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혼자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았다. 운동을 하러 온 옷차림은 아니었다. 천천히 걸으며 운동장을 빙빙 돌고, 또 돌고. 그러다가 힘들면 철퍼덕 앉아서 잠시 쉬었다.
어느 날은 학교 옥상에도 나타났다. 길게는 하루에 4시간 가까이 학교 곳곳에서 걷거나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발견됐다. 수상하다 여길 만도 했지만 학교 안의 누구도 남자를 신고하거나 쫓아내지는 않았다.
남자의 이름은 이양기(58). 직업은 교사. 그 초등학교에서 과학전담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그가 교무실에 있는 모습을 볼 순 없었다. 교무실엔 그의 책상이 없었다. 과학실에서 다른 교사가 수업을 하거나 과학실이 방과후교실로 쓰이는 시간이 되면, 그는 늘 혼자 운동장을 돌았다.
"이양기 과학교사의 동향 추가 보고."
어느 날 학교 업무 시스템에 뜬 문서 제목이다. 학교 안에서 그는 늘 혼자였지만,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그를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그 충직한 눈들은 학교 안에서 이 교사를 지켜보고 어디론가 성실히 보고했다.
불면의 밤이 시작됐다. 잠을 자야 한다 생각할수록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어 겨우 잠이 들면, 꿈에서도 늘 싸웠다. 약을 먹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극심한 두통도 시작됐다.
결국 이 교사는 다시 학교를 잠시 떠나 있기로 했다. 해임됐다 복직한 지 1년 만, 공익제보자가 된 지 4년 만이었다.
이 교사는 지난 2018년 3월 우촌초등학교 교감으로 임용됐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우촌초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다. 2022년 기준 학부모 부담금은 연간 1468만 원에 달한다. 2019년 기준 우촌초의 이월금은 약 50억 원.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관내 다른 사립초의 이월금 평균이 약 2억 1000만 원인 것에 비해 '수상하리만큼' 많다.
이 교사는 우촌초에서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최은석 당시 우촌초 교장에게 처음 전해 들었다. 감옥에 있는 전 이사장,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이 학교에 대한 '옥중 지시'를 내린다는 것이었다.
이 회장은 학교에 관해 지시할 권한이 없는 '전' 이사장에 불과했다. 그는 2001년 우촌초를 인수한 뒤, 2010년까지 이사장을 지냈다. 임기는 끝난 상태였다. 대신 가족과 측근에게 이사장 자리를 연이어 맡기고, 이사회도 자신의 측근들로 구성했다.
이 회장의 '본업'은 무기중개상이었다. 그는 방위사업청의 사업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국군기무사령부 군무원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2015년 구속 수감됐다.
우촌초 행정실에는 그의 처조카인 유현주(46) 씨가 약 20년째 일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유 씨에게 편지와 음성 녹음, 영상 파일 등을 보내 '은밀한' 지시를 내렸다. 이 회장이 보낸 편지의 마지막은 항상 "읽은 후 바로 파기하라"는 문장으로 끝났다. (관련기사 ☞ '방산비리'·'모델 성희롱' 이규태 회장, 공익제보자에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2018년 대법원은 이 회장에게 징역 3년 10개월과 벌금 14억 원의 형을 확정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이 회장은 가석방됐다. 석방된 이 회장은 그가 옥중에서부터 지시해온 스마트스쿨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사업 제안서에 적힌 예산은 24억 원.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태블릿PC, 학습용 로봇 등을 도입하는 스마트스쿨 사업은 통상 3억 원이면 충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예산을 부풀리고, 범행을 모의한 A 업체가 입찰에 선정되게 만들려 했다. 그리고 A 업체에게서 용역대금을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교비를 빼돌리려 한 것이었다.
이 회장은 처조카인 행정실 직원 유현주 씨에게 사업을 진행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결정권자인 최은석 당시 교장과 이양기 당시 교감도 압박에 시달렸다. 내용도 절차도 완전히 잘못된 사업 지시를 따를 것인지, 두 사람은 같이 고민을 나누며 버텨나갔다.
스마트스쿨 사업계획을 결재하라는 압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거세졌다. 결단이 필요했다. 이 교사는 최 교장에게 물었다.
"교장 선생님, 혹시 신분상 불이익도 감수할 수 있겠습니까?"
최 교장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결재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최 교장의 결심에 이 교사도 마음을 한데 모았다. 2019년 5월 이양기, 최은석, 유현주 등 공익제보자 6명은 서울시교육청에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폭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즉시 감사에 나섰다. 그 결과 스마트스쿨 사업 계약은 취소됐다.
