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전면적인 전쟁을 벌일 위기가 일촉즉발로 다가온 가운데, 5일(현지시간) 이란 정부가 이른바 '5+1(주요 6개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2015년 7월 맺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란의 핵합의 파기는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시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무인기를 무단 침입시켜 이란의 군부 최고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를 표적 살해한 것에 대한 반격 조치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란은 지난 2018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이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한다고 선언한 지 꼭 1년 뒤인 지난해 5월 농축우라늄 재고량에 대한 제한을 지키지 않고, 핵 연구,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면서 핵합의 일부 파기 조치를 취했다.
거기에 더해 이란 정부의 이번 조치는 우라늄 농축에 쓰이는 원심분리기 수량 제한을 더 이상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란 정부는 이날 성명에서 "이는 곧 우라늄 농축 능력과 농도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란은 현재 우라늄을 5% 농도까지 농축했다. 이란 핵합의는 원심분리기의 성능과 수량을 일정 기간 묶어 이란의 우라늄 농축 능력을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우라늄을 농도 90% 이상으로 농축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면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만큼,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거나 이른바 '브레이크 아웃 타임(핵무기를 제조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보유하는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도록 해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자는 의도였다.
이란 정부는 "원심분리기 수량 제한은 이란이 현재 지키는 핵합의의 마지막 핵심 부분이었다"라며 "이를 버리겠다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날 이란 정부는 미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금융 제재를 철회한다면 핵합의로 복귀하겠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먼저 핵합의를 파기한 미국이 이를 받을 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핵합의가 사실상 파기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이란이 핵무기에 박차를 가할 경우 1년 반 이내에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친서방 중동국가들과 서유럽까지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이란은 사거리 2000킬로미터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어 핵탄두를 장착하는 순간 중동 전체는 물론 서유럽까지 사정권이 된다.
중동발 3차 대전 우려...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고심
이미 미국과 이란은 사실상 전쟁에 돌입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 친이란 민병대의 공격을 받자 국방부가 "다른 대안을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용도"로 대응방안에 포함시켰던 '국제법 위반 카드'를 꺼내들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국방부는 물론 모든 참모들이 경악한 선택이었다고 후문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에 있는 미국의 영토에 해당하는 대사관을 공격한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지난 2일 이란의 군부 최고실세를 드론으로 표적 살해하도록 직접 지시했다. 그것도 미군의 드론기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무단 침입해 살해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라크라는 제3국을 무대로 미국과 이란이 사실상 전쟁에 이미 돌입한 양상이다.
현재 미국과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전쟁 불사를 선언한 상황이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가혹한 보복'을 선언하고, 이를 상징하듯 한 이슬람 사원에는 붉은 깃발이 내걸렸다. 이슬람 사원에 붉은 깃발이 내걸리는 것은 피의 복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보복 대응을 할 경우 미국이 이란 내부에 공격할 52곳의 표적을 이미 정해두었다고 경고했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예고된 수순을 밟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핵합의 일방 파기에 대응한 이란의 위협을 명분으로 미국은 지난해 5월 항공모함 편대를 걸프 해역에 배치했다. 이어 이란 핵합의 일부 파기 선언, 유조선 피격(5, 6월), 미군 무인기 피격(6월), 이란 유조선 억류(7월), 이란의 영국 유조선 억류(7월),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석유시설 피격(9월) 등 중동 지역의 위기를 고조시키는 악재가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달 27일 이라크 키르쿠크 미군 주둔 기지에 로켓포 공격으로 미국인 1명이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정부는 '레드라인'으로 설정했던 미국인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이 사건을 이란 혁명수비대가 직접 지원하는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고 이틀 뒤 이 무장조직의 군사시설 5곳을 전투기로 폭격했다. 이때 25명이 사망했다. 다시 이에 반발한 시아파 민병대와 그 추종세력이 지난달 31일과 1일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을 급습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특별 군사 보호구역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수천 명의 민병대가 침입한다는 건 이라크 정부의 방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슬람 종파 중 수니파 사담 후세인 정권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통해 제거한 이후 이란과 같은 종파인 시아파가 장악한 이라크가 결국 이란과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결국 미국은 국제법 위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정부에 통보도 하지 않고 무인기를 동원해 바그다드 공항에서 이란의 군부 최고 실세를 제거하는 작전을 감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솔레미아니 제거 카드'를 선택한 배경에는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이미지'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 유세에서 '벵가지 사건(지난 2012년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이 공격당해 미국대사 등 4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나약한 대응'을 했다면서 공격 소재로 써먹었다.
이번에 미국 대사관이 습격당하는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강한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도 정치적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한 무리한 선택이 핵위기까지 고조시켜 전면전으로 이어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사상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지 세계가 전전긍긍하게 됐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강제 징집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로 국방부 징병시스템 등에 징병관련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당장 한국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자칫하면 우리나라가 미국과 이란 전쟁에 휘말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앞바다라고 할 수 있는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의 30% 정도가 수송되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가는 미국 등 원유 수송선의 안전이 위험해졌다면서 미국은 이미 우리 정부에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이 요청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한국은 이란의 적이 되어 이란 등 중동에 체류중인 한국인들이 이란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라크에 1600여 명, 이란에 290여 명의 한국인이 체류 중이다. 미국의 우방으로 이란의 보복 공격 가능성이 거론되는 레바논(150여 명)과 이스라엘(700여 명) 등에도 한국인이 체류 중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유의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어 원유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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