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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극우정당 44% 득표 압승'이 보여준 서방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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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독일 극우정당 44% 득표 압승'이 보여준 서방의 미래

[원동욱의 외교광장] 극우의 부상인가, 전후질서의 균열인가

독일 동부의 작은 주에서 치러진 선거가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9월 6일 작센안할트주 선거에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약 44%를 얻었다. 2021년 20.8%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반면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은 17%대에 그쳤다. AfD는 주의회 단독 과반에 불과 세 석이 모자랐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의미다. 작센안할트의 AfD는 독일 국내 정보기관이 극우주의 세력으로 분류한 조직이다. 독일 주류정당들은 나치즘의 역사적 경험 때문에 AfD와 연정하지 않는 이른바 '방화벽(Brandmauer)'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유권자의 거의 절반이 방화벽 바깥으로 이동했다.

이쯤 되면 문제는 AfD를 어떻게 막느냐가 아니다. 왜 그토록 많은 시민들이 기존 정치질서에서 이탈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극우의 승리 이전에 중도정치의 실패가 있다

AfD의 부상을 이민과 난민 문제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작센안할트에서는 생활비와 연금, 일자리, 지역 쇠퇴, 독일 제조업의 침체에 대한 불안이 누적돼 왔다. 통일 36년이 지났지만 동서독 사이의 경제적·사회적 격차에 대한 박탈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기존 정당과 베를린 정치에 대한 불신이 겹쳤다.

중요한 것은 AfD가 노동자와 젊은 층, 과거 투표하지 않았던 기권층까지 끌어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AfD가 단순한 항의정당에서 하나의 대안정당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 위기의 핵심이 있다. 유권자가 반드시 극우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기 때문에 극우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정치가 자신의 삶을 개선할 능력을 잃었다고 판단할 때, 가장 강력하게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세력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AfD의 승리인 동시에 독일 중도정치의 패배다.

그리고 이 점을 놓친 채 AfD 지지자들을 모두 극우주의자나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한다면 문제는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화벽은 정당 간 합의가 아니라 시민들이 기존 정치 안에서도 자신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신뢰이기 때문이다.

AfD가 집권하지 않아도 독일은 변한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AfD의 집권 여부가 아니다. 극우정당의 가장 큰 정치적 성공은 반드시 정부를 차지하는 데 있지 않다. 자신들의 의제를 주류정치의 의제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강력한 이민 제한, 난민 추방, 민족 정체성 강화, EU 권한 축소, 우크라이나 지원 축소 같은 주장은 과거 유럽 정치의 주변부에 있었다. 그러나 극우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중도우파 정당들도 일부 정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경우 AfD가 선거에서 패배해도 독일 정치는 AfD가 만들어 놓은 의제의 공간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

이미 유럽 전체에서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극우 조르자 멜로니가 집권했고, 여러 나라에서 민족주의·반이민 정당이 정부에 참여했다. 이제 다음 시험대는 프랑스다. 국민연합(RN)은 2027년 대선을 향해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독일의 변화는 따라서 독일만의 특수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1945년 이후 유럽을 지배해 온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중심의 정치질서가 구조적으로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에 가깝다.

트럼프와 푸틴이 동시에 반길 수 있는 유럽

러시아가 AfD의 부상을 반기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AfD는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중단과 러시아와의 경제관계 복원을 주장한다. 독일의 대러시아 강경정책과 재무장이 흔들린다면 푸틴에게는 전략적 이익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다.

과거 미국은 NATO를 통해 유럽의 안보를 보장하면서 유럽통합을 지원했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이민, 다문화주의, 초국가적 EU 체제에 대한 유럽 민족주의 우파의 문제의식과 상당 부분 공명하고 있다.

