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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고통엔 민감, 노동자 괴롭힘엔 무뎌? "동물권 단체에 민주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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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고통엔 민감, 노동자 괴롭힘엔 무뎌? "동물권 단체에 민주주의를"

[동물권 운동, 새 길을 찾다] ② 동물단체의 성장과 커진 책임: 대형 동물단체가 이뤄낸 것과 이뤄내야 할 것

한국에서 동물권 운동의 성장은 놀랍다. 불과 이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동물보호는 소수의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자선적 활동 정도로 간주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동물 학대, 번식장, 개 식용, 길고양이 학대, 공장식 축산, 동물실험, 전시동물과 야생동물의 삶은 시민사회와 정책의 중요한 쟁점이 됐다.

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2025년 국가승인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반려동물 양육 가구 비율은 29.2%에 이르렀고, 반려인과 비반려인을 막론하고 동물학대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93.2%에 달했다. 2024년에는 오랜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었던 개 식용을 종식하는 특별법까지 제정됐다. 동물의 고통과 피해를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는 새로운 윤리적 감수성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반가운 변화다.

이 변화의 한복판에서 동물권 단체들도 빠르게 성장했다. 작은 자원활동가 모임으로 출발했던 단체가 수십 명의 상근활동가와 대규모 보호시설, 위탁시설, 동물병원, 정책·교육·홍보 부서를 갖추고 수십억 원의 예산을 운영하는 조직으로 발전했다. '동물권행동 카라'만 보더라도 2002년 9명의 개 식용 반대 활동가가 만든 '아름품'에서 출발해 구조와 입양을 넘어 정책, 교육, 소송, 캠페인, 영화제, 보호시설 운영에 이르는 종합적인 동물권 조직으로 확대됐다. 2023년 카라의 수입은 약 65억 원, 지출은 약 64억 원이었으며, 고유목적사업 인건비만 약 21억 원에 달했다. 이제 우리는 동물권 단체를 '선한 뜻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 이해할 수 없다. 상당한 자원과 전문성,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하나의 제도적 행위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형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대형 동물권 단체의 등장을 우선 동물권 운동이 거둔 사회적 성공의 결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바로 그 성공 때문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권력과 새로운 윤리적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 역시 직시해야 한다. 단순히 단체의 규모가 동물권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질문은 동물의 권리를 위해 축적된 자원과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고 통제되며 다시 사회로 재분배되고 있는가이다.

동물의 고통을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힘

대형 동물권 단체가 갖는 가장 큰 가능성은 개별적인 구조와 구호를 넘어 동물의 고통을 구조적 문제로 전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심각한 학대를 당했거나 사회화되지 않은 동물을 구조해 치료하고, 장기간 돌보며 행동 교정을 거쳐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는 일에는 공간과 인력뿐 아니라 의료와 행동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동물을 구조하는 순간부터 그 생명의 이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 단체는 이처럼 개별 구조자나 작은 지역단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치료·보호 체계를 만들고, 필요한 법률·의료·교육 자원을 다른 활동가들과 공유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개인 구조자 한 명이 눈앞에 있는 개와 고양이를 구할 수는 있지만, 대규모 번식장의 폐쇄를 요구하고 법 개정을 추진하며 정부의 동물정책과 예산을 분석하고 동물 사육 방식을 변화시키는 일은 지속적인 인력과 전문성을 갖춘 조직 없이는 쉽지 않다. 변호사, 수의사, 정책 전문가, 조사연구자, 캠페인 담당자와 교육자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조직이 만들어져야 동물에게 고통을 유발하는 제도 자체에 개입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동물보호와 동물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민이 증가하면서 동물 문제가 특정한 정치적 진영이나 소수 활동가만의 의제로 머물지 않게 됐다. 정치인들 역시 동물단체나 보호시설을 방문하고, 보호 활동에 참여하거나 봉사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알리면서 동물 친화적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이런 변화는 대형 동물단체가 정치권과 접촉면을 넓히면서 동물보호 관련 법이 공론화되고 입법 의제로 채택되는 속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동시에 단체 대표의 권력감 또한 강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대형 동물단체가 규모와 자원,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조직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일 자체가 거대한 과제가 된다.

