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이 사라질 수도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과장된 경고처럼 들렸던 이 말이 이제는 세계 식품산업의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서아프리카의 가뭄과 병해로 인해 코코아 가격이 사상 최고치(톤당 9410달러)를 기록했다.
한때 일상의 달콤함을 상징하던 초콜릿은 이제 기후변화와 지정학적 위기의 상징이 되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aTFIS)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지정학적 갈등·무역장벽이 식품 공급망을 삼중으로 압박하고 있다.
서아프리카의 코코아, 브라질의 오렌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해바라기유 부족 사태는 그 대표적 사례다.
기온 상승, 폭염, 가뭄은 단지 농작물의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식품 가격·소비 패턴·기업 전략까지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실제로 소비자 5명 중 1명은 '기후로 인한 식량부족'을 3대 환경 우려 중 하나로 꼽았으며 캐나다·미국·남아공 소비자의 절반 이상이 “기후변화가 식음료 가격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이제 식품의 가격은 단순한 시장 수요의 결과가 아니라 지구의 온도계가 좌우하는 변수가 됐다.
세계 코코아 생산의 70~80%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의 생산량 급감은 단순한 지역문제가 아니다.
국제 코코아 가격 상승은 국내 초콜릿 물가에도 직접 영향을 미쳤다. 국내의 초콜릿 소비자물가지수는 2020년 100에서 2025년 140.6으로 40% 이상 급등했다.
이는 같은 기간 식료품 전체 평균 상승률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코코아나무의 노화, 생산국의 인프라 부족, 그리고 전 세계적 수요 증가가 겹치며 '지속가능한 코코아 공급망'은 이제 식품기업의 생존 키워드가 됐다.
기업들은 이미 코코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캐나다의 Ardent Mills는 코코아 분말의 25%를 대체할 수 있는 밀 기반 성분 ‘Cocoa Replace’를 출시했고 독일의 플래닛 A 푸드(Planet A Foods)는 해바라기피와 식물성 지방으로 만든 ‘초비바(ChoViva)’를 상용화했다.
미국의 Voyage Foods는 포도피와 해바라기 단백질로 코코아 대체재를 개발했으며 지중해산 캐롭(Carob) 역시 코코아의 천연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코코아 없는 초콜릿을 만들며 기후변화 시대의 식품 혁신을 이끌고 있다.
이 대체재들은 비건·클린라벨·코셔 인증까지 가능해, 윤리적 소비의 흐름과도 맞물린다.
즉, 미래 초콜릿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기술과 지속가능성의 결과물이 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가격이 오르는데도 초콜릿 소비가 완전히 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신 소비자는 ‘작은 사치’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에서는 성인의 72%가 독일에서는 38%의 소비자가 “작은 포장의 초콜릿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한입의 행복’은 부담 없는 즐거움으로 가격 상승의 체감 부담을 낮추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런 소포장 트렌드는 국내에서도 이미 목격되고 있다. 편의점·디저트 카페에서는 미니 바형, 컵형, 개별 포장 초콜릿 제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
고물가 시대에 심리적 만족과 실속을 모두 잡는 소비의 진화다.
오늘날 초콜릿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다.
비건, 대체당, 귀리음료 기반 제품들이 빠르게 늘고 있으며 소비자는 '윤리적 생산', '기후 중립', '비건 인증' 같은 새로운 가치를 맛보다 먼저 본다.
AI 데이터 분석으로 본 미국의 초콜릿 향미 트렌드 역시 '반죽·패션프루트·피스타치오·소금'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한 조각 안에 ‘지속가능성·감각적 즐거움·기술적 혁신’이 동시에 녹아드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한때 초콜릿은 단순한 위로의 음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초콜릿은 기후 위기, 식품 기술, 윤리 소비, 글로벌 협력이라는 복합적 이야기를 품는다.
기후위기 시대의 초콜릿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라 인류가 지속가능한 식탁을 설계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이제 초콜릿의 미래는 카카오 농장에서가 아니라 연구소와 기업의 실험실, 그리고 윤리적 소비자의 선택 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 달콤함은 더 복잡해졌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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