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1년 신해박해 당시 목숨을 잃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 복자의 얼굴이 현대 과학의 힘을 빌려 230여 년 만에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영국의 리처드 3세 등 해외 역사적 인물들의 얼굴 복원 트렌드와 궤를 같이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형태 복원을 넘어 고대 유전자 분석까지 결합된 국내 최고 수준의 융복합 학제간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전북 완주 초남이성지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가톨릭대학교 이우영 교수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바우배기 묘역에서 발굴된 윤지충 복자의 두개골을 바탕으로 다각적인 '얼굴 복원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연구진은 2023년 유해의 두개골을 컴퓨터단층촬영(CT)해 3차원 디지털 모델로 변환한 뒤, 한국인의 얼굴 연조직(물렁조직) 두께 데이터와 해부학적 근육 템플릿을 적용해 1차 실물 복원상을 완성했다.
하지만 당시 적용된 연조직 데이터가 '누운 자세(仰臥位)'로 촬영된 것이라 중력에 의해 얼굴 윤곽이 뒤로 처지는 형태 왜곡의 한계가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24년에는 '앉은 자세(座位)'로 촬영된 143명의 데이터를 새롭게 적용해 기립 상태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얼굴 윤곽을 도출해 냈다.
가장 큰 난관은 피부색, 눈동자 색, 머리카락 색 등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 형질을 알아내는 'DNA 분석'이었다. 230년간 매장된 뼛조각에서 추출한 DNA는 99% 이상이 토양 미생물로 오염되어 인체 유전자 비율이 0.77%에 불과했다.
이에 연구진은 2026년 현재 일반적인 염기서열 분석이 아닌, 인체 유래 분자만 선택적으로 낚아채는 '표적 포획(Target enrichment)' 기법과 통계적 추정으로 결측치를 메우는 최신 기법을 도입해 재도전 중이다.
나아가 형태학적 타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친족인 해남 윤씨 가문의 3D 얼굴 스캔 데이터와, 윤지충 복자의 증조부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을 비교해 '가족 유사성'이 적절히 반영되었는지 교차 검증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이러한 첨단 복원 작업이 지니는 한계점과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한 날카로운 토론도 이어졌다. 2021년 발굴 당시 유해 감식을 총괄했던 전북대학교 송창호 교수는 토론문을 통해 두개골과 DNA 분석만으로는 완벽한 생전 모습을 구현하기 어렵다는 과학적 한계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송 교수는 "두개골은 골격 형태를 알려줄 뿐, 실제 얼굴을 결정하는 연골의 두께나 입술의 모양, 눈의 크기 등은 상당 부분 추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생전의 체중, 영양 상태, 질병, 노화 정도에 따라 얼굴이 크게 달라지는데 이는 DNA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작업 전문가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도 크다"고 짚었다.
그는 "복원된 얼굴은 여러 가능한 얼굴 중 하나일 뿐인데, 대중이 이를 '실제 고인의 100% 진짜 얼굴'로 오인할 위험이 있다"며 과도한 확신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러한 치열한 과학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번 복원 프로젝트가 지니는 종교사적·학술적 가치에는 이견이 없다.
일각의 '종교적 신성성 훼손' 우려에 대해 이우영 교수는 "과학적 복원은 신앙의 대상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된 관념이나 도상을 다시 '구체적인 육신을 지녔던 실재 인간'의 얼굴로 되돌려 놓는 작업"이라며 "신앙의 역사성을 재확인하고 인격적으로 대면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완주 초남이성지에서 시작된 첨단 과학과 철저한 고증의 만남이 불완전한 파편 속에서도 잊힌 역사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학계의 끈질긴 노력에 대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에 역사와 종교를 비롯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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