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질 때마다 정부는 '국가적 재난 수준'이라고 말한다. 물을 자주 마시고 야외활동을 자제하라고 당부하는 재난문자가 쉴 새 없이 발송된다. 그런데 정작 건설 현장과 조선소, 항만과 물류창고, 배달 도로와 논밭의 노동은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재난'은 정부의 어휘에만 있고, 노동자의 작업표에는 없다. 그늘막도 생수도 필요하지만, 위험이 임계점을 넘은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보호조치는 위험에 노출되는 일을 중단하는 것이다.
야구는 멈추는데 노동은 왜 멈추지 않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8월 4일 아침 폭염중대경보(체감온도 38도)가 발효된 지역의 경기를 취소하는 기준을 발표했다. 이 기준에 따라 서울 잠실 경기는 취소됐지만, 인천은 체감온도가 37.7도에 그쳐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경기가 예정대로 열렸다. 그 경기에서 관중 25명이 온열질환 증세를 보였고, 이 중 2명은 의식을 잃었다. 잘 만든 기준도 정작 임계점 바로 아래에서는 무력했던 셈이다. KBO는 다음 날 "기존 기준과는 상관없이" 5·6일 1·2군 전 경기를 이례적으로 취소했다. 개별 구단의 선의가 아니라 중앙 운영기구가 전국 단위로 중단을 결정했다는 사실은 그래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렇다면 같은 원칙은 왜 노동 현장에는 적용되지 않는가. 경기는 취소하면서, 그 경기장을 짓는 건설노동자의 작업은 왜 멈추지 못하는가. 관중의 안전을 위해 입장권은 환불하면서,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멈춘 하루의 임금은 왜 보전하지 못하는가. 야구에는 우천 취소도 폭염 취소도 있지만, 노동에는 좀처럼 '기후 취소'가 없다.
'낮잠'이 아니라 '폭염 멈춤제'다
극심한 폭염엔 스페인식 시에스타처럼 한낮에 일을 쉬자는 아이디어도 간간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낮에 잠깐 쉬고 늦은 오후나 밤에 일을 몰아 하면 된다는 뜻으로 읽히기 쉽다. 건설 현장의 출근 시각을 더 앞당기거나 낮에 중단한 작업을 야간·주말 노동으로 메운다면, 노동자는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더 불규칙하고 압축적인 노동을 감당해야 한다. 열대야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밤이라고 반드시 안전한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국가가 위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을 넘으면 고위험 작업을 의무적으로 중단시키는 '폭염 멈춤제'다. 기상특보와 체감온도, 습도, 작업강도, 보호복 착용 여부를 함께 고려해 일정 위험 수준을 넘으면 고위험 작업을 의무적으로 중지하고, 멈춘 시간의 소득을 보전하는 '기후휴업수당'을 붙이는 제도다.
전국의 모든 경제활동을 일률적으로 세우자는 게 아니다. 지역·시간·업종·작업강도에 따라 위험단계를 나누고, 작업시간 조정과 휴식 확대만으로 위험을 없앨 수 없을 때 해당 작업을 중지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소방·의료·전기·수도 같은 필수업무는 예외를 인정하되 인력 증원과 교대 확대 같은 강화된 조치를 붙여야 한다. 농사도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 폭염경보가 내렸다고 수확 시기를 마음대로 늦출 수는 없지만, 농민의 생명을 수확 일정의 비용으로 처리할 수도 없다. "농사는 때가 있다"는 말이 "그러니 가장 뜨거울 때도 일해야 한다"는 명령이 돼서는 안 된다.
법은 있는데, 왜 작동하지 않나
폭염은 이미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자연재난이고 재난사태 선포도 가능하다. 그러나 재난사태가 선포된다고 민간사업장의 작업이 자동으로 멈추거나 임금이 자동으로 지급되지는 않는다. 재난을 선언하는 법과 노동을 멈추는 법, 멈춘 노동자의 생계를 보전하는 제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령은 2025년부터 폭염작업에 대한 사업주 의무를 강화했다. 체감온도 31도 이상에서 장시간 작업하면 냉방·휴식 등 조치 의무가, 33도 이상에서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줄 의무가 발생한다. 이는 법적 의무다. 반면 정부가 제시한 35도 이상 무더위 시간대 옥외작업 중지, 38도 이상 전면 중지는 여전히 '권고'에 머물러 있다. 31도와 33도에서는 법이 작동하다가, 더 위험한 35도와 38도에서는 오히려 한발 물러서는 셈이다.
