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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에서 정부가 ‘AI 이니셔티브’를 가지려면

[시민건강논평] 공공부문 전문성, 기술, 규제 역량 강화해야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에 GPU 26만 개를 우선 공급하겠다는 빅테크 기업대표의 '통 큰' 약속이나, 미국과 중국이 참여한 최초의 정상급 합의문인 'APEC AI 이니셔티브'가 채택되었다는 사실은 모두 AI전환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장면으로 관심을 끌었다.

APEC은 출범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가국 정상과 기업대표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현대 국가와 자본주의가 결합한 경제성장 헤게모니를 재확인하는 자리라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 2025년 현재 '성장 서사 담론'을 연장시키는 도구로 새롭게 호명된 것이 바로 AI일 뿐이다. 그러면서 평균기온 상승 억지선 1.5℃를 이미 넘어선 전지구적 기후위기 앞에서 침묵한 채, 더 많은 에너지와 수자원을 불균형적으로 소비하고 소수에 대한 신기술 의존도를 높이는 AI 기술 경쟁을, 우리 모두에게 불가피한 미래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정상들의 숙소와 회의장 근처 도로가 전체 통제되었다거나, 1월부터 시작된 고위급 공식회의와 경주에서의 APEC 회의가 각국 정상과 장관들, 대기업 수장들만의 비공개회의였다는 사실은 동시대 노동자 대중의 입장을 철저히 단절한 '그들만의 세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회의장 바깥에서 벌어지는 트럼프 관세전쟁의 피해와 극심한 불평등의 아우성, 극우 포퓰리즘의 위협과 AI 전환에 따른 '고용없는 호황'은 의제가 되지 못했다.

APEC이 열리는 동안 경주와 서울에서는 국내외 시민사회, 진보정당, 노조가 연대하여 '트럼프의 반민주주의적 경제전쟁과 1% 강대국과 대기업만의 번영을 위한 APEC'을 규탄하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진 국제민중컨퍼런스에서는 약탈적인 자본주의의 폭력, 탄소배출경제로의 회귀, 배제와 혐오의 정치, 전세계적 전쟁위협 고조에 대항하여 '돌봄과 공공선, 그리고 생태적 균형에 뿌리를 내린 경제를 재건하고'(코라손 파브로스), 민중 모두의 민주주의를 위한 진보적 사회운동을 만들어갈 것을 결의했다.

비슷한 시기에 민중건강운동(People's Health Movement)은 <글로벌 헬스 워치 7판(Global Health Watch 7)(이하 GHW7)을 출간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이후 파시즘과 다중위기 국면에서 더 나은 건강정의를 달성할 포괄적인 접근과 실천들을 제안했다(☞관련자료). 특히 보건의료분야는 디지털 기술과 AI의 도입과 촉진의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추세들은 데이터를 자원화하고 기술 강국에 의존하게 하는 데이터 식민주의와 디지털헬스 기술의 사용과 배치를 글로벌 노스(Gobal North)가 주도하는 디지털 식민주의로 나타나면서 건강정의를 해치고, 모두의 건강할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

보건의료영역에는 진단, 신약개발, 대기시간 단축, 의료접근성 향상 등 디지털헬스와 AI 활용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이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민감한 개인건강정보에 대한 사이버 보안, 데이터 프라이버시의 침해 위험, 그리고 기업들이 정보주체의 이익과 결정권을 넘어 통제받지 않고 개인건강정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또한 인종∙성별∙지역∙소득 등의 다양한 대표성을 가지지 못한 데이터셋의 편향으로 인해 기존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시스템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AI 편향도 지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GHW7에서는 새롭게 등장하는 문제로 보건의료 일자리의 '우버화(Uberization)'를 제기한다. 즉, 보건의료인력이 안정되고 장기적인 고용관계 대신 다른 플랫폼 노동시장과 유사한 주문형(on-demand) 근무방식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간호업무에서 이런 경향이 등장했는데 병원운영 측면에서는 이를 비용 절감과 혁신이라고 포장할 수 있을지 모르나, 보건의료노동자의 고용의 불안정성 증가와 소득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보건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로 직결되는 문제임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더 많은 첨단기술 도입을 주장하기에 앞서, 보건의료분야에서 대규모 개인건강정보의 디지털화와 디지털 헬스 플랫폼의 확대가 이전에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해결하고 기대했던 이점을 실현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 평가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헬스산업의 확대가 결과적으로 기업의 권력과 이익을 강화했는지 공공의 이익과 시민들의 건강형평성을 개선하는데 효과적이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더 나아가 디지털헬스와 AI는 그 자체로 중요한 건강의 상업적 결정요인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2022년 ChatGPT-4를 필두로 대규모 언어모델(LLM)에 기반한 생성형 AI의 출시는 소수의 하드웨어 공급업체와 소수의 기술기업에 대한 의존을 높이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모델과는 잘 부합하지 않는다.