▲'동물권행동 카라' 노동조합 집회 중 피켓 사진. ⓒ김현미

구조의 성공이 구조의 덫이 될 때

동물 구조에는 특별한 역설이 있다. 더 많이 구조할수록 더 많은 공간과 노동과 의료비가 필요하고, 더 큰 비용을 충당하려면 더 많은 후원이 필요하다. 후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구조 이야기를 알려야 하고, 학대 동물 구조 현장은 다시 새로운 후원을 불러온다. 이렇게 해서 '구조–보호–모금–시설 확장–추가 구조'가 서로를 밀어 올리는 순환이 형성될 수 있다.

이 순환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 수단이 목적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호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조직이 존재하는지, 동물권이라는 사회적 변화를 위해 시설이 존재하는지 그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구조한 동물의 숫자와 후원 규모, 건물의 크기가 단체의 성공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면서 동물이 왜 지속해서 버려지고 상품화되고 학대받는가를 묻는 예방적 활동은 상대적으로 가시성이 떨어질 수 있다.

감정의 정치도 양면적이다. 동물권 운동은 고통받는 존재의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강력한 시민적 공감을 만들어왔다. 이름이 있는 한 마리의 개, 학대받은 고양이, 철창에 갇힌 사육곰의 이미지는 복잡한 설명보다 즉각적으로 사람을 움직인다. SNS 시대에 이런 힘은 더 커졌다. 문제는 동물의 고통이 지속해서 후원자를 움직이는 '콘텐츠'가 될 위험이다. 더 극적인 피해와 더 감동적인 구조 서사가 주목받을수록 잘 보이지 않는 동물, 매력적이지 않은 동물, 장기적인 돌봄이 필요한 동물은 주변으로 밀릴 수 있다.

종종 구조 이후 동물의 삶은 치료와 좋은 돌봄자의 입양이라는 행복한 이야기로 상상되지만, 그것은 미디어적 현실일 뿐이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경우, 구조된 동물들이 불법 위탁업체에 방치된 채 입양 공고에도 오르지 못하고 병들고 죽어갔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이동·감금됐다. 그래서 대형 단체일수록 "얼마나 많은 동물을 구조했는가"가 아니라 "구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얼마나 만들고 있는가?"를 늘 스스로 물어야 한다. 구조 이전의 예방, 번식과 거래의 규제, 동물 유기를 줄이는 교육, 입양 활성화, 구조 이후의 사회화와 안정적인 삶이 하나의 연결된 과정이어야 한다.

동물과 함께하는 인간의 노동환경

대형 동물권 단체가 반드시 성찰해야 할 또 하나의 영역은 인간의 노동환경이다. 동물 돌봄은 육체적으로 고되고 감정적으로도 소진되기 쉬운 노동이다. 오랫동안 학대받은 동물을 돌보고, 배설물을 치우고, 공격성이 있는 동물을 사회화하며, 병들거나 죽어가는 동물을 반복해서 마주하는 일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지속하기 어렵다.

그런데 동물권 단체가 활동가의 헌신과 사명감을 강조할수록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소진을 조직과 대표에 대한 충성으로 감당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특히 동물보호와 돌봄 현장에는 여성 활동가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먹이를 주고, 청소하고, 치료를 보조하며, 입양자를 상담하는 등 매일 반복되는 돌봄 노동의 상당 부분을 담당한다. 반면 학대 현장에 출동해 동물을 구조하거나 크고 공격적인 동물을 제압하는 일은 훨씬 극적이고 가시적이다.

그 결과 여성들이 다수인 조직에서도 소수의 남성 활동가가 '용감한 구조자'로 주목받고 더 큰 권위와 지도력을 부여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여초 조직'이라고 해서 저절로 성평등한 조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일상적인 돌봄을 담당하고, 누구의 노동이 전문성과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되며, 누가 조직을 대표하고 의사 결정권을 갖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선한 가치를 위해 일한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시하거나 여성들의 돌봄과 감정노동을 보이지 않는 헌신으로 소비한다면, 이는 돌봄 노동을 사랑과 희생의 이름으로 저평가해 온 오래된 사회적 관행을 시민운동 내부에서 반복하는 일이 된다. 동물의 고통에 민감한 조직이라면 그 동물을 돌보는 사람들의 노동조건과 조직 내부의 불평등에도 그만큼 민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형 동물권 단체 중 유일하게 노동조합을 조직한 카라의 노조 활동은 단순히 임금과 근로조건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동물권의 가치와 노동자 존중의 가치가 함께 훼손되는 것을 막고, 돌봄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을 요구하는 활동으로 볼 필요가 있다. 동물권과 노동권을 서로 경쟁하는 가치로 만드는 순간 동물권 운동은 자신의 윤리적 토대를 약화한다. 좋은 돌봄은 좋은 노동조건 없이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무 형태가 불안정하고 소진된 활동가들에게 안정적이고 섬세한 동물 돌봄을 계속 요구할 수는 없다. 노조 활동을 이유로 카라 사측으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과 고소를 당한 활동가들은 심신의 상흔을 앓고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돌봄 노동의 적절한 평가, 안정적인 고용, 충분한 휴식, 전문교육, 활동가의 의사결정 참여는 동물을 위한 자원을 빼앗는 비용이 아니라 동물복지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인프라로 이해해야 한다.

