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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시민', '올바른 시민'이라는 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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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시민', '올바른 시민'이라는 탈

'예비 시민', '올바른 시민'이라는 탈

최근 선거권·피선거권 연령 제한이 하향되어 18세 청소년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있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자 중 10대는 만 18세 4명, 만 19세 3명 모두 7명이 출마하였다. 피선거권 연령이 선거권 연령과 일치되어서 청소년이 출마할 수 있게 된 것은 유의미한 변화이지만, 청소년 다수가 배제된 정치의 현실 속에서 단순히 청소년 정치인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청소년들의 정치와 삶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만 어려진다고 정치가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청소년이 출마도 하고 투표도 하게 됐으니 청소년 참정권이 보장된 거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 현재로서는 일부 연령대의 청소년이 제한된 공간에서 테이블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지, 실질적으로,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청소년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문화는 여전히 자리 잡지 못했다. 시민이라면 일상적인 공간에서 존중받고,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청소년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학교와 사회의 현실 속에서, 청소년들은 여전히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기성 정치인들과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들이 TV에 비친 비슷한 연배의 정치인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지는 않듯, 이번 선거에 '청소년 나이대'의 후보들이 출마했다는 것만으로 많은 청소년이 그들이 '청소년인 나'를 대표하고 대변한다고 느끼진 못했다. 출마하는 후보들의 연령대가 낮아진다는 것, '청소년이 후보로 출마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한국 정치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피선거권 연령이 18세로 낮춰졌더라도 현재 정치 문화에서 10대 청소년이 당선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정치에서도 '자격'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정치할 수 있고, 재산이나 학력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대표자가 될 수 있다는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이 흔하다. 나이가 어리고 학력도 낮을 테고 특별한 경력을 갖기도 어려운 대부분의 청소년은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어렵다. 그러면서 그 자격이 정말 정치에 필요한지, 누가 그 자격을 정하는지, 어떤 이들이 그 자격을 얻을 수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우리 정치는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를 크게 반영하고 있는가? 청소년을 비롯해 소수자들의 삶의 문제가 정치에서 정당하게 다루어지고 있을까? 과연 극히 제한된 소수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조건에서 그중에 나이가 10대, 20대인 정치인이 있다고 해서 그런 상황이 달라질까?

이는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단지 '청년 정치인이 많아지고 정치가 젊어지는' 차원으로만 이야기하려는 것과 같은 맥락의 오해이다. 대다수의 청소년이 지금 당장 자기 삶 가까이 있는 여러 일들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상황들에는 주목하지 않고, 청소년 참정권을 정치권 평균 연령 하향이나 젊은 정치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정치나 세대 교체는 정치가 더 다양하고 민주적으로 변화하는 징후 또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나 변화의 핵심은 아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청소년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이 목소리가 존중받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진짜 청소년에게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선거/정치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선거권·피선거권은 낮추어졌지만 정치의 장벽은 여전하다. 그중 하나가 '똑똑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을 우려하는 태도이다. 대표적인 예로, 선거권 연령이 하향되었으니 하루라도 빨리 청소년에게 유권자의 권리와 의무, 선거 제도 및 절차, 선거 관련 법규를 교육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세 유권자를 위한 선거 교육 자료를 제작했고, 각 시·도교육청도 선거 교육 자료를 만들어 학교에 배포했다.

하지만 정치교육을 받아야만 참정권을 보장받거나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교육은 시민의 정치적 언어에 힘을 더하기 위한 역량 강화 교육으로 이해되어야지, 권리의 전제 조건이 아님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현재, 혹은 예전부터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고 있던 비청소년 유권자들 중, '민주시민교육'이나 '정치교육'에 참여한 적 있는 이들은 매우 드물 것이고,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의 정치적 능력을 의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30대, 40대 유권자의 투표 참여율이 떨어진다고 해서 이들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나이대'라고 말하며 '민주시민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사실 대상을 청소년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다. '청소년들은 정치적 권리를 잘 행사하지 못할 것이므로, 애초에 관심도 없을 것이므로 교육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하는 민주시민교육은 청소년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나아가 현재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교육(혹은 민주시민교육)의 대부분은 청소년을 정치에 무관심한 존재로 전제하고, 청소년의 정치적 언어에 힘을 더하기보다는 '이런 건 하지 말아야 한다', '선거에 관심을 갖고 공약을 잘 알고 이렇게 해야 된다'라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교육은 단지 법을 알고 준수하거나, 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하는 태도를 기르는 교육이 아니다. 자기 삶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른 삶을 상상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법과 제도를 바꿔 나가는 실천을 하며, 자신이 직접 바꾼, 바뀌어 가는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교육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정치교육은 '예비 시민'인 청소년을 '올바른 시민'으로 길러내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어떤 조력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 현실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제도나 교육이 존재하더라도 그 제도나 교육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대하는지에 따라 적용되는 방식과 지향은 전혀 달라진다. 정치교육은 시민의 권리로서 보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육감 선거권만 16세로 보장이 되면 될까?

청소년을 교육 대상의 자리에 가둬 놓는 데서 비롯된 또 다른 오해가 바로 교육감 선거만 참여하게 하자는 것이다. 18세 선거권 이후 추가 연령 하향을 논의할 때 일각에서는 교육감 선거만 16세부터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는, 이들이 18세 미만의 청소년을(사실 18세 이상도 예외 없이 모든 청소년을) 떠올릴 때 학교에 다니는,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상상하며, 청소년을 곧 학생으로 연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도 지역 사회에서 살고, 상호작용 하며, 시장이나 구청장이 시행하는 정책의 영향을 받고, 시의회, 구의회, 국회에서 제정된 조례와 법의 영향을 받고,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들의 영향도 받는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선택을 한 청소년도 있으며,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라 해도 학교 이외의 상점, 은행, 관공서, 대중교통 등을 이용하며,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인 경우도 있다.

교육 분야만 바뀐다고 청소년의 삶이 좋아질까? 우리 사회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청소년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있으며, 이는 청소년의 삶을 교육이 전부인 양 바라보는 태도로 나타난다. 실제로 사회의 곳곳에서 다양한 위치와 역할로 존재하는, 존재하려는 청소년들은 무시한 채, 그 나이일 때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미 사회가 정해 놓은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배우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설정하고, 이를 전제로 청소년을 대해 왔다. 청소년에게 부분적으로 참정권을 보장한 것은, 우리 사회가 '18세 이상의 청소년에게만 정치하기를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시민'의 자리가 응당 필요했음에도 이제까지 보장하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나마 '보장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국가일수록 더욱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더욱 많은 범위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장한다. 아니, 그것이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말의 정의일 것이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의 의미는 단순히 '정치권 평균 연령 하향'이나 '숫자적 정치 허용 범위 조정', '새로운 교육(청소년 유권자 교육 등) 개발 필요성'이 아니다. 비청소년 중심적인 사회가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존중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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