불의는 막았지만 정의는 오지 않았다. 공익제보자들에게 곧장 '칼날'이 돌아왔다. 학교 법인은 공익제보자들에게 해임 등 중징계를 내렸다.
이 교사 역시 해임됐다.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를 막고 나섰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복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학교 법인은 교감 임기만료를 이유로 다시 직권면직을 결정했다. 이번에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가 나서서 면직을 막았다. 학교는 또 다시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끝끝내 이 교사를 쫓아내려 했지만, 대법원 판결로 이 교사는 복직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3전 4기 끝에 얻은 승리. 2019년 10월 해임된 뒤 2022년 6월 대법원 판결을 받기까지, 꼬박 2년 8개월 동안 이어진 끈질긴 싸움이었다.
대법원의 복직 판결을 받은 2022년 12월, 이 교사 등 공익제보자 6명은 참여연대 올해의 공익제보자상을 받았다.
"(복직하고) 1년은 (학교 정상화를 위해서) 전력투구하느라 시간이 지나가는 줄도 몰랐어요."
-이양기 씨
2022년 10월 이 교사는 우촌초로 돌아갔다. 공익제보 이후, 다시 학교로 돌아온 공익제보자는 6명 중 2명뿐이다. 하지만 학교로 돌아온 그 역시 공익제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는 과학실에서만 근무하는 거예요. 교무실에 책상을 마련해달라고 했더니, 자리가 없어서 안 된다는 거죠. 학교 입장에서는 최대한 다른 선생님들하고 접촉을 줄여야 하고, 제가 오가는 게 보이면 불편하기도 하니까, 그냥 (과학실이 있는) 별관에만 머물도록 근무공간도 정해준 거죠."
-이양기 씨
이 교사는 학기 도중에 복직했기 때문에 학급담임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과학전담교사를 맡기로 했다. 그가 주로 수업하는 과학실은 다른 교사도 수업을 하고, 방과후교실도 열리는 '공용 공간'이다. 과학실에서 다른 수업이 진행되면 그는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하지만 담임을 맡은 학급도 없고 교무실에 자리도 없으니 가 있을 곳이 없었다.
"(과학실에서) 나오면 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옥상에 올라가거나, 운동장을 배회하는 시간이 좀 많았죠. 2022년은 그렇게 보냈어요."
-이양기
새 학기가 시작됐다. 2023년 1학기에도 이 교사는 과학전담교사를 자원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는 학급담임을 맡길 리 없을 것 같아 스스로 과학실을 택했다.
이번에도 교무실엔 이 교사를 위한 책상이 마련되지 않았다. 과학실에서 다른 수업이 있는 날에는 업무를 중단하고 어김없이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어느 날은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보고, 어떤 날은 운동장을 빙빙 돌았다. 특히 매주 화요일이면 4시간씩 교정을 배회해야 했다.
학교 안에서 이 교사는 늘 혼자였지만,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그를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학교 법인은 그를 감시하고 기록을 남겼다.
이 교사가 학교 업무 시스템을 이용하던 중 발견한 문서 제목이다. 작성자는 전 이사장을 지낸 이 회장의 측근이었다. 열람 권한이 설정돼 있어서, 평교사인 이 교사는 문서의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 교사는 곧바로 서울시교육청에 민원을 접수했지만, 해당 건은 조사나 감사로 이어지진 않았다.
자신에 대한 '감시' 문서를 발견한 날만큼 당혹스러웠던 날이 또 있었다. 전년도 근무 실적에 따른 교원평가 결과가 나온 날이다.
교원평가는 S-A-B 세 등급으로 나뉜다. 등급에 따라 성과급이 달라진다.
공익신고로 미운털이 박힌 이 교사에 대한 평가는 예상대로 B등급이었다. 문제는 그와 친분이 있는 동료 교사들이었다. 그들 역시 이 교사와 마찬가지로 전부 B등급을 받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저야 당연히 학교 법인과 사이가 안 좋으니까 (B등급일 거라) 처음부터 예상했지만, 저와 조금 친분이 있는 선생님들도 다 B등급이었어요. 근무 실적이 B등급을 받을 정도는 전혀 아니거든요. 저도 관리자(교감)를 해봤으니까 (평가 기준을) 알죠."
-이양기 씨
미안했다. 자신과 친하다는 이유 때문에, 주변 동료들까지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는 게. 그리고 분노했다. 특히 학교에서 이 회장의 측근들을 마주칠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2020년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법인 임원 13명에게 이규태 회장의 전횡을 묵인하고 동조한 책임을 물었다. 임원 전원에 대한 승인 취소 처분을 내린 것. 하지만 학교 법인은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걸었다. 1심은 서울시교육청이 승소했지만, 학교 법인은 즉시 항소했다. 현재 2년 1개월째 2심이 진행되고 있다.
