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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시민 간 기울어진 운동장, 어떻게 고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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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시민 간 기울어진 운동장, 어떻게 고칠 것인가

[시민건강논평] 의정갈등 해결…시민들과의 깨어진 신뢰도 회복해야

닷새 간 전국을 휩쓴 극한 호우로 20일 현재 28명의 안타까운 인명피해와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무거운 애도의 마음으로 수난현장을 복구하고 여름의 끝까지 단단히 대비하는데 집단적·조직적 힘을 더할 것을 다짐한다.

지난 한 주 동안 이재명 정부의 첫 내각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임명권자의 국정철학과 목표를 이행할 후보자를 지명했을 테니 그 장관 한 사람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동시에 어느 장관이 임명되더라도 해당 부처가 가진 권력관계와 관행이 쉽게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각 후보자의 직무 적합성과 '국민 눈높이' 검증을 앞세워 대통령제 하에서의 의회와 행정권력의 역할과 한계를 드러내는 절차에 가깝지만, 시민들은 (인내심만 가진다면!) 어떤 정책경쟁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취임 시 우선과제로 "의료갈등 정상화"를 꼽았다. 우리는 그 과제가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국민중심 보건의료체계 구축'이나 국민이 지지하는 '진짜 의료개혁'에 부합하기 위해 정부와 의사전문가권력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시민과 맺는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지난 12일 의정갈등 정상화의 첫 단계로 의대생들은 새 정부와 국회를 믿고 복귀할 것이니 불이익 없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발표에 교육당국조차 난감해한다 하니 새 정부와 의대협간의 논의에 다른 이해당사자들은 전혀 관여하지 못한 것 같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 사회 곳곳에 상상할 수 없었던 반민주적 퇴행과 혼란을 가져왔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의대증원 발표와 일련의 의료개혁 조치들에서도 국가행정의 합리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 대응하는 의사집단 역시 증원의 결정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독단을 내세웠고, 전공의들은 의료현장을 일시에 떠나버리면서 전문가집단의 직업윤리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의학교육과 의료서비스라는 큰 제도를 함께 구성하는 교육자, 동료노동자, 환자와 시민들에 대한 존중과 책임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 정책에 저항하는 시민들은 대체로 자기가 속한 현장을 지키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는데 반해 2020년에 이어 2024년의 의대증원에 반대하는 의사집단의 대정부투쟁은 그들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제도를 마비시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닥쳐올 인구고령화와 지역 위축의 위기에 대응하는 장기적인 보건의료체계 재구조화 논의도 가로막았다. 그런데도 그처럼 압도적인 힘을 행사하던 의대생과 전공의가 복귀하는 것으로 의정갈등이 해소된다고 할 수 있을까.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은 '신뢰가 깨진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진단했지만, 그 신뢰는 정부와 의사집단 간의 것만은 아니다. 의정갈등 속에 커진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 의사집단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 의학교육과 의료현장에서 협업하던 동료들의 피해는 그대로 남아있다. 하지만 짧은 공동선언문 그리고 전공의 복귀와 의과대학 수업재개 논의 등 일련의 과정에는 이런 깊은 상흔에 대한 성찰과 사과를 찾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촉발한 의정갈등을 원점으로 되돌리고자 새 정부가 의사집단과의 신뢰회복에만 힘쓸 뿐 시민들과의 신뢰 회복에도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민주당은 의료개혁 주요 공약으로 의료인, 전문가, 환자 및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의료정책 거버넌스 체계로서 '국민중심 의료개혁 공론화위원회' 신설을 약속했었다. 그것은 새 정부가 지향하는 '주권자의 집단지성이 발현되는 미래형 민주주의'를 위한 직접민주주의 실험과 혁신의 시도(이재명 대통령 세계정치학회 서울총회 개막식 연설)와 닿아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중심 의료개혁 공론화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여 바로 당면한 가장 큰 현안인 의정갈등 논의부터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와서 정부가 학사일정을 이유로 의대생 복귀를 서두르기보다 일부 의과대학 교수들과 시민사회에서 제기하는 형평성과 특혜 논란에 대한 책임있는 해법을 찾고, 집단휴학의 발단인 의사증원 논의가 또다시 의사집단의 단체행동으로 무력화되지 않도록 하는 명시적 합의를 이끄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의대생 복귀를 위한 학칙개정 등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것과 달리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공공의대 신설이나 지역의사제 도입, 필수의료분야 안전망 구축 등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는데, 정부는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이에 필요한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길 바란다.

의정갈등만이 아니라 공적인 이익을 요구하는 다수의 목소리가 소수 이익집단의 행동으로 가로막히고 정책이 어긋나는 사례는 사회 각 분야마다 존재한다. 이처럼 국가행정과 전문가집단의 합리적 조정이 실패하고,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는 보편적 이익에 대하여 이익집단으로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 결국 이 불평등한 힘의 균형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시민사회뿐이다. 사회재난으로서 의정갈등이 남긴 교훈은 정부와 의사전문가권력의 관계, 그리고 그들과 시민사회권력의 관계가 민주적 협상이 가능한 수준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과 공동선을 위해 사회개혁에 참여하는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시민사회, 그리고 그들의 협력과 견제, 비판과 동의의 기회를 넓히는 정치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고안된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샤츠 슈나이더,1975)의 구현이다. 의정갈등 국면에서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은 거의 방치된 존재였지만, 의료현장의 노동자로 과중한 업무부담을 감내하거나 또는 환자로서 불편을 감수하면서 윤석열 정부를 탄핵시키고 지금에 왔다. 그러므로 이재명 정부는 시민사회와 함께 퇴진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약속한 의료개혁을 완수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사회적 권력관계의 민주적 재편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의료대란이 단지 개인의 삶을 불안하고 위태롭게 하는데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집단이 철저한 이익집단으로 변모하고 파괴적 사회갈등의 원인이 된 과정은 민간과 시장주도의 보건의료체계, 경제와 산업적 관점에서 다뤄지는 의료서비스가 공동체 삶의 양식을 변화시켜 온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사회정의와 공공성이 결여된 불평등한 사회체제는 일순간 공동의 삶을 붕괴시킬 수 있다. 그래서 의정갈등은 현상유지적 복원으로 해결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재명 정부가 약속한 '(사람중심 의료개혁이라 해야 더 바람직하였을) 국민중심 의료개혁'은 무엇을 자원배분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 무엇이 지역 간∙인구집단 간 건강격차의 원인인지, 지방분권에 기반한 필수∙공공∙지역의료를 재편하기 위해 어떻게 지역으로부터의 압력을 만들어낼 것인지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진정한 의정갈등 해소는 새로운 사회변화와 혁신, 대안적 규범과 질서로 나가는 출발이 되어야 한다.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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