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30여 년 전 일본과 비교되는 요즘의 한국이다. 부동산 버블이 절정에 달한 후 빠른 속도로 시장이 경착륙 중이다. 장기간 이어진 부동산 투기로 인해 가계부채가 막대하게 늘어난 모습도 지금 한국과 과거 일본이 닮은꼴이다. 급격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는, 한국이 옛 일본보다 무지막지하게 심각할 뿐, 역시 두 나라가 닮았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 일본의 출산율은 부동산 버블이 절정에 달한 1989년 1.57을 기록했다. 훗날 일본 사회가 이를 '1.57 쇼크'로 기억했다. 일본에서 인구절벽 문제가 본격적으로 심화한 시기다.
메이지 유신 이후 시작된 일본 현대사는 천황의 연호를 기준으로 메이지-다이쇼-쇼와-헤이세이(平成)를 이어 오늘날 레이와(令和)에 이른다. 서력을 사용하는 현대 문명 사회에서 여전히 연호를 고집하는 일본의 감각은 낯설지만, 일본인들은 연호를 기준으로 시대상을 구분하는 데 익숙하다. 이 중 특히 눈여겨 볼 시기가 쇼와(1926~1989)와 헤이세이(1989~2019)다. 쇼와 시기 일본사는 역동의 시대다. 이 시기를 상징하는 굵직한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도쿄올림픽-오사카 만국박람회-부동산 버블이다. 일본이 폐허를 딛고 일어나 부흥에 성공했고, 이후 세계 제일의 나라로 성장했다는 신화적 스토리가 쓰여진다.
헤이세이 30년은 그와 대비된다. 버블 붕괴(1990년대)-한신·아와지 대지진/옴진리교 테러 사건(1995년)-9.11. 미국 테러(2001)-2011 동일본대지진이 일본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네 가지 쇼크'다. 줄곧 내리막의 이야기로 일본인에게 기억되는 시기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오늘의 한국을 복기하고 미래의 한국을 대비하려면 일본의 헤이세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이 시기를 조명하는 책이 헤이세이를 떠나보낸 일본에서 나오고 있고, 한국에도 빠른 속도로 번역돼 출간되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여겨 볼 책은 <헤이세이사 1989-2019: 어제의 세계, 모든 것>(요나하 준 지음, 이충원 옮김, 마르코폴로)다. 마침 이 책을 읽던 중 장석준 신현재 기획위원이 <프레시안> 지면에 직접 이 책을 소개했다. (☞관련기사: 일본 표류하게 만든 '근대의 가을', 한국은 더 혹독하다)
함께 볼 책으로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요시미 슌야 지음, 서의동 옮김, AK)가 있다. 두 책은 헤이세이사를 다뤘다는 점 말고도 공통점을 갖는다. 두 책을 국내에 소개한 옮긴이가 모두 도쿄 특파원을 지낸 한국 기자다. 일본의 헤이세이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살펴본 이들의 작업물이다. 두 책은 차이점도 있다. <헤이세이사>가 에세이라면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리포트다. 일본의 현대 사상가 이름을 줄줄이 꿰는 이가 아니라면 저자의 감상과 해석이 깊이 들어간 <헤이세이사>보다는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읽기 편할 수 있다. 책은 2020년 국내에 발간됐지만 지금이야말로 국내에서 갖는 의미가 뚜렷하다.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서 도쿄대 교수인 저자는 헤이세이 30년의 일본이 앞서 언급한 4대 쇼크(버블 붕괴-대지진/옴진리교 테러-9.11 테러-동일본대지진)로 인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붕괴했다고 기억한다. 그 각각의 기억을 저자는 크게 경제, 정치, 사회, 문화의 4대 차원으로 나눠 세밀하게 살핀다.
'헤이세이 실패'는 무엇보다 일본 경제의 실패담이다. 부동산 버블이 절정일 당시 일본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1989년 세계 기업 시가총액 상위 10개 중 7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상위 50개사 중 32개사가 일본 기업이었다. NTT(1위), 일본흥업은행(2위), 스미토모은행(3위), 후지은행(4위), 제일권업은행(5위) 등 상위 5개 기업이 모두 일본 기업이었다. 미국 기업은 IBM(6위), 엑슨(9위) 단 둘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모두가 알 듯, 언급된 당시 일본기업 중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기업은 없다. 2018년 상위 50개사에 들어간 일본 기업은 토요타 자동차(35위)뿐이다. 과거 전 세계를 호령한 마쓰시타, 도시바, 샤프 등의 이름은 이제 세계 시장에서 잊힌 지 오래다. 가전제품의 대명사는 어제의 소니에서 오늘의 삼성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지연된 기준금리 인상, 재편된 글로벌 공급망에의 적응 실패, 시장예측 실패 등을 중요 원인으로 꼽는다. 도시바, 닛산, 샤프 등의 실패담이 과거 세계 언론을 장식한 뉴스를 되새김하며 거론된다.
