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3일 제천으로 이사 온 지 4년 만에 '대안공간 야생초 편지' 개관식을 가졌다. 제천 오지에 있는 낡은 폐교를 인수해 거의 혼자서 학교 리모델링을 했다. 행사 당일도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여기저기 공사 자재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동안도 폐허나 다름없는 학교 교실에서 각종 행사와 토론회를 가졌다. 지속적으로 하던 일이 있었고, 다른 단체들이 자기네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틈틈이 작업하느라 이렇게 시간이 걸렸다. 그런 상황에 굳이 개막식을 연 이유는 지역 주민과 지인들에게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새출발을 다짐하기 위해서였다. 아, <야생초 편지>라는 이름은 내가 붙인 것이 아니다. 이곳에 오기로 결정하고 짐을 싸 들고 왔더니 제천 간디공동체 사람들이 이미 간판을 만들어 붙여 놨다. 그래도 책 이름과 같으면 곤란하니 그 앞에 내가 '대안공간'을 붙였다.
이곳은 워낙에 교통 오지라서 사람들을 초청하기에는 조금 미안한 곳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고속도로 나들목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은 거의 없을 듯한데 이곳이 그렇다. 남도에서 오는 사람들에겐 더 힘든 곳이다. 증평 나들목에서 나와 국도로만 한 시간 반을 달려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제천 시내까지 가려면 꼬불꼬불 산길로 무려 1시간이나 가야 한다. 그럼에도 개막식 행사에 100명 넘는 분들이 전국에서 찾아주었다. 초대 손님으로 가수 김현성을 모셨다. 김현성은 김광석과 윤도현이 불러 거의 국민 애창곡이 된 <이등병의 편지>와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만든 싱어송라이터이다. 그간의 업적에 비해 너무도 알려지지 않은 가수이다. 내가 그를 초대한 이유는 그로부터 꼭 듣고 싶은 노래가 있어서였다. 20년 전 한 음악회에서 그가 내 책 <야생초 편지>를 읽고 노래로 만들어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날 온 손님들 가운데 광명마을대학팀을 이끌고 온 윤호창 님이 거실 벽에 붙어있는 "생태문명에 관한 열한 가지 테제"를 읽고는 내가 왜 이런 오지에 와서 저런 말도 안 되는 표제어를 붙여놓았는지 얘기해 달라고 요청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원래의 긴 글은 작년에 <시민언론 민들레>에 발표한 것이다. 아마도 거기 적힌 생태문명의 내용이 현재의 문명을 등지지 않고는 실현하기 힘든 것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며 뽐내고 있는 지금의 문명은 생태문명과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내용을 도시 한 복판에 걸어두면 모두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저건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생활 수칙 아닌가?"라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먼저 열한 가지 테제를 살펴보고 이야기를 이어가자.
1. 자본의 요구로 모든 인구를 도시로 몰아넣은 것부터 고치고자 한다.
2. 인간은 모든 생물종 가운데 가장 우월한 존재로서 자연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신념을 거부한다.
3. 인간의 표준 같은 이상형(ideal type)을 인정하지 않는다.
4. 거대 조직, 거대 시설, 거대 이념 같은 거대함을 거부한다.
5. 국가라는 인위적 구조와 국경선을 거부한다.
6. 자치와 자급자족을 추구한다.
7. 생명지역(Bioregion)에 근거한 생태문화를 추구한다.
8. 자주권을 가진 생명지역의 세계연방을 추구한다.
9. '농사짓기'를 업(業)이 아니라 생활과 문화 차원에서 바라본다.
10. 현대의 첨단기술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인다.
11. 산업사회를 지탱하는 지금의 제도 교육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생태문화 교육으로 전환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먹물 출신이지만 서른 살 이후로 나를 철저히 해체하고는 바닥에서부터 새로 출발한 사람이다. 그 내용의 일단은 <야생초 편지>라는 책에 잘 나와 있다. 생태문명 테제는 생태 관련 책을 읽고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문장의 나열이 아니다. 지난 40년 동안 산속 농장에서, 첨예한 사회갈등의 현장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온몸으로 체득한 것을 대안의 관점에서 정리한 것이다. 어찌 보면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나름의 대안이기도 하다.
제천으로 오기 전 전남 영광의 산속에서 거의 20년을 살았다. 원래는 산속 오지에 '생태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갔는데 소수의 인원으로 자립적인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확인하고는 눈물을 머금고 보금자리를 떠났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도 벅찬 마당에 타의에 의해 영광에서 탈핵 운동 조직의 대표를 맡는 바람에 거의 사생활이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지역 대표만이 아니라 광역과 전국 단위 대표까지 동시에 맡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시민단체는 대표직에 임기가 있는데 나는 그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었다. 회원들이 놔주지 않았다.