▲2026년 3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동물권행동 카라를 위한 국회 토론회 풍경. ⓒ김현미

회원은 소비자가 아니라 운동의 주체다

대형 단체의 또 다른 위험은 회원의 위치가 달라지는 데 있다. 규모가 작을 때 회원과 자원활동가는 캠페인을 만들고 토론하며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단체가 전문화될수록 활동은 상근 전문가의 영역이 되고, 회원은 매월 일정한 금액을 자동이체하는 '돈만 내는' 후원자로 남기 쉽다. 이 과정에서 동물권 단체는 자칫 일종의 서비스 제공기관처럼 변할 수 있다. 전문 활동가는 동물 구조와 정책 활동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회원은 돈을 내고 이를 지지하는 소비자와 비슷한 위치에 놓이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에서 후원금은 상품의 구매대금이 아니다. 그것은 '이 조직이 내가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것'이라는 신뢰를 위탁하는 행위다. 따라서 후원회원에게는 돈의 사용처를 알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방향을 묻고, 비판하고, 제안하고, 변화시킬 권리도 있다. 동물권 단체라면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져야 한다. 많은 후원회원과 자원활동가들은 단순히 구조 비용을 부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함께 살리고자 한 동물의 회복 과정을 지켜보고, 가능한 범위에서 직접 만나고 교감하기를 원한다. 이런 관계야말로 시민이 동물권을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돌봄의 관계로 경험하게 만드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카라가 구조된 동물, 심지어 특정 동물의 직접적인 구조와 치료 비용을 부담한 후원회원에게도 해당 동물과의 접촉이나 만남을 허용하지 않는 운영 방식은 동물단체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는 처사다. 물론 동물의 안정과 안전, 치료 과정, 감염 관리 등을 위해 접촉을 제한해야 하는 예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일률적으로 차단한다면 회원은 동물을 함께 돌보는 시민이 아니라 구조 비용을 제공하는 재정 후원자로만 남게 된다. 나 또한 '카라 정상화'를 외치며 카라노동조합의 투쟁을 지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후원회원으로 남아 있다. 후원회원이 재정적 기반을 제공하는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사회적 정당성과 윤리적 가치를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는 점을 견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라 대표는 2023년 약 1만 7000명이던 회원이 2025년 6월 약 1만 3000명으로 감소했고 정기후원금도 줄어들어 비상 경영에 들어갔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규모가 신뢰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규모 시설과 인력을 가진 조직일수록 신뢰가 무너질 때 그 충격도 크며, 그 피해는 활동가뿐 아니라 이미 구조돼 인간의 돌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동물들에게까지 돌아간다. 따라서 대형 동물권 단체의 미래는 회원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는가보다 회원이 어떤 방식으로 운동의 주체가 되는가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규모 자체가 아니라 그 규모가 행위자들 사이에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 내는가이다. 실제로 큰 조직이라고 해서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대표자 등 소수에게 집중된 힘을 분산시키는 일이다. 중앙의 큰 단체는 후원회원과의 지속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지역의 작은 단체, 개인 구조자, 수의사, 연구자, 활동가에게 자원과 전문성을 나누는 운동의 플랫폼이 돼야 한다. 대형화된 동물운동 조직이 자신이 확보한 사회적 자본을 풀뿌리 운동으로 다시 흘려보내는 순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동물의 권리를 말하는 조직은 어떤 조직이어야 하는가?

