흥부 자본주의'를 찾아 나선 1박2일의 기행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이 덕담이 된 시대가 오면서 부를 향한 욕망은 도덕적 비난의 굴레를 벗어던진 듯 했다. <흥부전>의 흥부가 우직하고 성실한 자로부터 무능력한 존재로, 놀부가 형제의 의를 저버린 욕심 많은 자로부터 개인의 욕망에 충실해 부를 축적해가는 '이상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으로 평가가 뒤바뀐 것 역시 이 즈음이다.

1997년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놀부처럼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면, 2008년 금융위기는 개인이나 집단의 부를 향한 욕망이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눈에 보이는 자산과 실적이 전부가 아니다. 다리를 고쳐준 제비가 물어온 '박씨'는 선행에 보답하는 행운이 아닌, 흥부의 인성이 만들어낸 인적 관계망이 보이지 않는 부를 축적해 '대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사단법인 동북아평화센터(이사장 김영호 유한대 총장)가 십여 년 전부터 시작한 '흥부기행'은 이같이 '선한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기행에서 만난 '흥부'들은 아직 박이 여물길 바라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부가 아닌 인간을 위해 기업이 필요하다는 이들의 철학, 더 나아가 자연과의 생태적 조화가 미래 산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확신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하는 시대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싸게 사는 게 아니라 제값에 파는 게 좋은 농산물"

24일 흥부기행단이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전라남도 곡성에 있는 한 폐교였다. 이동현(40) 농학박사가 이곳 곡성 초등학교에서 2005년 설립한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이 기행의 첫 목적지다. 이들이 미리 마련한 야외 식당에서 발아현미로 지은 밥과 유기농 채소로 만든 나물을 비벼 점심을 먹었다.

미실란 대표 이동현 농학박사는 2006년 발아현미 300여 종의 샘플을 들고 귀농했다. 한-칠레FTA, 한-미FTA 등 잇따라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되면서 한국 농업의 앞날은 고부가가치를 가진 농작물 생산에 달려 있다는 생각에서다.

발아현미는 건강에 좋지만 소화가 잘 안되고 맛이 떨어지는 현미의 단점을 보완해 1~5밀리미터 정도 싹을 틔운 쌀이다. 발아현미는 가공 이후에도 계속 싹이 자라 보관기간이 짧지만 이 대표는 특허까지 받은 저온살균건조 기술을 개발해 이런 단점을 없앴다.

▲ 전남 곡성의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발아현비 생산업체 미실란에 들른 '흥부기행단'이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미실란에 근무하는 4명의 직원들은 농업학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진 젊은이들이다. ⓒ프레시안(김봉규)

미실란의 지난해 매출은 10억 원으로 아직 출발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업의 가치는 그에 그치지 않는다. 시중 쌀 가격은 가마당 16만 원 선이지만 이들은 지역 농민들로부터 23만 원이 넘는 '제값'에 쌀을 사들인다. "싼 값에 사는 농산물이 좋은 게 아니라 적정 가격에 파는 농산물이 좋은 음식이 된다"는 이 대표의 철학이다. 탈곡된 쌀을 사들여 독자적인 기술로 발아현미를 만들어 유기농 발아현미 5키로그램에 7만3000원의 가격으로 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실란은 생태 체험 등 각종 문화제와 음악회를 개회하는 등 지역 차원의 행사에도 앞장서고 있다. 팔리고 남은 상품들은 지역사회에 전량 기부해 재고도 남지 않는다.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뿐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사는 지역을 만들려 노력하는 이 대표는 회사가 성장하면 다른 이에게 경영을 넘기고 또 다른 생태 운동에 뛰어들 계획도 갖고 있다.

"통일의 본질은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있어"

이날 저녁 열린 세미나에서는 사회 다방면에서 '흥부 경영'을 실천하는 이들의 사연이 소개됐다.