내 꿈은 문명전환 테제에 적혀있는 저 내용을 실천하는 것인데 탈핵운동이라는 한 주제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에 빠져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국방부 보안사가 나를 사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핵발전소에 관여하는 정부의 여러 부처 가운데 하나가 국방부이다. 핵발전소를 지키는 군부대가 근처에 있고 또 보안사는 거의 정보부 수준으로 국민을 감시하는 곳이 아닌가! 나는 이미 젊은 시절 보안사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되어 무기징역을 살고 나온 사람인데 이렇게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탈핵운동은 대단히 중요한 부문 운동이지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이 아니었다. 지역의 요구와 전체 운동판의 상황이 그 일을 10년이나 끌고 가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동지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내 역할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과감히 짐을 꾸렸다. 어디로 갈까 하고 돌아다니다가 제천 간디학교 설립자인 양희창 선생을 만나 지금의 폐교를 소개받았다. 학교 운동장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 땅의 기운과 앞을 막아선 산세가 너무도 좋았다. 매일 저 산을 바라만 보고 살아도 한평생 갈 듯했다. 그 즉시로 결정을 내렸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간디 학교 공동체가 20년 동안 터전을 닦아놓아 대안적인 사회운동을 하기에 풍부한 토양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양희창 님과는 20여 년 전에 만나 함께 대안대학 설립을 논의했던 사이이기도 했고, 지금은 네트워크형 마을대학 건설에 힘을 쏟고 있다.
'대안공간 야생초 편지'의 개관 목적은 분명하다. 이곳을 대안 사회를 열어갈 교육과 훈련, 활동의 거점으로 만들고자 함이다. 옛날식으로 청년들을 불러 모아 합숙하면서 일정 기간 교육하는 형태는 시대 여건에 맞지도 않고 여력도 안 되어 채택하지 않았다. 다만 이곳의 자랑거리인 '생명평화도서관'을 활용하여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내년부터 '야생초 편지 북스테이'라는 이름으로 연간 프로그램을 공지하고 달마다 해 나갈 것이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 기후 위기의 대안을 찾는 사람들, 지역 공동체 활동을 잘하고 싶은 사람들, 그저 책이 좋은 사람들, 인류의 미래를 위한 사상과 철학이 궁금한 분들 등 누구라도 호기심을 가질만한 주제를 선정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도서관에는 내가 지난 30년 동안 오로지 대안 사회를 꿈꾸며 체계적으로 모은 1만 여권의 책이 있다. 분류도 일반 도서관 방식이 아닌 주제별로 되어 있다. 나는 골방에 틀어박혀 책만 모으고 들여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회운동을 하는 가운데 이런 일을 했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 이것이 중요한 자산이 된다. 당장에 '대안공간 야생초 편지'는 '마을대학 네트워크'의 일부이기도 하고, '마을공동체운동'의 거점이기도 하며, '생명지역운동'의 센터이며, '자연식 요리'와 '생태교육'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일들은 학교 리모델링 중에도 지속적으로 벌어졌고 개관식 이후로는 더욱 체계적으로 운영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직접적으로는 지역의 '간디 공동체'가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간접적으로는 내가 관여하고 있는 다양한 시민단체가 필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본다.
생태문명에 관한 열한 가지 테제를 보고는 대단히 이상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문명이 그와는 반대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비현실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의 문명이 이대로 가면 멸망하리란 것도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에겐 오로지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비현실적인 삶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멸망을 선택할 것인가. 전자의 삶은 다소 불편하고 힘들겠지만 잘 적응하면 내적인 충만과 행복을 느낄 수 있고, 후자의 삶은 편하고 쉬워 보이지만 공허하고 암담하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일본에서 청년들을 상대로 강연한 적이 있다. 한참 문명의 미래와 생태적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얘기한 끝에 질문하라고 했더니, 한 젊은이가 손을 들고는 밑도 끝도 없이 "도대체 나는 왜 태어났을까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를 초청한 일본인 교수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어느 시대에나 미래를 잃은 세대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양극화가 극에 달한 시대처럼 한 세대 전체의 희망이 엷어져 본 적이 있었던가. 오죽하면 튠베리같은 어린 소녀가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미래를 훔쳐 가버렸다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캠페인을 벌이고 있을까.
온라인 클릭질과 현란한 엔터테인먼트에 의지해 자신의 무력함을 가려보는 짓도 결국 돈 떨어지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국가가 돈을 벌어 이들에게 나눠주는 주는 것은 '희망 고문'을 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국가가 돈을 벌 수 없는 처지에 빠지면 폭동과 전쟁, 이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실을 모두 거부할 수는 없어도 현실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서는 안 된다. 몸의 절반 정도는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생명은 위기에 처하면 살 궁리를 찾게 되어 있다. '대안공간 야생초 편지'는 그 '살 궁리'를 알아보기 위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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