일본 정치도 실패했다. 일본의 오랜 문제였던 정경유착이 1989년 리쿠르트 사건으로 인해 사회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일본은 정치 개혁을 위해 기존의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로 바꿨다. 계파 정치의 주요인으로 꼽힌 중선거구제를 개혁해야만 깨끗한 정치가 가능하리라고 당시 일본 사회는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사회당의 몰락과 고이즈미식 포퓰리즘 정치의 득세였다. 사회당을 이은 제1야당 민주당은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무너졌다. 유일하게 성공 사례로 남은 고이즈미식 포퓰리즘은 이후 아베 정권을 통해 복기됐다. 그 사이 지역 유권자와 유착한 정치인들의 건설자금 끌어오기 정치가 극에 달해 일본 전역을 토건공사 현장으로 만들었다. 남은 건 유바리시 사태에서 보듯 과도한 토목공사로 인한 지방재정의 붕괴일뿐, 어떤 정치도 지방소멸과 고령화(초소자화)를 막지 못했다.
저자는 헤이세이 일본이 입은 가장 큰 쇼크로 동일본대지진을 꼽는다. 이는 헤이세이 일본의 완전한 실패를 상징했다. 일본이 자랑한 안전 신화가 무너졌다. 원자력의 위험을 세계 누구보다 알고도 이를 제어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일본의 기술 신화도 붕괴했다. 이로써 저자의 말대로 "1970년대에 확립된 도시개발과 에너지 공급체계 전체에 심각한 물음표가 붙게 됐다."
옴진리교 사건을 비롯해 일본 매스미디어를 열광에 빠뜨린 엽기 사건이 일본 사회에 남긴 상처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동산 버블은 '1억 총중류(一億総中流, 1억 인구 모두 중산층)' 신화를 자랑한 일본을 본격적인 양극화의 늪으로 끌어들였다. 이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바람이 고이즈미 정권을 지나면서 일본에도 상륙했다. 사회는 점차 분열됐다. 불안한 조짐은 옴진리교 사건을 비롯해 1989년 미야자키 쓰토무 유아연속 유괴살인사건, 1997년 고베 중학생 연속 살상사건, 2008년 아키하바라 도오리마 사건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청년 실업 문제, 히키코모리 문제, 사토리 세대 문제가 양극화의 그늘이었음이 확실해졌다. 저자를 인용하자면 "1980년대까지 일본에서는 '생활기반이 안정돼 있고 예측가능성이 높고, 생활목표가 뚜렷하고,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이 목표에 도달가능'"했다. 그러나 이후 사회, 곧 헤이세이 시대 일본에서 사람들은 "장래의 생활파탄이나 생활수준 저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게 됐다. 이는 상시 디플레에 빠진 경제상과 맞물리며 사회의 활력을 앗아가고, 절망을 키우고, 분노를 끓어오르게끔 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런 절망은 1990년대 특히 찬연하게 빛난 일본의 대중문화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저자는 <아키라>, <공각기동대>, 아무로 나미에, 고무로 데쓰야 등의 이름을 통해 불안에 빠진 일본이 어떻게 예술을 통해 세상과 조우했는지를 드러낸다. 책에는 거론되지 않았으나 많은 이들이 1990년대~2000년대에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링>, <주온>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공포영화가 불안에 빠진 일본의 당시를 보여줬음을 기억한다. 후루야 미노루, 오노 후유미, 이토 준지, 마나베 쇼헤이 등의 작가가 만화와 소설을 통해 일본의 민낯을 직시하는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책은 일본의 어제를 다뤘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남의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은 일본과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비슷한가. 버블 절정기 일본의 실업률은 낮았다. 일본의 경제력은 미국을 위협했다. 일본 사회 전체가 자신감에 넘쳤다. 부동산 절정기 한국의 오늘이 과연 당시 일본보다 낙관적인가. 한국이 2000년대에 성장하는 데는 신자유주의적 공급망 재편이 있었다. 한국은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자 생산기지인 중국을 타고 신자유주의 파고를 넘었다. 이제 한국의 성장 견인차 역할을 한 글로벌 공급망이 닫히고 있다. 1년째 이어지는 무역적자가 경종을 울리는 가운데 부동산 버블은 여전히 과도하고, 그 사이 가계부채 잔액은 1600조 원대로 불어났다. 한국의 청년들은 이미 자녀 갖기를 포기했다. 한국의 출산율은 엽기적인 수준으로 낮지만, 이 엽기가 일상이 되면서 어느새 체념의 정서가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다. 일본의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한국이 공부해야 할 것은 많지만, 그럴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두의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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