대형화가 던지는 더 어려운 질문은 조직 내부의 권력에 관한 것이다. 시민단체는 이윤을 생산하는 조직이 아니라 가치를 생산하고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동물권 단체의 핵심 행위자는 대표나 이사회만이 아니다. 임금을 받고 일하는 활동가, 후원회원, 자원활동가, 다른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인 동물이 조직을 구성한다.

이 관점은 대형 동물권 단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성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이유로 권력이 소수의 경영진과 이사회에 집중되기 쉽다. 대표가 오랜 세월 단체의 상징적 인물이 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동물에 대한 헌신과 희생의 역사가 대표의 도덕적 정당성을 구성하고, 그 정당성이 어느 순간 조직 운영의 독단성마저 헌신의 대가로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동물을 누구보다 사랑한다'라는 확신은 민주적 조직 운영을 대신할 수 없다. 오히려 동물은 동물권 단체의 주요 행위자이지만 자신의 권리를 직접 주장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양한 동물을 돌보는 일에는 매우 섬세하고 신중한 '해석'과 '토론'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동물을 돌보고 대표하는 조직일수록 소수의 인간에게 집중된 권력을 더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

누가 '동물을 위한 결정'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가? 그 결정이 정말 동물의 복지에 부합하는가? 다른 전문가와 활동가, 후원자들의 의견과 판단은 충분히 고려됐는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검토해야 하고 소통의 통로를 열어놓아야 한다. 조직에서 다른 의견을 내는 활동가를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대표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회원을 '외부 세력'처럼 대하며, 노동조합을 조직의 결속을 해치는 존재로 본다면 조직은 잠시 조용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 있는 조직의 조용함이 아니다. 침묵을 통해 만들어진 평화는 민주적 조직의 안정이 아니라 권력 집중의 징후일 수 있다. 동물권 단체는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얽혀 있는 윤리적이며 정치적인 공동체다. 그러므로 동물권 단체에는 높은 수준의 윤리성과 개방적 협력이 요구된다. 동물을 대신해 말하는 권력에는 그만큼 더 많은 견제와 숙의가 필요하다.

동물을 위한 결정에는 복수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동물권 운동의 성장은 인간만을 도덕적 공동체의 중심에 놓았던 오래된 사고가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인간에게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 인간이 사랑하느냐 아니냐와 관계없이 모든 생명은 고통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 시민사회가 만들어 낸 중요한 윤리적 진전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동물권 단체는 다른 어떤 조직보다 자신의 권력을 예민하게 성찰해야 한다. 가장 말할 수 없는 존재를 대신해 말한다는 것은 가장 큰 윤리적 권위를 획득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권력이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난다면, 동물과 인간 모두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이들을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대형 동물권 단체는 카리스마적 리더 한 명과 그를 비호하는 소수의 관리자와 이사진, 더 많은 돈과 회원과 건물을 가진 단체가 아니다. 구조된 동물이 새로운 삶을 얻고, 그들을 돌보는 활동가도 존중받으며, 후원회원과 자원활동가가 동물들과 더 긴밀하게 접촉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으며, 작은 단체와 개인 구조자가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가 되는 조직이어야 한다. 또한, 동물을 보호와 감금의 수동적 대상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모든 의사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로 상상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이처럼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이 동물권 단체이므로 민주적 잡음은 필연적이다. 주저함과 왁자지껄함, 때로는 혼란과 기쁨까지도 조직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동물권 단체의 대표가 결코 '해법'을 독점할 수는 없다. 대형 동물권 조직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많은 회원이 아니라 '더 다층적이며 넓은 관계'를 조직해 내는 일일 것이다. 대형화된 조직의 자원과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권력은 아래로 나누고, 지식은 밖으로 개방하며, 돌봄의 부담과 자원을 사회적으로, 그리고 평등하게 분담하는 것이다.

동물의 권리는 인간의 민주주의를 희생함으로써 실현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과 동물, 활동가와 회원, 전문가와 시민이 서로의 취약성과 의존성을 인정하고 더 민주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때 동물권 역시 지속 가능해진다. 조직의 대형화는 조직의 성공을 넘어 동물권 운동 전체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존재의 삶을 책임지는 조직이라면 관행과 수치적 성장에 집중하기보다는 때때로 인식론적 겸손, 즉 자신의 판단이 불완전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가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현재 카라 노조와 전·현직 활동가, 회원, 시민들은 왁자지껄하고 민주적인 소통을 위해, 동물과 인간의 얽힌 공감과 진전된 돌봄을 위해 여전히 투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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