지난해 뮌헨안보회의에서 J. D. 밴스 부통령이 독일 주류정치를 비판하면서 AfD 지도자 앨리스 바이델을 만난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미국 국가안보전략이 유럽의 대량이민과 정체성 약화를 '문명적 소멸'의 문제로 규정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여기에서 전후 서방질서의 기묘한 역전이 일어난다. 냉전기 미국은 유럽통합을 지원했고 소련은 이를 경계했다. 그런데 오늘날 트럼프의 미국과 푸틴의 러시아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강하게 통합된 유럽보다 민족국가 중심으로 분열된 유럽을 더 편하게 여길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유럽 정치의 우경화보다 훨씬 중요한 변화다. 대서양동맹을 떠받쳐 온 정치적·가치적 기반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 흔들리면 EU도 흔들린다

그래서 독일의 변화는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의 극우 부상과 무게가 다르다. 독일은 EU 최대 경제국이자 유럽 제조업의 중심이고, 프랑스와 함께 유럽통합을 떠받쳐온 핵심 국가다.

미국의 안보공약이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독일의 재무장 역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위한 핵심 조건이다. 그런데 AfD는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과 대러 관계 개선을 넘어 유로화와 EU 자체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해 왔다.

AfD가 당장 연방정부를 장악하지 않더라도 그 영향력이 커질수록 독일의 대러시아 정책과 EU 통합정책에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에도 EU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독일은 다르다. 영국 없는 EU는 가능했지만, 유럽통합을 원하지 않는 독일과 함께 지금과 같은 EU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작센안할트의 지방선거가 세계적 의미를 갖는 이유다.

흔들리는 것은 유럽이 아니라 '서방'일지 모른다

조금 더 멀리 보면 변화는 더욱 선명하다. 미국에서는 MAGA가 공화당을 바꾸었고, 이탈리아에서는 멜로니가 집권했다. 독일에서는 AfD가 급부상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국민연합이 집권을 바라본다.

각각의 역사와 정책은 다르지만 공통된 정치적 토양이 존재한다. 세계화에 대한 회의, 이민에 대한 반발, 기존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불신, 국가주권과 정체성의 복원 요구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단순한 '극우의 부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1945년 이후 서방을 지배했던 자유주의적 중도정치의 사회적 기반이 흔들리고, 그 자리를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정치가 파고드는 과정일 수 있다. 작센안할트는 그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징후다.

한국 외교도 낡은 전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변화는 한국 외교에도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미국=자유주의 국제질서'라는 오래된 등식을 재검토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은 중요하지만 트럼프 시대의 미국 정책을 곧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동맹은 국익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지 국가전략 그 자체가 아니다.

둘째, EU를 안정적인 '제3의 축'으로 전제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독일과 프랑스의 국내정치가 민족주의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과 결속력도 약화될 수 있다. 국제질서의 다극화가 반드시 안정적인 다극질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셋째, 그래서 더욱 외교적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고, EU·일본·아세안·인도·글로벌 사우스와 사안별 협력망을 확대해야 한다. 이것은 어느 한쪽을 버리고 다른 쪽을 선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에 대비한 일종의 외교적 분산투자다.

작센안할트 선거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독일 극우의 미래만이 아니다. 미국도 변하고, 유럽도 변하고,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했던 '서방' 자체도 변하고 있다. 가치와 동맹, 진영의 경계가 과거처럼 명확하지 않은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외교도 변해야 한다. 국제질서가 불확실해질수록 필요한 것은 어느 한편에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질서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선택을 강요받는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지를 만드는 국가.

작센안할트의 작은 선거가 한국에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 9월 6일 작센안할트주 선거에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약 44%를 얻으면서 압승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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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욱

원동욱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와 중국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이자 공공 지식인으로, 현재 사단법인 외교광장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동아대학교 국제대학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과 연구를 병행해왔다.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제23대 한국현대중국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중국 정치와 외교, 미중 전략경쟁, 동아시아 질서를 연구하며, 주요 매체 기고와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활동을 통해 공공 지식인으로서 사회참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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