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방에서 TV를 보던 둘째 아이가 갑자기 거실로 달려왔다.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시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이 왜 총을 쏘느냐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싶었다.
SBS 드라마 <닥터 X>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다뤘는데, 그것을 봤다.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인내심이 없던 아이는 다시 TV를 보러 재빠르게 방으로 뛰어갔다.
드라마가 다 끝나고 다시 온 아이에게 5.18이 일어난 이유와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해 설명해 줬다.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싶었다. 그런데 한참 설명을 듣던 아이가 한마디 했다.
아이의 뜬금없는 반응에 나 역시 절반만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은듯 하다. 아이의 생일도 5월 18일이다. 자기 생일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싫은 듯했다. 역사적 사실이기에 그런 감정이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TV에서 방영되던 <모래시계>를 보고 충격받은 나와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공중파 드라마에서 5.18을 다뤘다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아이에게 자기가 태어나기 한참 전 한국 현대사를 설명해 줄 수 있었다. 언제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불편해도 알아야 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이 드라마에 대한 논란이 터졌다. 이 드라마가 "특정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5.18을 끼워 넣었다"며 드라마 방영 중단 국민 청원이 등장했다. 5.18에 대해서도 "여야의 시각차 등 일부 부분에서 정치적 논쟁이 이뤄지고 있고 좌우의 견해도 일정 부분 다른 엄연한 '정치적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사법부의 판단과 법률 개정, 국가적·역사적 평가가 완료된 사안인 5·18을 두고 견해가 다른 '정치적 사안'이라고 한다면, 우리 현대사에서 논란이 아닌 사안이 있을까. 5.18이 여전히 논쟁이나 갈등의 중심에 있다고 한다면 이를 정치적 쟁점이나 선거 전략으로 다루는 극우 진영의 욕심이 여전하기 때문이리라.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9월 10일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민국 자유공정미래연합 주관으로 열린 '국회의사당에서 국민이 심판한다. 국민대회'에서는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취지의 주장이 나왔다. 이 자리에서 이진숙 의원은 5.18 민주유공자 선정 과정이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가 특정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5.18을 끼워 넣었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되레 이 청원이 특정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5.18을 둘러싼 논란은 늘 반복된다. 그나마 최근에야 정치인들이 대놓고 관련된 허위 사실과 왜곡, 폄훼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다. 여기까지 온 것도 5.18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알린 시민들의 힘이 크다. 기억을 잊지 않는 이들의 힘이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을 막은 힘도 마찬가지다. 시민의 힘으로 저항하고 역사를 바꾼 기억이 당시 계엄을 막았다. 그런 기억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건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아이가 알았으면 하는 '불편한 진실'은 하나 더 있다. 29일은 160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 4주기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이 참사를 기억해달라며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관련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더디다.
'10·29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는 조사 지연과 내부 갈등으로 파행을 겪었고, 검경 합동수사팀도 뚜렷한 성과 없이 활동을 종료했다.
호박 머리띠와 유령 망토를 아직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 2022년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은 '할로윈데이'가 아닌 이태원 참사였다고 설명하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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