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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지·학업 중단·알바 해고'…여성 청소년 자해 후폭풍, 성인기까지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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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지·학업 중단·알바 해고'…여성 청소년 자해 후폭풍, 성인기까지 영향

[고통을 새기는 소녀들] ② 청소년기 자해 경험한 여성 편견·배제, 성인기 고통만 가중

윤서(24) 씨는 중학생 시절 고양이를 분양받으러 간 곳에서 성폭력을 당했다. 가해자는 윤서 씨에게 "왜 치마를 입고 와서 그러냐. 네가 나 꼬시려고 한 것 아니냐"며 윤서 씨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미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을 당했던 윤서 씨는 성폭력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자기비하에 빠졌다. '정말 내 잘못 때문에 이런 폭력을 겪는 게 아닐까' 하는 자책이었다.

자책은 자해로 이어졌다. 손목, 팔, 허벅지, 가슴, 배 등등 손 닿는 몸은 전부 그었다. 죽으려고 술을 마신 채 옥상에 올라가기도, 진통제와 정신과 약물 100알을 먹어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정신병원에 3차례 입원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지만, 자해 외에는 스트레스를 풀거나 감정을 표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정말 다행히도 윤서 씨의 자책은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서서히 줄었다. 타지에 있는 대학에서 생활하면서 고향에서 겪은 폭력들을 서서히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투로 흉터를 가린 뒤부터는 자책이 완전히 멈췄다. 윤서 씨가 찾은 커버업 전문 타투샵이 자해 흉터를 가리려는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가게 안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자해 경험을 온전히 이해받은 것도 정서적으로 도움이 됐다.

윤서 씨 사례처럼 많은 자해 경험 청소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해를 줄이거나 멈춘다. 2012년 영국의학학술지 '란셋(The Lancet)'에 발표된 대규모 추적 연구를 보면 청소년기에 자해를 경험한 청년 80% 가량이 성인기 이후 자해를 중단했다. 학계는 뇌 발달로 인한 충동 조절과 생활환경 변화, 문제 해결 방식 변화 등 요인으로 성인기에 자연스레 자해를 중단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자해는 청소년기 잠시 벌이는 일탈'이라거나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 성인기에도 자해를 이어가다 생명에 위협을 겪거나, 아르바이트에서 해고당하는 등 후폭풍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해 후폭풍은 당사자를 고립으로 몰아넣고, 고립은 다시 자해로 이어진다.

출처 : 픽사베이(Pixabay)

아영(19) 씨는 지난 5월 순환기내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한 번에 털어먹고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에크모(심폐 기능을 보조하는 장비)를 사용해 겨우 살아났지만, 예후가 좋지 않아 별도 수술도 받았다. 건강 탓에 올해 입학한 대학은 제대로 다녀보지도 못한 채 휴학해야 했다.

심정지 상태에 놓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약물 자해는 처음이 아니었다. 아영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께 자해 흉터를 처음 들켰다. 당시 부모님은 식칼을 가져와 "이 칼 줄 테니 내 앞에서 해 보라"며 아영 씨를 몰아쳤다. '자해는 극도로 나쁜 짓'이라는 뜻을 전달할 의도였겠지만, 이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약물 자해를 부추기는 결과만 낳았다. 아영 씨는 사건 이후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약물을 들이부었다. 그러면 잠시 안정감을 느꼈지만 당연히 건강 악화가 따라왔다. 건강이 나빠지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면 또 약물을 들이붓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나쁜 걸 몰라서 자해하는 게 아니다. 아영 씨는 코로나 시기 사귄 친구들과 잦은 갈등을 겪었다. 성인이 된 지금이라면 끊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어린 아영 씨에게 친구들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여기에 성인 남성에게 속옷 사진을 요구받는 디지털성폭력까지 겹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졌다. 그 결과인 자해에 대해 부모님은 원인을 묻고 함께 해답을 찾기보다 타박을 했다. 타박은 아영 씨를 더욱 고립시켰고, 고립은 아영 씨가 더욱 자해를 찾게 했다.

성인이 된 아영 씨는 앞으로의 사회생활이 막막하기만 하다. 그는 "병원도 그만 가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 슬프다. 지금까지도 못 버텼는데, 앞으로 훨씬 넓은 사회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몰라 너무 벅차고 죽어버리고만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너무 각박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해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영 씨 걱정처럼, 실제로 한국 사회는 실제로 자해를 경험한 이들에게 각박하다. 은채(23) 씨는 대학교 입학 후 생계를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근무했다. 청소년기 학교폭력과 가정환경으로 겪는 스트레스를 자해로 풀었는데, 평소 팔 토시로 흉터를 가리고 있었기에 동료 직원도 손님도 자신의 자해 사실을 몰랐다. 그러다 딱 한 번 매니저가 자해 흉터를 봤고, 은채 씨는 그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렇게 건강하지 않은 상태면 굳이 여기서 일할 필요 없다'는 이유였다.

매니저의 말이 '아프면 치료 먼저 받는 게 좋다'는 배려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해고당한 은채 씨 입장에선 '아프면 사회에 나오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경제활동을 그만둔다고 해서 치료에 전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경제활동을 해야 수익이 생기고, 수익이 생겨야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사회생활을 통해 고립되지 않는 건 덤이다.

결국 은채 씨는 자괴감에 휩싸여 해고당한 그날 바로 팔에 상처를 냈다. 이후로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력감을 느낄 때면 팔을 긋는다. '내가 해냈다'는 감각을 느낄 때가 자해 흉터를 볼 때뿐이어서다. 밖에 나갈 때에는 최대한 상처가 보이지 않도록 팔을 꽁꽁 싸맨다. 자해에 대한 낙인으로 고통받고 싶지 않아서다. 그는 "최근 생계를 위해 커피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는데 또 잘릴까봐 걱정"이라며 "자해에 대한 인식이 너무 좋지 않으니 잘 숨기는 방법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은채 씨는 이렇게 답했다.

(③편에서 계속)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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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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