재미교포 농학자인 김필주(73) 박사는 1989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후 지금까지 북한 주민들의 농업 활동을 도와왔다. NGO 단체인 '지구촌농업협력 및 식량나누기 운동협회(Agglobe Services International, Inc)' 회장을 맡고 있는 김 박사는 이 단체를 통해 모금한 기금으로 황해북도 봉산군과 황해남도 삼천군 두 곳을 합쳐 약 2970㎡(900만 평)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김 박사는 "통일이라고 하면 정치적인 논리로만 접근하지만 본질은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북한 주민들의 의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전역을 뒤져 북한에서도 재배 가능한 목화 품종을 찾아냈다. 첫해 1톤에도 미치지 못했던 수확량은 지난해 3톤까지 불어났다. 비료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콩 재배량도 늘어나 영양실조로 인한 각종 질병에 노출됐던 아이들도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김 박사는 "사유재산이 없는 체제에서는 주민들이 근로의욕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비료 등의 기반이 부족한 탓이 크다"며 "북한 주민들도 기반 시설을 지원해주니 스스로 의욕이 생겨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연대은행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소액대출사업(마이크로 크레디트)을 벌이고 있다. 단순한 대출이 목적이 아니라 대출자들이 빌린 돈으로 자립 생활이 가능하도록 사업 입지 선정, 운영노하우 전수, 마케팅까지 전문가로 이뤄진 상담 조직이 항상 보살핀다. 지난해까지 700여개 자영업체에 170억 원을 지원했다. 대출금 회수율은 85%에 이른다.

이종수 사회연대은행 대표는 "우리가 정하는 대출의 전제는 상황이 아닌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액대출 사업의 본질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며 "은행 재원의 절반이 기부로 채워져 있고, 도움을 받은 이 역시 다른 이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거나 은행에 기부를 이어가는 일들이 나눔이고 흥부정신'이라고 덧붙였다.

▲ 왼쪽부터 이종수 사회연대은행 대표, 김필주 박사, 양기운 전북남원지역자활센터 관장. ⓒ프레시안(김봉규)

지방의 '흥부 경영', 보여주기가 아닌 지역 공동체 사업으로

여행 이튿날인 25일 기행단이 들른 곳은 전북 남원의 새벽영농조합이었다. 2001년 남원지역자활센터에서 시작된 새벽영농조합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지방 농촌 경제의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이들은 남원 시내 아파트 단지 등에서 수거한 음식물 쓰레기를 돼지 사료로 쓰고 다시 돼지의 배설물을 퇴비로 쓰는 순환식 유기농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농산물은 이들이 직영점을 포함한 지역 내 식당에서 소비된다.

딸기·콩 등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앞에서 양기운 전북남원지역자활센터 관장은 막 여물기 시작한 딸기를 들어올렸다. 한 줄기에 3~4개 씩 달린 딸기는 그 중 하나만이 시중에서 볼 수 있는 크기를 갖출 뿐, 나머지는 볼품없는 모양이었다.

양 관장은 "상품성이 없는 나머지 딸기들도 같은 가격에 팔릴 수 있는 호혜 네트워크를 고민하는 것, 그리고 그런 상황을 배려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유통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금은 '우리부터 먹자'는 구호 아래 자급자족이라는 민속 전통을 계승하고, 이를 통한 문화산업을 실험한 후 사회적 거래로 이어져 나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전북 완주 구이면 안덕리에 있는 건강힐링체험 마을이었다. 주민들이 가꾸는 텃밭 옆에 황토방과 한증막, 식당과 민속한의원이 함께 들어서 있었다. 마을에서 생산한 유기농 농산물로 각종 건강식과 특산품을 판매하고, 암 치료로 유명한 민속한의원의 진료 서비스를 연계한 완주군의 파워빌리지 사업의 일환이다.

이 마을의 '흥부'격인 이상호 민속한의원장은 파워빌리지 사업이 시작되자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황토방과 한증막, 식당 시설들을 주민들을 위해 내놓았다. 자신은 소유권만 갖는 대신 주민들이 스스로를 직원으로 고용하고 식당 운영을 책임져 발생하는 수익을 마을에 돌리도록 한 것이다. 그 역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상대로 식이요법 특강을 진행하면서 마을 홍보에 열심이다. 소문을 들은 외지 사람들이 몰리면서 지난해 11·12월에만 약 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 김영호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유한대 총장) ⓒ프레시안(김봉규)
박병윤 완주군 기획관리실 계장은 "외부에 보여주기식 관광 사업이 아니라 군청과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 고민한 후 지역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생태 테마마을을 만든 결과"라며 "얼마가 벌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청년부터 노인까지 일자리가 생기는 지역 공동체 사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여행을 기획한 동북아평화센터의 김영호 이사장은 "자연의 '탕아'였던 인간이 다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 새로운 르네상스를 이뤄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며 "이번달 16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채택될 것이 유력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ISO26000)'의 의미는 한 마디로 '흥부 경영'을 하라는 것이고 한국 기업들이 이를 경시한다면 토요타를 바라보던 잣대가 그들에게 적용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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