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2024년 12월 3일 '대한국민'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국가 경제를 곤두박질치게 만든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23일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060일만이다.
'법과 정의의 수호자'라는 검사 출신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의 배우자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지난 2년 11개월 수많은 비리 의혹에 휩싸여왔다. 스캔들이 터지면 다음 날 새로운 비리 의혹이 그걸 덮었다. 정권의 존재가 모순 그 자체였다.
윤석열은 '자폭'해 물러났지만, 그들 부부가 남긴 비리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은 이제 시작이며 청산되지 않은 '윤건희 정권'의 내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윤석열 파면 이후 남은 과제들을 짚어 봤다. 편집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윤건희' 정권의 용산-한남동 생활이 끝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식 후 여의도에서 용산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며 '용산시대' 개막을 알렸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이전은 처음부터 졸속으로 추진됐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2년 3월 대통령 당선 닷새 뒤 '용산시대' 청사진을 발표하며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을 공식화했다. 대통령실은 용산 국방부 청사로, 관저는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급변경됐다. 그러나 관저는 한 달 뒤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다시 변경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청와대의 용산 이전 비용이 496억 원이라고 주장했다. 취임 3개월 만에 300억 원 이상이 초과됐다.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국방부·합동참모본부·외교부 장관 공관 등 연계 이전에 따른 총비용을 최대 1조 원으로 추산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용산-한남동 생활에 따른 이전 비용보다 더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법사, 역술가, 풍수 전문가, 정치 브로커의 등장이었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용산 이전을 점지했다'고 주장했다.

尹의 '용산시대', "청와대 가면 뒈진다"로 결정?
영부인이 무속에 진심이라는 세평이 있었으나 설마 했다.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윤 전 대통령 손바닥에 적힌 '임금 왕(王)'자가 노출되면서 '무속'과 관련된 의혹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선캠프 '비선 개입' 논란을 불러온 건진법사가 등장했다. 그는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 회사의 고문을 맡은 이력이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천공이 "청와대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귀신이 많아 잘못 갔다가는 귀신 붙는다"고 한 강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용산 이전에 영향력을 끼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천공이 관저 이전 과정에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방문했다는 의혹까지 일었다. 이후 지난 2023년 7월 경찰 수사에서 천공이 아닌 풍수지리 전문가 백재권 사이버한국외국어대 겸임교수가 방문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불어민주당은 "백 교수는 말이 겸임교수지 관상·풍수 전문가로 윤 대통령의 당선을 예언해 유명해진 사람"이라며 "지금이 풍수 전문가가 궁궐터 정해주던 조선시대인가"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의 공천 개입 의혹 녹취록에 따르면, 명 씨도 지난 2022년 3월 대선 직후 윤석열·김건희 부부에게 '청와대에 가면 죽는다'는 조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명 씨는 지인과의 통화에서 "경호고 나발이고 내가 (김건희 여사에게) 거기(청와대) 가면 뒈진다 했는데, 본인 같으면 뒈진다 하면 가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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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방탄 감사'에도, 의혹의 문은 열리게 되어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용산과 한남동에 각각 대통령 집무실과 대통령 관저를 '새로' 만들었다.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직인수위위원회 시절 '청와대 이전 TF 경호경비팀장'을 맡아 대통령·관저 이전 업무를 주도했다. 이상민 전 장관이 행정안전부 장관직에 임명된 뒤부터 계약이 이뤄졌다. 대통령 관련 시설 공사 발주처는 행안부다. 김용현 전 장관과 이상민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다.
기존 시설을 대통령실과 관저로 용도 변경하는 리모델링 공사였지만 인수위는 공개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진행했다. 대통령실 리모델링을 맡은 '다누림건설'은 계약 당시 6개월 된 기술자 2명이 전부인 신생 영세기업이었다. 관저 리모델링을 담당한 '21그램'은 김 전 대표 전시회 협찬사로, 실내 건축업 면허만 가진 인테리어업체였다. 특혜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22년 10월 4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의 '대통령실 청사 리모델링 관련 계약 현황'에 따르면, 대통령실과 관저의 건축·기계·소방·전기 등 공사비용은 41억8000만 원이었으나 추가 계약과 계약 변경 등 총 9번 계약이 바뀌면서 공사비용은 122억9000만 원까지 늘었다. 참여연대와 시민 723명은 일주일여 뒤 대통령실·관저 이전과 비용 관련 불법 의혹에 대해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두 달 뒤 감사실시를 통보했지만, 감사 결과 보고서는 1년 8개월 뒤에나 발표했다. 감사원은 이전 과정에서 국가계약법 등 관련 법규를 다수 위반했지만 이전 결정에 직권남용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또 이전 과정에서 경호처 간부의 비위로 16억 원의 국고 손실이 발생했지만 김 전 대표가 운영한 코바나컨텐츠 후원 업체(21그램)가 공사 업체로 선정된 경위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는 담당자의 진술이 있었다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국회는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감사원의 '부실 감사' '맹탕 감사'를 강하게 질타했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위법 행위를 적발하고도 수사 의뢰를 하지 않았다는 야당의 지적에 "중대한 범죄라고 판단하지 않았다"거나 이전 과정에 무속인이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그게 왜 위법인지 모르겠다"고 발언했다. 그는 감사원의 회의록 제출도 거부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5일 감사원장의 정치적 중립 위반, 대통령실·관저 이전에 대한 부실 감사 및 회의록 제출 거부 등을 이유로 최 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14일 회의록 제출 거부는 "국회증언감정법 위반"이라고 봤지만, 대통령실·관저 부실 감사 의혹과 관련해서는 "부실 감사라고 볼만한 다른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감사원은 지난 2월 원장 직무대행 체제에서 대통령실·관저 이전 의혹 재감사에 착수하는 한편, 검찰에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관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원장은 그러나 헌재의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해 대통령실·관저 이전 의혹 재감사 담당 국장을 전격 교체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용산-한남동 생활은 눈덩이 같은 의혹만 남겼다. 여러 법령을 위반한 것이 명백하고 불법으로 의심되는 사례들이 숱하게 나왔지만, 이에 대한 수사 의뢰조차 없었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후에도 윤석열·김건희 부부는 관저에서 국민의힘 지도부 등과 환송 만찬을 벌였다고 한다. 1주일간 수돗물 228톤(t)을 썼고, 500만 원짜리 캣타워와 2000만 원짜리 히노키 욕조를 구입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국가재정법·국유재산법 위반, 직권남용, 횡령·배임 등 범죄를 의심한다. 용산 이전 추진 과정부터 대통령실·관저 불법 공사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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