노동부는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해당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다. 그러나 폭염이 광범위한 지역을 덮친 상황에서 수백·수천 개 사업장을 일일이 감독한 뒤 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는 위험에 제때 대응하기 어렵다. 폭염중대경보와 연동해 지역·시간·업종별로 고위험 작업을 선제적으로 중지시킬 별도의 권한이 필요하다.
멈추라고 하려면 소득부터 보장해야 한다
작업중지는 소득 보장과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일당을 받는 건설노동자나 건당 수수료를 받는 배달 라이더에게 일을 멈춘다는 것은 곧바로 다음 달 월세와 생활비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쉬면 소득을 잃고, 일하면 건강과 생명을 위협받는다면 그것은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서울시는 2025년부터 공공공사에서 극한기후로 작업이 중단되면 일용직에게 소득을 보전하는 '안심수당'을 도입했다. 다만 소득요건이 까다로워 수혜 가능 대상이 전체 일용노동자의 7.1%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올 8월 소득기준을 개정해 대상을 46.4%로 확대했다. 지급단가도 시간당 2만 2500원, 하루 최대 9만 원으로 높였다. 제주도는 올 7월 말부터 공공 건설 현장 일용직에게 '기후보험'을 시행해, 폭염경보로 작업이 전면 중단되면 기준노임의 80% 수준(시간당 1만 7210원)을 최대 4시간분 지급한다. 복잡한 손해 입증 대신 기상특보와 작업중지라는 객관적 지표를 쓴다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참고할 만한 해외사례도 적지 않다. 이탈리아는 기상청이 발표한 체감온도가 35도를 넘으면 사업주가 휴업을 결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임금보전제도(CIGO)를 신청해 임금의 80% 수준을 보전받는다. 지방정부가 행정명령으로 작업을 중지시킨 경우도 CIGO 지급 요건인 '예측 불가능한 사유에 의한 휴업'으로 인정받아 지원받는다. 프랑스도 폭염 오렌지·레드 경보가 발령되면 부분휴업을 통한 임금보전을 인정하며, 건설업에는 악천후로 작업이 중단될 때 소득을 보전하는 별도의 기금(악천후 휴업기금, BTP)을 운영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작업 중단을 노동자 개인의 '손실'로 방치하지 않고, 사회가 함께 분담해야 할 '기후 위험'으로 규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들 제도를 관통하는 공통된 원칙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법을 고쳐야 할 것
법 개정 전에도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발주기관 권한으로 폭염중대경보 시간대의 공공 옥외작업부터 원칙적으로 중지하고, 서울·제주의 모델을 전국 공공공사로 확대할 수 있다. 이때 공사 기간 연장과 노무비 보전을 작업중지와 동시에 적용해야 한다. 민간사업장에서는 법정 휴식·냉방 의무를 집중 감독하고, 원청이 공기와 도급금액을 통제하는 건설·조선·물류 현장에서는 원청에 작업중지와 비용조정 책임을 명시해야 한다. 배달 플랫폼에는 폭염중대경보 시간대의 배차·프로모션 중단을 의무화해야 한다. "더우면 앱을 꺼라"는 말만으로는, 폭염 할증이 위험할수록 더 많은 노동자를 도로로 끌어내는 역진적 유인을 막을 수 없다.
법도 고쳐야 한다. 재난안전법에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작업·영업 중지를 요구할 수 있는 연결 조항을,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역·시간·업종별 작업중지를 명할 수 있는 권한을 신설해야 한다. 적용 대상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한정하지 말고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일용직, 영세 자영업자와 농어민까지 포함해야 하며, 작업중지를 이유로 한 불이익도 금지해야 한다. 비용은 사업주·발주자·원청·플랫폼이 우선 부담하고, 영세사업장과 농어민은 국가재정과 고용보험, 별도의 기후위험기금이 지원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장기적으로는 건설근로자공제회, 고용보험, 플랫폼 기업 분담금을 결합한 '기후휴업기금'도 검토할 수 있다.
폭염은 더 이상 며칠 견디면 지나가는 예외적 날씨가 아니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제도도 폭염을 예외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폭염을 국가적 재난이라 부르려면 위험한 일을 국가가 멈추게 해야 한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멈출 수 있도록, 멈춘 시간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한다.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일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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