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불가역적인 핵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삼았던 대화와 협상은 사라지고 조선(북한)의 핵무력과 미국 주도의 확장억제력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불가역적인 핵시대로 접어든 한반도에서 생존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7편의 글을 통해 이 녹록치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글쓴이 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나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한다."
조선(북한)이 3월 하순 개정 헌법 제4장 56조에 담은 내용이다. 조선이 이전 헌법에도 핵보유국을 명시했기에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조선의 유별남'을 발견할 수 있다. 9개의 공인·비공인 핵보유국 가운데 자국 헌법에 핵보유를 명시한 나라는 조선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이 핵무력을 "국체(國體)"라고 부르면서 국가 정체성과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선의 유별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공식적인 핵보유국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국이고, 비공식 핵보유국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조선 등 4개국으로 총 9개국이다. 공식과 비공식을 나누는 기준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것이다. 이 조약에선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에 성공한 나라의 핵보유는 인정하고 있다. 반면 비공식 핵보유국은 NPT 비회원국들이다.
그런데 조선도 1985년에 이 조약에 가입했었다. 당시 소련(러시아)이 경수로 제공을 약속하면서 조선을 설득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1990년대 들어 소련이 해체되고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1993년에 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듬해 조미 제네바 합의에 따라 이 조약에 복귀하기로 했다가 2003년에 또다시 탈퇴했다.
NPT의 맥락에서 볼 때 조선은 두 가지 특이점을 갖고 있다. 하나는 탈퇴 자체가 NPT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또 하나는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무장을 한 최초의 국가라는 점이다. 참고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NPT에 가입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조선과 차이가 있다.
핵카드의 용도, 협상용에서 핵무장으로
21세기 들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핵실험은 여섯 차례가 있었다. 모두 조선이 한 것이다. 1945년 미국의 최초 핵실험 이후 2000회가 넘은 핵실험이 있었지만, 다른 핵보유국들은 1990년대를 끝으로 더 이상 핵실험을 하진 않았다. 한편으론 더 이상의 핵실험이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이, 다른 한편으로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 제정 등 핵실험을 중단해야 한다는 국제 규범이 강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조선은 이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특기할 점은 6차례 핵실험은 모두 조선이 '조건부 비핵화' 입장을 유지할 때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는 핵실험의 목적이 '협상용'에도 있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의 핵문제가 조미관계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건국 이래 미국이 단 한 번도 수교를 맺지 않은 나라는 조선과 부탄 2개국뿐이다. 그런데 부탄은 미국이 마다해서라기보다는 먼 나라와 수교를 맺지 않는다는 외교 원칙에 따른 것이다.
이에 반해 조미 간의 미수교는 미국의 거부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이를 거듭 확인한 조선은 2020년부터 핵카드의 용도를 '대미 협상용'에서 '불가역적인 핵무장'으로 완전히 바꿨다. 이러한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조선은 핵보유국들 가운데 미국과 미수교 상태에 있는 유일한 나라로 남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미국 내 일각에서 조선과의 외교관계 수립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는 두 가지 맥락을 품고 있다. 하나는 핵전쟁 방지를 위해서는 긴장완화를 추구하고 소통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이는 미국이 적대국이었던 소련과 중국의 핵무장에도 불구하고 소련과는 수교 상태를 유지하고 중국과는 관계 정상화를 추진한 것이 핵전쟁 방지에 도움이 되었다는 역사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국이 조선과 외교관계를 수립해야 중국 및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정학적 진단이다. 여기에는 중러 연대에 이어, 조중·조러 연대도 강해지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중소 연대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데탕트에 나섰던 1970년대의 상황이 앞으로는 조미관계에서 재연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까닭이다.
왜 조선은 공개하고 과시하기에 바쁠까?
조선의 유별난 특징은 또 있다. 조선은 지구상에서 가장 알기 힘든 나라에 속한다. 그런데 핵 독트린과 주요 무기체계는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다. 조선은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채택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를 통해 5가지 핵무기 사용 조건을 열거했는데, 그 조건은 아래와 같다.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핵 또는 대량살상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한 경우 △국가의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한 경우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이들 5가지 조건에서 첫 번째 조건이 가장 눈에 띤다. 이 법령에선 핵무력 지휘통제는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한다"면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 도발원점과 지휘부를 비롯한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고 명시했다. 그런데 핵보유국들 가운데 이러한 핵무기 사용 조건을 명기하고 공개한 나라는 조선이 유일하다.
조선은 왜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일까? 이는 '북한의 핵 사용 징후시 승인권자를 제거해 핵 공격을 막겠다'는 한미동맹의 참수작전을 대응하려는 성격이 짙다. 적대 세력이 참수작전을 시도하면 '죽은 자의 손(dead hand)'을 가동하겠다는 위협을 통해서 말이다. 기실 핵보유국 지도자를 상대로 참수작전을 수립하고 공개적으로 이를 언급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참수작전도 그렇고 '데드 핸드'도 그렇고, 그 취지는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핵전쟁의 위험을 높이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다. 오인과 오판의 가능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위기관리의 측면에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여 불가역적인 핵시대에 접어든 한반도에서 제1의 생존의 조건은 어떤 형태로든 선제공격의 유혹을 떨쳐내고 억제와 방어에 충실해지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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