GHW7에서는 정부가 공공 디지털 인프라와 플랫폼에 직접 투자하는 대신, 민간 기업이 제공하는 솔루션에 의존하는 고객이자 자금제공자 위치가 되면서 빅테크기업의 디지털 독점에 취약해지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가령 덴마크는 사회복지서비스의 디지털화로 인해 민간 서비스 제공자와의 종속관계(Lock-in)가 형성되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경우, 민감한 의료데이터가 미국기업 팔란티어(Palantir)로 이전되면서 개인정보보호 및 데이터의 윤리적 관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며 시민들의 반대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관련자료). 브라질 공공의료시스템(SUS)은 아마존웹서비스(AWS)를 활용하여 국가보건데이터네트워크(RNDS)를 호스팅한다. 그런데 브라질 보건부가 AWS를 도입하는데 일조했던 정보기술부서 전임국장은 보소나루 정부에서 사직한지 한 달이 안 되어 아마존에 입사하며 논란이 되었다. (팔란티어와 아마존웹서비스가 자사의 이익을 위하여 비인도적, 상업적인 기술거래를 한 사례는 지난 논평에서 다룬바 있다.) (☞논평 바로가기)

만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팔란티어나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의 기술력이 우수하고 비용절감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시민의 건강정보를 관리하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정치적 선택은 경제적 편익이라는 목적을 일부 달성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공적인 목적으로 데이터를 통제하고 건강보험자료를 연구자들에게 공익적 활용을 위해 제공하려는 한국 정부의 역량을 크게 제한할 수 있다. 명백하게 국가 책임을 축소하고 외주화하는 민영화에 다름 아니다.

또한 민간기업이 정부계약을 따내기 위하여 투명하지 못한 거래와 로비를 할 위험성이 높고, 공공기관의 전임자 영입과 자사에 유리한 입법에 개입하며 정치적인 권력을 확대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런 빅테크 신기술의 잠재적 오류와 위험은 충분히 검증되기 어렵고, 권력의 비대칭과 인프라∙자원의 부족으로 비판적 연구자들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감시와 비판이 이루어지기가 더더욱 힘들다.

노무현 정부 이후 역대 모든 정부가 보건의료를 서비스산업 활성화의 수단으로 간주해 왔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규제 완화와 '선진입 후평가'와 같은 시장친화적 정책들을 추진해 왔으며, 지금은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개방하라는 압력이 거센 상황이다. 그러나 디지털헬스 플랫폼이나 데이터 인프라의 거버넌스 모델에 대한 논의나 데이터와 기술에 대한 집단적 규제 접근방식에 관한 논의는 그보다 훨씬 부족하다.

이와 관련해 AI 규제의 방식으로서 부문 규제보다는 포괄적인 일반 규제를, AI애플리케이션과 관련된 특정 위험을 파악하고 완화하는데 중점을 두는 위험기반(risk-based) 접근보다, AI시스템이 개인 또는 집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권리기반(right-based) 접근을 우선하라는 GHW7의 권고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가 시민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건강불평등을 감소시키는 것을 본령으로 여긴다면, AI와 디지털헬스 기술의 기업독점에 대해 공적 통제력을 행사하는 기전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디지털헬스산업 생태계의 육성이 필요하다면, 유해하고 불평등한 방향이 아니라 공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공공부문의 전문성을 키우고, 기술 및 규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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