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발생한 재해들은 재난 피해가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2022년 8월의 집중호우는 여러 반지하 주택을 침수시켰고 서울 신림동에서는 발달장애인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마다 여름은 더 뜨겁고 습해지며 강력한 태풍이 동반된다. 이러한 기후는 열악한 주거 환경을 더욱 위협하며, 거주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최근 경북에서 발생한 산불은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과 노인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었으며 방재 체계에서 비수도권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과제, 장애인의 이동권과 지역사회 내 안전한 거주의 문제를 재난취약성 논의와 교차시킬 필요성을 제기한다. 장애인이 시설 밖에서 살아갈 권리는 아직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장애 접근성을 고려한 주택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재난 정책 또한 장애인의 요구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참고자료 바로가기). 더위와 추위에 취약한 주거 환경, 경사로조차 없는 골목길,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된 대피 시스템은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을 더욱 큰 위험에 빠뜨린다.
기후위기로 인해 자연재해가 점점 더 불가항력적인 양상을 띠는 오늘날, 우리는 재난이 누구에게, 왜, 어떤 방식으로 취약성을 초래하는지를 면밀히 따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장애, 빈곤, 노령화 등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균열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 재난이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후 삶에 장기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번에 소개할 연구는 재난 취약성 논의를 장애학적 관점과 연결하면서, 재난이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탐색하여 이러한 관점을 연구에 녹여낸다(☞논문 바로가기 : 장애인의 자연재해 취약성: 2024 가구동향조사를 중심으로). 이 연구는 장애인이 재난 상황에서 더 취약하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장애 여부와 유형에 따라 자연재해 이후 이주 기간이나 정신적 고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한다.
연구의 필요성은 두 가지로 제시된다. 첫째, 재난 이후 피해자들은 흔히 장기간의 이주를 경험하는데 이는 장애인들에게 단순한 물리적 격리나 경제적 어려움 이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장애에 맞춰 조정된 거주 공간을 떠나야 하면 이동의 제약, 정보 접근의 어려움, 돌봄 제공자에 대한 의존 증가 등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장애를 가진 경우 장기간 거주지를 상실하면 시설에 수용될 위험도 커진다. 둘째, 장애인 집단 내부에서도 장애 유형에 따라 재난이 다르게 경험되기 때문에, 이 차이를 조명하는 것이 시급하다. 예컨대 신체장애인의 경우 대피와 회복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며 감각장애인은 재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고, 인지장애인은 높은 불안과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미국 통계청이 2024년 3월부터 4월 사이에 실시한 가구동향조사를 활용하여 분석을 수행하였다. 최근 1년 간 자연재해로 인해 응답자들이 느낀 고립감, 우울감, 불안감, 긴장감 등을 통해 재난이 개인에게 미친 심리적 영향을 파악하고, 재난으로 인해 응답자들이 얼마나 오랜 기간 거주지를 떠나 있었는지를 통해 재난 이주의 심각성을 측정하였다. 그리고 응답자의 장애 유무 및 유형(시각, 청각, 인지, 이동[신체], 정신)이 심리적 고통과 거주지 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재난 이후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5.1% 더 오랜 기간 거주지를 떠나 있었다. 특히 시각장애인은 8.4%,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지닌 사람은 4.5% 더 긴 이주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애인, 특히 시각장애인과 중복장애인이 재난 이후 적절한 주거지의 회복에 더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심리적 고통과 관련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으나, 장애 유형별로는 차이가 있었다. 인지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21.2%, 정신장애인은 23% 더 심한 심리적 고통을 경험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이 겪는 취약성이 실제로 존재하며, 장애 유형에 따라 그 경험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따라서 재난 대응 정책과 문화적 접근도 획일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각기 다른 요구를 정밀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인지장애나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체계적인 정신건강 지원 체계가 필요하며, 시각장애인이나 중복장애인을 고려한 재난 대응 및 응급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 연구는 재난이 단순한 자연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 불평등과 배제를 증폭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장애인의 재난취약성은 손상, 물리적 환경, 정책적 무관심, 사회적 낙인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조치가 아니라, 섬세하고 체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인의 재난취약성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고, 이를 교차적으로 다루는 시각 역시 정책과 실천의 주변부에 머물러 왔다.
이제는 재난 대응 정책을 소수자의 고유한 필요도 반영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취약계층이 재난 이후에도 지역사회 안에서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포괄적 주거 정책, 접근 가능한 정보 제공 체계, 탈시설 기반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재난 대응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서지 정보
Morales, D. X. (2025). Natural disaster vulnerability among people with disabilities: Insights from the 2024 Household Pulse Survey. Disability and Health Journal. 18(2), 101763. https://doi.org/10.1016/j.dhjo.2024.10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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