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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장과 주식시장은 무슨 관계?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한국판 뉴딜과 주식시장 ② 판을 움직이는 분들은 따로 있다

"내일 언론에 쌍용차 얘기로 가득 찰 것 같은데, 쌍용차 얘기는 모레 쓰시고 혁신성장 얘기를 내일 써주시라."

지난 12일,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몇 차례나 강조한 얘기다. 쌍용차에 대해 단협 유효기간을 3년으로 늘릴 것, 무쟁의를 서약할 것, 그러지 않으면 한 푼도 지원할 수 없다는 엄포를 놓았으니 참석한 기자들 대부분이 그쪽에 관심이 쏠려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동안 이동걸 회장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져온 <인사이드경제>도 당일 온라인 생중계로 간담회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그의 말에 동의하지도 않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저 얘기가 진심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사업재편 활성화 방안'

자, 이야기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이동걸 회장이 강조했고 문재인 정부도 틈만 나면 얘기하는 '혁신 성장'의 대표적인 산업은 전기차·자율차 등 미래자동차 부문이다. 미래차 분야로 전환이 이뤄지면 엔진·변속기가 사라지고 배터리·모터 등 전기차 관련 부품산업, 특히 전장부품 산업이 성장한다는 건 이제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한국의 주요 부품사들은 여전히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부품 생산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기존 주력업종을 바꿔 미래차 부품으로 전환하는 경우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산업자원통상부가 분기별로 '사업재편 계획 심의위원회(사업재편위)'를 열어 그런 부품사를 10개 안팎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갖고 있다.

이름 하여 '선제적 사업재편 활성화 방안'인데 여기에는 항공기·의료기기·디스플레이 등 유망 신산업도 대상이긴 하지만 주로 미래차 부품 관련 사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테면 지난해 6월 23일에 열린 제26차 사업재편위에서 내연차에서 친환경차 부품 산업으로 전환한 6개 기업을 승인해 지원대상으로 결정한 바 있다.

▲ 제26차 사업재편 계획 심의위원회 승인기업 개요.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특정 기업체 명단이 나왔으니 지난번 글에서처럼 이들 기업의 지난 1년간 주가 변동표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코넥이나 새한산업과 같은 기업들은 비상장기업이어서 주가를 살피는 게 어려우니 상아프론테크와 덕양산업을 선택해 보았다.

▲ 상아프론테크와 덕양산업의 지난 1년간 주가변동표.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거짓말처럼 6월 중·하순, 그러니까 사업재편위 결정을 전후한 시점부터 이들 기업의 주가가 뛰어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6월 중·하순부터 2개월 기간을 임의로 정해 점선 박스로 표현해 보았음.) 물론 그 전에도 조금씩 오르기는 했지만, 이들 주가 흐름에 사업 재편기업으로 승인된 사건이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주식시장 새로운 마법사?

▲ 제27차 사업재편 계획 심의위원회 승인기업 개요.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이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그렇다면 26차가 아니라 27차 사업재편위에서 미래차 부품 전환으로 승인된 기업들(아래 표)을 놓고 똑같은 일을 해보도록 하자. 아래 명단의 기업들 중 상장기업인 우수AMS, 서진오토모티브 2개 기업의 지난 1년간 주가 변동표를 살펴보도록 한다.

▲ 우수AMS와 서진오토모티브의 지난 1년간 주가변동표.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마찬가지로 사업재편위가 열린 시점 9월 22일을 전후로 이들 기업의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9월 중·하순부터 2개월 기간을 임의로 정해 점선 박스로 표현해 보았음.) 특히 우수AMS와 서진오토모티브는 9월 22일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10월 하순에 최고점을 찍는 유형까지 닮아 있다.

▲ 제28차 사업재편 계획 심의위원회 승인기업 개요.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이쯤 되면 호기심이 아니라 확신이 생기게 된다. 석 달 뒤인 12월 27일에 열린 28차 사업재편위 사례를 살펴보면 어떨까? 위 표에 적시된 기업들 중 마찬가지로 상장기업들 중심으로 에코플라스틱, 삼기, 디아이씨, 세코닉스 4개 기업의 지난 1년간 주가 변동표를 뽑아보았다.

▲ 에코플라스틱, 삼기, 디아이씨, 세코닉스의 지난 1년간 주가변동표.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이젠 뭐 거의 족집게 수준이다. 사업재편 기업으로 승인이 떨어진 12월 27일을 전후로 주가는 수직으로 상승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오르고 있다. 이 정도면 산자부 사업재편위는 주식시장의 새로운 마법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계자와 플레이어는 어디에?

"미래차·친환경차 부품으로의 전환을 정부가 보증했으니 주가 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저평가된 기업 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인사이드경제>가 괜히 민감한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업재편 기업으로 결정되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수준의 주가였다가 갑자기 2~3배 이상 뛰는 일이 주기적으로 벌어지는데 이걸 이상하지 않게 여기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게다가 사업재편위에서 승인되는 기업의 리스트는 회의가 열리는 그날 결정되는 게 아니다. 후보기업들 리스트가 오래 전부터 올라와서 심사가 이뤄지고 미리 결정된다. 회의가 열리는 날은 사실상 승인되는 기업을 발표하는 세리모니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면 사업재편 승인이 이뤄지는 기업의 리스트가 발표되기 전에 미리 알 수 있는 인사들이 정부 고위급에 포진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기업들 중 상당수의 주가는 평온하게 유지되다가 명단이 발표되자마자 2~3배씩 갑자기 뛰어오른다. 이게 그냥 저평가된 주가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만 할까? 언제나 그렇듯이 설계자와 플레이어는 따로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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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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