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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 주역에게 사열을 허락하는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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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 주역에게 사열을 허락하는 나라에서

[최강욱의 '시야비야']<3>아름다운 조직을 만들기 위해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라는게 있다. 무능력이 개인보다는 위계조직의 메커니즘에서 발생한다는 이론으로,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였던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와 작가인 레이몬드 헐(Ramond Hull)이 1969년 공저한 책을 통해 주장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고위직 인사들의 무능력, 무책임으로 인해 우리는 많은 불편을 겪으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무능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무능한 사람들이 계속 승진하고 성공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능과 유능은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로렌스 피터와 레이몬드 헐은 우리 사회의 무능이 개인보다는 연공서열만을 앞세우는 폐쇄적 위계조직의 메커니즘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가면 결국 다 터진다
조직생활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나, 정말 본받고 싶은 제대로 된 윗사람을 모시는 행운을 만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진정 능력있고 바른 사람들이 조직에서 도태되거나 조직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조직의 상층부에서 늘 고민하고 노력하는 이들에겐 송구한 일일지 모르나, 실제 우리가 경험하는 조직생활이 어떤 이가 가진 고유의 장점을 개발하여 증진시키기 보다는 '조직의 이익'이나 '조직의 입장'을 내세워 인권과 상식을 억압하고, 개성과 인격을 말살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언제 한 번이라도 내부비리를 고발한 공익제보자나 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들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권력자의 충견들이 그를 대신한 감옥살이를 하고 나서 진실로 반성하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미담을 들어 본 적은 있는가?

다시 이론으로 돌아가 보자. 이들이 제시한 위 원리의 핵심은 "조직체에서 모든 종업원들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즉, 위계를 가진 조직 내의 구성원들은 승진을 통해 자신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위 직책을 맡게 된다.
그리고 승진한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하면 다시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할 기회를 얻는다. 따라서 조직을 구성하는 모든 개인들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나는 단계까지 승진하게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직위는 그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무능한' 구성원들에 의해 채워지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현 직위에서 거둔 업무 성과(job performance)에 대한 보상으로 승진을 시켜 주는 관행 때문에 일어난다. 그런데 승진된 자리에서 요구되는 역량은 현 직위에서 요구되는 역량과 그 성질이 다르기에 무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계속 부여되지만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고 자신의 직책을 다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런 현상은 조직의 폐쇄성과 연공서열의 타성이 강할수록 뚜렷이 나타난다고 피터는 말한다. 이런 타성이 방치될 경우 무능한 사람들이 주로 윗자리를 채우며, 결국 조직 전체가 무능해지는 결과를 빚게 된다는 것이다.

머리보다 감투가 더 커지면 마침내 자신과 조직이 동시에 희생되는 상황이 초래된다. 주위의 기대와 자신의 책임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역량에 비해 주어진 과제가 너무 벅차지만 이미 시간은 늦었다. 결국 책임을 전가하고 거짓말로 상황을 호도하는 가운데 더 깊은 나락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뻥뻥 큰소리치다가 정작 결과가 엉뚱하게 나오자 이리저리 둘러대는 지식인이나 권력자들도 그런 전형적 사례다.

하지만 편법과 미봉책으로 막고, 거짓으로 둘러대는 데도 한계가 있다. 막다른 길목에 가서 모든 사실이 폭로되면서 파국에 이른다. 당사자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신체적·심리적 '번아웃'(burnout) 상태가 되고 만다. 더이상 어찌해 볼 수 없는 지경이다. 그 다음은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무능한 사람으로 찍혀 퇴장하든지, 스트레스 질환으로 나가떨어지든지 둘 중 하나다. 유능하다는 주위의 평가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대신 혹평과 질타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유능함이 한 칼에 무능함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들' 뿐 아니라 우리의 '무능'도 문제다

잠재적 역량을 알아보는 지도자의 눈은 그래서 소중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의 가장 큰 능력은 '사람을 잘 쓰는 것'에 있다.

제 아무리 스스로 올바르고 뛰어난 지도자라도 제대로 된 이들과 함께 일하지 않으면 본래 의도한 성과를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폐해를 남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지도자가 스스로 무능과 독선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상황이 되면 '유유상종'으로 일관하게 되고, 결국 조직을 망치는 것은 물론 많은 실패와 피해를 낳는 결과로 이어진다.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하여는 일언반구 없다가 갑자기 '종북 논란'에 불을 지피는 행태를 보면 짚이는 바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게 비단 윗 자리에서 아랫 사람을 골라내는 이들에게 국한된 문제이자 능력일까?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주권자들이야말로 자신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홍보하는 이들을 '선거'라는 장치를 통해 얼마만큼 식별하여 제대로 걸러내고 있을까. 조직에 헌신한다는 이름으로 조직논리만을 앞세우고, 결국 조직을 괴물로 만들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조폭문화'의 현실은 또 어떠한가. 세간의 시선과 비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있는 권력의 의중을 살펴 사냥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아, 모든 일에서 예상대로 행동하는 일관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는 비아냥을 듣는 검찰 조직이 과연 개인의 역량이 저열해서 그토록 한심한 일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혼자서 살아가지 않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도모하여 이뤄내기 위해 각종 조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아를 실현하며 행복감을 느끼고자 한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과연 조직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조직 내에서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권력관계는 인성을 황폐하게 만들고 수많은 아첨과 협잡을 낳기도 하고, 더 없이 억울한 죽음을 양산하기도 한다.

