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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의 경성을 그린 '붉은색' 점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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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의 경성을 그린 '붉은색' 점묘도

[프레시안 books] <붉은 역사 답사기 : 경성편>

1926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완공됐다. 꼭 100년 전이다. 해방 후에도 1996년 철거가 완료되기까지 식민통치의 심장부는 70년 동안 서울 한복판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100여 년 전 경성은 어땠을까. 허름한 지게꾼·인력거꾼과 말끔한 모던보이·모던걸이 공존하고, 일제의 억압과 저항, 근대를 향한 욕망이 뒤엉켰을 법한 경성의 풍경은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아련하다.

해방 뒤 남에서도, 북에서도 대접받지 못한 이들의 자취는 더 흐릿하다. 대개 아무렇게나 바짝 깎은 머리, 가슴에 붙은 수인번호가 고단했던 일생의 한자락을 드러낼 뿐.

그들은 부잣집 후손이거나, 당대의 명망가이거나,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이거나, 노동자·농민이거나, 백정의 자식이거나, 기생 출신이다. 공산주의자이기도 하고, 아나키스트이기도 하고,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뜻을 모아 연대하고, 갈등하다 갈라서고, 그러다 숱하게 다시 모였던 그들의 해방 전 흔적이 서울 사대문 안에 아직 남아있다.

<붉은 역사 답사기 : 경성편>(최백순 지음. 롤러코스터)은 1925년 4월 17일 중국요릿집 아서원에서 첫 장을 연다. 지금은 롯데호텔이 들어선 그곳이 한 세기 전 조선공산당이 비밀리에 결성된 장소다.

저자의 전작은 <조선공산당 평전>. 현 진보 운동의 전사(前史)라고 할 만한 해방 전 좌익 운동의 흥망성쇠를 추적했던 그는 '스핀오프'라고 소개한 이번 책에서 경성의 지도 위에 붉은 점묘도를 그렸다.

▲<붉은 역사 답사기 : 경성편> ⓒ롤러코스터

장소를 모티브 삼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했지만, 수많은 단체와 인사들이 교차하며 같은 듯 다른, 하나의 서사를 완성한다. 정동·사직동, 안국동·인사동·재동, 종각·견지동, 동숭동 등에서 그들이 암약하며 가슴에 품었던, 다른 세상을 향한 갈망의 공간적 재현이다.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한 김찬,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이 이 서사의 주연급처럼 종횡무진 연결고리를 만든다. 당시 경성 정국의 한 축이었음에도 해방 후 남과 북의 체제 정통성에 짓눌려 온당히 평가받지 못한 좌익 계열에 관한 저자의 각별한 관심이 묻어난다.

첨탑만 남아있는 정동 소련 총영사관 터, 경복궁 인근의 한성임시정부 표지석, 윤동주의 누상동 하숙집, 사회주의단체 북풍회 회관 터 등에선 모스크바, 상하이, 도쿄에서 전개된 국제적 활동과 경성의 좌표를 연결한다.

그 붉은 경성은 '조선의 아나키스트'로 평가한 이회영, 좌우 합작을 염원한 신간회와 여운형, 훗날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같은 명망가들과 독립과 새 세상을 향한 교집합으로 다시 이어진다. 형평사 운동을 주도한 백정의 자식 장지필, 기생 출신으로 좌익 계열 독립운동을 한 '사상기생(思想奇生)' 현계옥, 정칠성 등도 재조명된다.

그런가하면 최초의 여성전문 의료기관 보구녀관 터에선 노비의 딸, 남편 폭력에 만신창이가 된 두 여성이 조선인 최초의 간호사 이그레이스, 김마르다로 재탄생한 과정을 그린다. 서대문형무소에서도 유관순과 함께 동고동락한 여성들이 수감됐던 '8호 여감옥'에 주목한다. 이정수 정순희 부부와 딸 이순옥이 모두 독립서훈을 받은 유일무이한 가족사는 그들이 운영했던 인사동 남산여관의 자취에 담았다.

서양식 주택 딜쿠사의 원주인이자 기미독립선언서를 전세계에 알린 외신기자 앨버트 테일러, 경성트로이카 이재유를 도왔던 일본인 지식인 미야케 시카노스케를 향한 추모의 마음도 온전히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활동가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던 종각 부근 설렁탕집, 사회주의단체 '화요회' 회관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1000원짜리 잔술집에 관한 저자의 감회는 감초처럼 글맛을 돋운다.

지레짐작 음침할 것 같은 좌익 이미지와 달리, 낯선 이름과 생소한 단체가 툭툭 나와도 흐름에 방해되지 않는다. 한 세기 전 뜨거웠던 '그곳'의 현재 사진과 함께, 대중교통으로 찾아갈 수 있도록 친절한 설명을 꼼꼼하게 곁들였다. 서울 도심으로 붉은빛 나들이를 권하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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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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