2021년 12월 검찰은 스마트스쿨 사업을 강행한 이 회장과 그의 측근, 학교 관계자 등 12명을 기소했다. 업무상횡령, 강요, 입찰방해,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 하지만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회장과, 그의 편에 섰던 인물들은 아직 아무도 벌을 받지 않았다.
반면 공익제보자들은 이 회장과 학교 법인이 제기한 무더기 고소·고발을 감당해야 했다. 학교 법인이 교직원 유 씨에게 제기한 고소·고발만 해도 무려 10건. 심지어 교육청 감사관마저 위증을 했다고 고발했다.
공익제보자들은 직장을 잃고 학교 밖으로 쫓겨났다. 공익제보자들은 학교에 출근하는 대신, 경찰서로, 검찰청으로, 법원으로 불려 다니는 게 일상이 됐다. 이 교사처럼 힘든 싸움 끝에 복직해서도 여전히 차별과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부정을 저지른 이들은 벌을 받지도 직장을 잃지도 않았지만, 정의를 선택한 공익제보자들은 직장을 잃거나 학교에 돌아와서도 고통받고 있다.
"이 회장 측근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는 너무 화가 나거든요.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왜 아직도 근무하고 있는지, 스트레스 받아요. 저 사람들 때문에 정말 여기서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은 지금 근무를 못 하는 상황이고…."
-이양기 씨
그 스트레스가 화근이었을까. 이 교사의 몸에도 이상 신호가 켜졌다.
'잠을 자야 되는데, 잠이 안 드네.'
복직 이후 3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새벽 3시가 넘어 겨우 잠이 들면, 꿈에서도 늘 싸웠다. 이 회장의 측근들이 꿈에 나타났다.
"잠깐 잠이 들어도 그런 인물들이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는 꿈, 싸우는 꿈을 꾸는 거예요. 정신적으로 제가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이겠죠. 잠재의식 속에서도 (그들은) 끝까지 내가 싸워야 하는 대상이라는…."
-이양기 씨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어도 잠을 못 자는 건 똑같았다. 정신과 약은 처음이라, 괜한 불안감만 커졌다.
"내가 이런 약을 먹던 사람이 아닌데 다음 날 (제시간에) 못 깨어나는 건 아닐까, 내적인 갈등이 증폭돼서 싸우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새벽 두세 시가 되는 거예요."
-이양기 씨
지난해 10월쯤 이 교사는 머리 부위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머리를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수업을 이어갈 정도였다. 대상포진이었다. 참을 수 없는 두통이 밤낮으로 이어졌다.
"저는 정신력이 강한 편이라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쌓이고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의사도 이건 쉬면서 치료해야 한다 하더라고요."
-이양기 씨
결국 두 달간 병가를 냈다. 교직 생활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복직한 지 딱 1년째 되는 때였다.
그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마다 공익제보자 동료들을 떠올렸다.
복직하고 고작 1년 만에 건강에 이상이 생기자, 이 교사의 마음 한편에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하지만 그때마다, 뜻을 함께했던 공익제보자 동료들을 떠올렸다.
"사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있었죠. 너무 스트레스 받으니까. 근데 여기서 제가 그만두면 돌아오지도 못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같이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로 (힘들어질 테니까)."
-이양기 씨
이 교사는 공익제보자다. 그가 복직한 뒤 겪은 차별과 감시는 단순히 비도덕적인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다. 공익제보자를 향한 불이익과 괴롭힘은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불법행위다. 참여연대와 <셜록>은 학교 법인과 관련자들을 고발하기로 했다.
올해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이 교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또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교사는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또 한 번 다짐했다.
<셜록>은 지난 2일부터 3일간 우촌초 행정실과 통화했다. 하지만 "교장, 교감이 연수 중이라 3월에 출근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지난 4일에는 우촌초와 학교법인 일광학원에 대한 질의서를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질의서에는 이 교사에 대한 괴롭힘을 비롯해, 공익제보자들에 대한 복직거부 등에 대한 질문을 담았다. 다음 날 우편물을 수령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아직 답변은 받지 못했다.
이 회장 쪽도 취재를 시도했다. 지난 4일과 5일 양일간 전화를 걸었지만, 이 회장은 "통화할 수 없다"는 말만 남겼다. 문자메시지에도 답이 없었다.
7일 서울 성북구의 한 교회 주차장에서 그를 만나 질의서와 명함을 건넸지만, 그는 취재를 거부하고 교회 안으로 사라졌다. 이후 문자메시지로 재차 질문지를 보냈지만 아직 답변은 오지 않았다.
※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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