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정책 실무자로 일하다 보면 중앙정부를 향한 볼멘소리를 하게 되는 일이 많다. 중앙정부가 설계한 온갖 사업과 정책이 수렴하는 지역 현장은 상충하는 정책 논리가 파열음을 일으키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연계·협력이 요구되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보건의료와 복지의 협력, 의료·돌봄 통합지원이 대표적이다. 사업 논리도, 인력도, 정보체계도, 목표도, 속도도 서로 달라 어긋난 톱니바퀴처럼 구조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의료·돌봄 통합지원은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분절적인 보건의료와 복지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정책이다. 의료 필요와 돌봄 필요를 동시에 가진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2024년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2026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책의 필요성이야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법 시행을 불과 1년 앞둔 지역이 실제로 이를 구현해 내는 일은 난망하기만 하다.
어긋난 톱니바퀴들을 맞물리게 해보고자 현장의 고민을 반복하다 보면, 처음부터 잘 만들었으면 이 고생을 안 할 텐데 싶기도 하다. 어느 지역에서든 범용성 있게 적용할 수 있는 탁월한 사업 모형을 꿈꿔보는 것이다. 이 모형은 다양한 조건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사전에 반영할 만큼 정교하기도 해야 한다. 즉 지역의 정책 현장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은 중앙정부가 충분히 범용적이면서 충분히 섬세한 모형을 내려주지 않은 탓이다. 일반적이면서 특수한 그런 모형.
유니콘이 실제로 존재한다 치더라도 정책 집행의 과제는 여전히 남는다. 중앙정부가 그려놓은 청사진이 얼마나 완성도 높은지와 관계없이 그것이 지역에서 그대로 구현되리라 보장할 수는 없다. 지역의 행위자들은 수동적인 꼭두각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체성은 상황적 조건과 관계 깊지만, 그것만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결국 유니콘은 현실에 없고, 지역은 고유한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좋은 사업 모형도 필요하고, 제도의 구조적 정렬도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오늘 소개하는 연구는 영국의 통합케어시스템(Integrated Care System) 개혁을 사례로 삼아 중앙정부의 정책이 지역 현장에서 구현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바로 가기 : 건강체계 거버넌스의 딜레마 협상하기: 영국 통합케어시스템에 관한 탈중앙적 분석).
영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분절적인 서비스의 문제를 해결하고 보건의료·복지 예산을 통제하기 위해 통합케어시스템을 도입했다. 2016년 지역마다 '지속가능성과 전환 파트너십(Sustainability and Transformation Partnership, STP)'이라는 협력적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어 새로운 시스템으로 이행을 꾀했다. 이 연구는 STP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와 각종 회의체를 관찰한 내용에 기반해 현장의 역동을 분석한다.
연구의 이론적 관점도 짚어둘 만하다. 탈중앙적 접근과 협상된 질서 논제가 그것이다. 탈중앙적 관점은 현장의 거버넌스 양상을 관료제나 시장과 같은 중간 수준의 구조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행위자들의 신념과 해석에 따른 의미 만들기가 중요하다고 본다. 각기 다른 지역이나 집단의 전통과 서사가 제도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한편, 협상된 질서 논제는 행위자를 향한 관심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탈중앙적 접근과 공통점이 있지만, 더 미시적인 역동에 주목한다. 특정한 권력관계 속에서 행위자들이 상호작용하며 현장의 제도를 구성해 나간다고 본다. 연구는 두 가지 이론적 관점을 결합하여 통합케어시스템 도입이 조성한 역할, 자원, 관계, 책임의 재분배라는 딜레마에 직면한 지역이 어떤 거버넌스 양상을 만들어내는지 파악한다.
먼저 지역의 행위자들은 큰 틀에서 목적을 공유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제각기 다르게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모두가 공유하는 목적은 '더 잘 협력하는 우리 지역 만들기'처럼 포괄적이지만, 막상 병원 의료진은 입원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두고, 지자체 공무원은 지역사회 예방 체계 구축에, 구급대는 응급 상황 감소에 초점을 두었다.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 모두 동상이몽이었던 셈이다. 누구의 비전을 우선할 것인지는 행위자 간의 권력 불평등과 기존 거버넌스 관행이 영향을 미쳤다. 많은 참여자가 병원의 입김이 가장 크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포괄적이고 모호한 목적은 행위자 간의 구체적인 차이를 은폐하거나 약화하는 역할을 했다.
거버넌스 구조 역시 치열한 협상의 장이었다. STP의 리더십은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고 인식되긴 했지만 정작 공식 권한은 없었다. 그 결과 많은 행위자가 위원회에서 급성기 병원 소속 위원의 비중이 압도적이라고 인식했음에도 리더십이 직접 개입할 수 없었다. 성과 모니터링을 도입했을 때 병원 관계자들은 반발하면서 이것이 기존 제도의 요구와 충돌하며 병원에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고 비판했다. 리더십은 설득을 위해 비공식적인 소통과 협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사례로 자원의 공동 조성과 분배가 관건이었는데, 리더십은 비공식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긴밀한 실무적 논의와 협상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서비스 재구성 과정에서 협상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정신질환 입원을 줄이려면 병원에 대한 자원 투입을 줄여야 했지만, 입원이 줄기 전까지 자원 투입을 줄일 수 없는 진퇴양난 상황이 발생했다. 회의는 자주 교착 상태에 빠져 비슷한 논의가 제자리를 맴돌았다. 리더십은 갈등 해결을 위해 기관별 이해관계에서 초점을 돌려 변화의 구체적인 사안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한편, 서비스 통합창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리더들은 통합의 방향을 미리 설계해두고, 일반의를 비롯한 핵심 이해관계자의 참여는 사후 정당화를 위한 형식적 절차로 만들기도 했다.
이상이 이 연구의 주요 결과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연구가 규범적 접근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통합케어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지역 현장에서 조직된 협력적 거버넌스의 양상이 때로는 점진적으로 관리된 협상으로, 때로는 은밀한 배타적 협상으로, 때로는 형식적 협상이나 비협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설명할 뿐이다. 이 설명은 곧 비판이기도 하다. 즉 지역 현장의 관점에서 정책 집행이란 애초에 중앙정부가 그려놓은 청사진을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오히려 지역의 행위자들이 각자의 맥락과 해석에 기반하여 새로운 관계를 창출해 가는 구성적 작업이 정책 집행의 본질이 아니겠느냐고 묻는다.
그렇다면 지역의 의료·돌봄 통합지원에서 좌충우돌을 예감하는 우리의 질문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중앙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마땅하나 불충분하다. 지역의 행위자로서 스스로와 다른 행위자들의 맥락과 전통을 이해하기, 이를 기반으로 정책의 재구성 과정에서 만들어 갈 경합의 양상을 예측하기, 그 갈등과 타협이 가능한 한 사람들의 필요에 복무하는 방향이 되도록 개입하기. 전반적인 제도나 구조를 넘어 지역 현장의 미시적 역동에 주목하는 일은 마땅하기도, 유용하기도 하다.
*서지 정보
Waring, J., Bishop, S., & Roe, B. (2025). Negotiating the dilemmas of health system governance: A decentred analysis of integrating care systems. Journal of Critical Public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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