스스로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고 비선을 통해 자신이 임명한 자들을 감시하게 만든 이를 최고 권력자로 둔 우리의 무능은 또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지극히 어려운 환경을 기어이 이겨내고 초인적인 인내와 노력으로 조직 안에서 '성공 신화'를 일구고 삶의 목표를 이루었다는 이들은 따뜻한 성정으로 자신이 과거를 추억하며 힘든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언행을 하는 경우보다, 그들의 게으름과 현실안주를 탓하며 조소와 채찍질만을 가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래서 결국 그 조직 구성원들조차 권력과 출세에 눈이 멀어 상식을 외면하는 결정을 남발하고, 결국 조직을 망가뜨리기에 이르는 것이다. 또 그토록 치열한 싸움과 경험을 통해 일구어낸 이 땅의 진보와 진보정당의 가치가 '조직'을 앞세운 폭력과 전횡으로 얼룩지고 있다는 한탄은 과연 '조직'과 '권력'에 대한 우리의 원망에서 제외될 수 있을 것인가.

조직의 위계질서로서만 지킬 수 있는 더러운 권력
▲ 7일 육군사관학교의 기념 행사에서 육사 생도들을 사열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오른 쪽으로 부인 이순자 여사와 손녀의 모습이 보인다. ⓒJTBC 화면 캡쳐
자신의 부하에게 '충성'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나서, 적절한 답을 찾느라 머뭇거리는 이에게 "충성은 직속상관에 대한 복종을 의미한다. 그것이 위계질서 속에서 쌓이면 당연히 통수권자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곧 국가에 대한 충성을 완성하는 것"이라며 득의양양하게 말하던 한 법률가의 무서운 확신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중간 관리자의 독선과 전횡으로 힘겨워하는 실무자의 고충을 최고 관리자에게 일러 주면, 그들이 보이는 한결같은 반응은 조직을 위해 그러한 실무자와 같은 하급자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역시 그들의 머릿 속에는 자신의 안일을 보장하고 평온한 복종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의 위계질서가, 단연코 약자의 고충을 앞서는 것이었다.

재벌의 해외재산을 관리하고 지키느라 갖은 편법은 물론, 감옥살이도 마다 않는 현대의 수많은 '마름'들의 모습이나,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사명보다는 자신의 승진이나 권세를 위해 자신의 상급자가 저지르는 수많은 불법과 위헌적 전횡을 앞장서 돕고 찬양하기까지 하는 '영혼 없는 공직자'들의 모습이 오늘도 우리 눈 앞에 수없이 명멸한다.

과연 그들이 사람으로 태어나 이루고자 했던 일은 무엇이고, 사람으로 살아가며 남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현인들이 '무능의 상징'이라 평가한 '자리'에 그토록 집착하며 모든 고결한 가치를 팽개치게 만드는 것일까. 가장 탐욕스럽고 무능한 이를 제일 높은 자리에 앉힌 우리의 무능은 지금까지의 가혹한 형벌을 딛고, 과연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인가. 그 더러운 권력을 위해, 그 더러운 권력을 지켜내고 이어가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하는, "일심으로 충성하는" 이들은 과연 무엇을 바라며 날을 새울 수 있을까. 권력에 빌붙어 더 큰 욕망을 실현하려는 수 많은 불나방들이 영원히 그들 곁에서 날갯짓을 해 주리라 믿을까. 아직도 한 줌 남은 더러운 권력을 지키느라 스스로의 존재마저 부정하며 길거리를 헤매는 '출세한 언론인'의 타락한 영혼은 이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욕망을 앞세운 판단 착오로 인해 그저 참아내고 견뎌야 했던 우리의 지난 세월은 어떤 교훈과 미래를 우리에게 남기고 사라져 갈까. 반란의 주역에게 사열의 영광을 허락하는 사관학교를 둔 나라에서, 만일 그 세월이 더 흉칙하게 화장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면 아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어깨 걸고 아름다운 조직을 만들어 다시 올지 모를 어둠을 이겨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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