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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취업하라구요? 자기개발·주거·문화생활이 '꽝'인데…"

[MB 고용 전략 되짚어보기②] 한 지방 취업자의 하루

"그저 눈높이를 낮추라고만 하지 말고 (청년실업 문제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는데 전 그런 말을 쓰지 않습니다. 젊었을 때 그 얘기를 들었는데 기분이 나빴습니다. 낮추지 말고 맞추라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실업 대책을 묻는 한 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취임 이후 청년들이 중소기업이나 창업에 나서야 한다며 눈을 낮출 것을 수차례 강조했던 이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청년들이 눈을 '낮추'든, '맞추'든 이 대통령이 제시하는 해법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아니라 청년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눈 맞춤' 중 하나가 지방 취업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서울에 몰리기보다 지방이나 외국으로 눈을 돌리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지방 취업이 '눈 맞춤'만의 문제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이 최근 지방의 회사에 취업해 6개월째 근무하고 있는 한 직장인의 일상을 따라가 보았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 진학한 그는 졸업 후 서울에서 취업에 실패해 다시 지방으로 내려갔다. 지방의 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다시 큰 기업에 도전한다는 생각이었다. 취업 6개월 만에 그의 목표는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편집자


"경력부터 쌓자는 생각에 지방으로…지금은 후회"

K씨는 아침 7시 직장 선배와 함께 사는 집에서 일어난다. 지방에 내려온 지 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집을 구하지 못했다. 지방의 집값이 서울과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사회 초년생에게 부담인 것은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전세자금을 대출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용할 생각이 없다. 이자도 만만치 않고 자금 전액을 지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방이라고 해서 집값이 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집은 많지만 중대형 아파트가 대부분이에요. 혼자 살 만한 원룸이나 소형 주택은 드물고 전세를 구한다고 해도 최소한 2000만 원 이상은 들어요. 월세도 서울보다 10~15만 원 싼 수준인데 한 달에 수당을 다해서 200만 원 받는 처지에 쉽게 감당할 금액이 아니에요. 매달 붓는 적금과 집에 부치는 부모님 용돈을 빼면 생활비도 빠듯해요."

▲ 대기업 입사 실패가 반복될수록 눈을 낮췄고 결국 지방에 취업했다는 K 씨.ⓒ프레시안
서울의 4년제 대학에 다니던 K씨는 지난해 하반기 기업 공채에서 '헛물'을 켜고 졸업을 미뤘다. 경제위기를 맞아 더욱 좁아진 취업시장에서 그가 눈을 돌린 곳은 지방이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금융계에서 직업을 갖길 원했던 그는 지방에서부터 경력을 쌓아 더 유망한 직장으로 옮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안 사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군대에 다녀온 2년을 빼도 6년을 학교에 있었는데 없는 살림에 언제까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순 없잖아요. 아르바이트나 과외를 하려고 해도 경쟁이 심하고 그 시간에 더 공부해서 빨리 취업하자는 마음이 더 앞섰어요. 대기업 입사 실패가 거듭될수록 좀 더 눈을 낮췄고 결국 지방 쪽까지 고려한 거죠."

그가 지난 5월 선택한 직장은 충청도의 한 신용보증 기관이었다. 비영리 재단으로 정년이 보장돼 해고의 위험도 없었고 급여 수준 역시 '먹고 살만'한 수준이었다. 고향이 본래 지방이었던 그로서 지방 생활이 마냥 낯선 것도 아니어서 자신도 있었다. 직장이 비전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그만두고 다시 취업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6개월이 지난 현재 그는 첫 직장의 보람보다는 후회가 앞선다. 부족한 인력 탓에 업무의 강도가 센 반면 경력을 쌓을 기회는 좀처럼 없기 때문. 부족한 교육·문화 인프라 속에서 장기적인 인생 비전을 세울 수도, 자기 개발에 몰두하기도 여의치 않다. 신용 관련 업무를 맡아 둘러본 지방의 열악한 경제 상황은 K씨가 지방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자금·인력 부족으로 업무 강도만 높아…자기 개발 꿈도 못 꿔"

K씨가 사는 곳에서 회사는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걸어서도 출근이 가능한 거리지만 출장이 잦아 차를 몰고 나와야 한다. 지방에서는 도심을 제외하면 대중교통이 미약해 자동차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K는 취업과 동시에 집에서 몰던 차를 할부금을 대신 내는 조건으로 넘겨받았다. 한 달 월급에서 25%가 할부금으로 빠져나간다.

"전 그래도 나은 편이에요. 제 동기는 회사까지 1시간이 걸려서 기름 값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 친구는 입사하면서 중고차를 구입했는데 6개월 동안 100만 원씩 내야 한데요.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기고 싶어도 여윳돈을 만들 수가 없는 거죠."

K씨가 다니는 회사에는 2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이는 K씨 혼자다. 업무는 많지만 인력이 부족해 야근이 잦다. K씨 역시 저녁 10~11시를 넘겨 퇴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는 자기개발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한다.

