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레바논에서 개전 이래 일일 최대 사망자가 발생하며 이란 휴전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이란은 휴전 합의가 위반됐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레바논이 휴전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 중이다. 휴전 최대 쟁점이었던 호르무즈 해협 개방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로이터>, <AP> 통신을 보면 8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은 개전 이래 레바논에 가장 강력한 공습을 가했다. 레바논 민방위국에 따르면 레바논 전역에서 254명이 숨지고 1100명 이상이 다쳤고, 이날 오후 최소 5차례 공습을 받은 수도 베이루트에서만 91명이 숨졌다.
레바논 보건부는 이날 사망자 수를 182명, 부상자 수를 890명으로 집계했는데, 이는 최종 집계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보건부 집계 기준으로도 이날 개전 레바논에서 전쟁 발발 뒤 일일 최대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레바논 전역에 최대 규모 합동 공습을 실시해 베이루트, 베카, 레바논 남부에 위치한 100여 곳의 이란 연계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본부, 군사 기지 및 지휘통제센터를 겨냥했다고 밝혔다.
이란은 레바논 공격이 휴전 협정 위반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의장은 8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성명에서 레바논 공격이 휴전 협정에 대한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양자 휴전이나 협상은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앞서 중재국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미국, 이란 및 양국의 동맹들이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즉각적 휴전에 합의"했음을 명시한 바 있다.
반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레바논이 휴전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를 보면 JD 밴스 미 부통령은 8일 취재진에 "이란은 휴전에 레바논이 포함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며 "우린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휴전 초점은 이란과 미국의 동맹국들, 이란 및 걸프 아랍국들"에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스라엘 쪽이 협상 성공을 위해 레바논에서 조금 자제"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8일 언론브리핑에서 "레바논은 휴전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미 P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별개의 작은 충돌"이라며 "헤즈볼라 탓"에 레바논이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이스라엘 총리실도 레바논이 휴전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휴전 발표 뒤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중단했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공습 뒤 9일 공격을 재개했다. <로이터>는 헤즈볼라와 가까운 레바논 소식통들을 인용해 헤즈볼라가 7일 오전 이스라엘 목표물에 대한 공격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8일 이스라엘 공습이 쏟아지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휴전 협정 위반을 이유로 9일 오전 이스라엘 북부 마나라의 소규모 키부츠(집단농장)를 향해 로켓을 쐈다고 밝히며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을 향한 이스라엘-미국 침략이 중단될 때까지 보복이 계속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헤즈볼라 소속 의원 이브라힘 알무사위는 <로이터>에 "헤즈볼라는 휴전의 일부라는 통보를 받고 이를 준수했지만 이스라엘은 늘 그렇듯 협정을 위반하고 레바논 전역에서 대량학살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헤즈볼라 의원 하산 파드랄라는 통신에 이스라엘 공격이 지속될 경우 "전체 합의에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도 레바논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면 "후회할 만한 보복"이 가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백악관이 11일 오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미국과 이란 대면 협상이 열릴 것이라고 밝힌 상황에서 레바논 문제가 휴전을 흔들 뇌관이 될지 우려된다. 미국 대표단을 이끌 밴스 부통령과 이란 대표단을 이끌 것으로 예상되는 갈리바프 의장이 공개적으로 상반된 의견을 표출 중이기 때문이다.
분석가들은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을 끝내는 것이 이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이란 테헤란의 분석가 메흐디 라흐마티는 "우리가 동맹 중 하나인 헤즈볼라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그들을 버린다면, 동맹들에게 우리를 지지해달라고 요청하면서도 우린 그러지 않는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조지워싱턴대 중동 연구 전문가 시나 아조디는 이란이 "미국과 장기 휴전 협정을 체결할 때 역내 어디서도 전쟁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는다"며 "만일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을 게속 허용한다면 이란이 다시 휘말릴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호르무즈서 유조선 한 척도 통과 못해…사실상 폐쇄 유지
최대 쟁점인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도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8일 <뉴욕타임스>는 선박추적업체 케이플러 자료에 따르면 7일 휴전 타결 뒤 유조선이나 가스 운반선 한 척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건화물을 실은 벌크선 4척만 해협을 통과했다. 케이플러 홍보 담당자 니코스 포티타키스는 공식적 상황이 어떻든 해협이 "사실상 폐쇄된 상태"라고 평가했다.
휴전 이후에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 수를 제한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 쪽이 중재자들에게 해협 통과 선박 수를 하루 약 12척으로 제한하고 통행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2주간 공격 중단을 밝히며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하고 즉각적이고 안전한 개방"을 밝힌 데 비해 이란 쪽은 해협 통과를 위해선 이란군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쟁 전 핵협상 쟁점이었던 이란 우라늄 농축 관련해서도 양쪽 견해 차가 여전히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의 "우라늄 농축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갈리바프 의장은 성명에서 "이란의 우라늄 농축 권리 부인"은 휴전 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 "포괄적 합의 어려울 것…어려운 문제 방치 뒤 소규모 합의 예상"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미·이란이 포괄적 합의를 타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를 보면 조 바이든 미 전 대통령의 이란 특사였던 로버트 말리는 "양쪽 입장 차를 고려할 때 포괄적 합의는 상상하기 어렵다"며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비축고 처리를 포함한 가장 까다로운 문제는 내버려 둔 채 "호르무즈 해협 문제와 일부 제재 완화를 포함한 일련의 소규모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측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싱크탱크 에미리트정책센터의 에브테삼 알케트비 소장은 <로이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탄도미사일, 무인기(드론), 대리세력, 핵문제, 호르무즈 통제 규칙 등 핵심 쟁점을 해결하지 않고 이란과 합의한다면 분쟁은 사실상 미해결 상태로 남게 되고 이 지역은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 타결 및 이행 때까지 모든 미군 전력이 이란 주변에서 대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든 미 함선, 항공기, 병력, 탄약, 무기"가 "진정한 합의가 완전히 이행될 때까지 이란 및 주변에 남을 것"이라며 "만일 어떤 이유로든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더 크고 강력하고 이전에 본 적 없는 '총격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핵무기는 없을 것이고 호르무즈 해협은 개방되고 안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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