"금융 관련업이긴 하지만 경력을 인정받아 이직한 사원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사람은 부족하고 업무는 많으니 처리해야 하는 단순 업무가 너무 많고, 자금이 부족해 인력을 늘릴 만한 여유도 없죠. 작은 조직이라고 재량권이 커진다거나 기획안을 잘 받아주는 것도 아니에요."

K씨는 근무 경력 이외에 자격증이나 영어 공부를 해볼 생각도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잦은 야근으로 평일에 시간을 내리 힘들뿐더러 서울과 같이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그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번화가가 있지만 직장인을 위한 학원을 찾기 힘들다. 젊은 층이 서울로 빠져나가 수요가 없으니 학원들도 자취를 감췄다.

"처음부터 이곳이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왔으면 불만이 없었겠죠. 하지만 처음부터 경력을 쌓을 생각으로 왔는데 도저히 틈이 안 나네요. 사실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한 번 직장을 잡고 생활을 하게 되니 다시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갈 용기가 잘 나지 않아요."

▲ 갈수록 열악해지는 지방경제는 청년들에게 비전을 보여주기 보다는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만든다. ⓒ프레시안

지역 경제 악화일로…"대기업 산업단지가 경기 좌우"

K씨가 회사에서 맡은 일은 소상공인의 신용 보증 업무다. 이들 업체의 사업성과 비전을 평가해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일이다. 그는 지역 상인들의 신용을 평가하기 위해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역 경제의 실상을 목격했다.

"사실 자금 대출을 희망하는 자영업자들은 사업성이 유망하기보다는 당장 돈이 필요한 이들이 대부분이에요. 지역 경제가 오래전부터 불황이라 다들 힘든 상황에서 사고가 나면 딱히 기댈 데가 없으니 우릴 찾는 거죠. 자동차 정비소처럼 지속적으로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곳은 소수고 대부분이 음식점 등을 열었다가 3~4년 안에 문을 닫고 다른 일자릴 찾아보곤 해요."

K씨는 대기업들이 지방에 지어놓은 산업복합단지가 지역 경기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이곳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어 여기서 일하는 이들이 지역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K씨에겐 대기업 직원들이 숙소를 제공받는 등 복지 수준이 높은 것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대기업이 얼마나 많이 들어와 고용을 늘리느냐에 따라 자영업자들의 경기도 춤추는 셈이죠. 지역에 기반을 두고 고용과 성장을 늘리는 차원의 일자리는 거의 없어요. 저희에게 대출을 받는 소상공인들도 스스로 버텨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대기업이 들어와야 자기도 먹고산다는 거죠. '지방에서 일을 해도 저렇게 대기업에 입사해 내려왔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서울에서 겪었던 그 좁은 취업문을 어떻게든 뚫어야 했던 거죠."

금요일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한 K씨는 주말이 되어도 이곳에서 할 일이 없다.

"가까운 곳에는 영화관이나 공연장, 헬스클럽 같은 문화시설이 하나도 없어요. 지역에서 젊은 세대가 다 빠져나가고 장년층만 남아있어 동네에서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을 사귈 기회도 없죠. 설사 이곳에 뿌리내리겠다고 해도 결혼할 상대를 찾기도 쉽지 않을 거예요."

이런 생각에 직장을 그만둘 생각도 했지만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다. 다시 '백수' 상태로 돌아가면 생활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일이 맞지 않으면 미련 없이 툭툭 털고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집에서도 일단 직업을 가진 데 만족하는 분위기라서 제 생각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아요. 일을 하면서 다른 곳에 지원하기에는 시간에 쫓기고요. 꿈을 조금이라도 일찍 실현하려 지방을 택했는데, 결국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 거에요. 입사 2개월 차에 써 놓은 사직서가 아직도 서랍 안에 들어 있어요."

일자리의 '눈 맞춤'만큼 생활 인프라의 '눈 맞춤'도 중요해

K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청년층의 취업에 있어서 '눈 맞춤' 문제는 단순한 일자리를 벗어나 거주·교통 문제와 문화적 인프라에까지 맞물려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여가 활동과 자기개발에 관심이 많은 특성을 고려한다면 단순한 독려와 고용촉진 지원만으로는 지방으로 인력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김종한 경성대 교수는 "최근 부산 중소기업 사무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업을 선택하는 가장 큰 기준으로 25%가 임금을 꼽았고 23%가 '주말 휴무'를 들었다"며 "고성에 있는 조선소처럼 임금을 많이 주는 직장에 취업한 젊은이들이 주말에 여가를 즐길 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그만두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단순히 임금만으로 직업을 선택하던 시대에서 여가 등에 무게를 두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방의 중소산업 단지에서 가장 필요한 지원책이 교통과 보육·휴무 보장"이라며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이런 요구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여력이 없으므로 시 당국과 정부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아직은 과거 개념의 산업단지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른 복지예산에 순위가 밀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런 문제 때문에 지방 사람들도 중소기업 취직을 꺼리는 상황에서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라는 말이 효과가 있을 리 없다"며 "산업 육성 등 '하드'한 지원과 복지 등 '소프트'한 지원을 병행한 국가 차원의 마스터플랜이 나와야 지방의 인프라가 증대되고 구직자들을 유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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