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2011년 유시민, 2001년 노무현과 다른 길을 갈 것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2011년 유시민, 2001년 노무현과 다른 길을 갈 것인가?

[기고] 참여당이 계승하려는 '노무현 정신'은?

2001년 연말의 일이다.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를 뽑는 방안으로 국민참여경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제왕적 정당문화가 지배해온 한국정당사에서는 초유의 일이었다. 민주당 쇄신운동의 성과였다.

노무현 경선후보 캠프, 일명 금강캠프의 책임자였던 나는 노후보에게 시시각각 진행경과를 보고했다. 노 후보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인제를 제외한 다른 후보진영의 환영분위기와 각 진영이 제시하는 방안을 조소하기까지 했다. 노 후보가 누구보다 반길 것이라 예상했던 나로서는 사뭇 당혹스러웠다. 밖으로 드러내지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당의 쇄신과 당내 민주화는 대세였다. 민주당개혁특위는 개혁안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 국민참여경선제도가 탄생했다. 지금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당원으로 구성된 대의원 50%, 일반 국민선거인단 50%가 참여하는 전국순회경선으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기로 한 것이다. 나는 소식을 듣자마자 노 후보에게 보고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참여경선이 본인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해 받아들였을까? ⓒ연합

"고문님(당시 그는 민주당 상임 고문이었다), 드디어 우리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냉소를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윤 실장은 정치를 잘 몰라."

나는 그간의 논의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반응을 이미 알고 있는 터라 내차 질렀다.

"어차피 넘어야 할 벽입니다. 대의원들로만 치루는 경선보다는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 아닙니까?"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그의 냉철한 답이 돌아왔다.

"등산화와 향우회를 이길 수 있을 것같은가?"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시민사회와 노조 등 사회단체가 있습니다."

이렇게 대화가 끝난 후, 한 두 주가 지난 후였다. 노 후보와 나는 다시 단 둘이 마주앉았다.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윤 실장,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같아. 나도 모르게 옛날 정치방식에 사로잡혀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했어. 그래 윤 실장 말대로 우리에게 기회가 왔어. 한번 부딪혀 봅시다."

나는 감격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할 줄 아는 그의 솔직함에 한 번 감동했고, 작은 계산에 연연하지 않는 그의 대범함에 다시 감동했다. 그가 말대로, 오랜 시민운동 경험을 가졌을 뿐 정치에 대해서는 초보자에 불과한 나의 생각이 그가 보기에 비현실적인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돈과 인맥, 각종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한국정치에서, 더더구나 엄청난 대중을 동원해야 하는 국민참여경선에 당내 비주류인 노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현실론에만 매몰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민주당의 가치와 정통성을 올바로 계승한다면, 당원과 지지자들에 의해 정당하게 평가될 것이며, 집단적 지혜가 발휘될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대범함이 나중에 정몽준과의 단일화에서도 크게 빛을 발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뒤 금강캠프는 일사분란하게 경선을 준비했고, 결국 광주의 기적을 거쳐 위대한 승리를 만들어냈다.

지금 노무현을 계승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국민참여당이란 이름으로 모여있다. 야권의 분열은 아쉽지만 그들의 정치적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이 이번 김해보궐선거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는 아쉽기 짝이 없다. 노무현의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들은 특히 대통령 노무현을 탄생시킨 국민참여경선을 비판한다. 조직동원이 판을 칠 것이라 우려한다. 심지어 국민참여당의 일부 지지자들은 국민참여경선을 비민주적인 쓰레기같은 제도라 매도한다. 왜 그럴까? 오로지 경선방식의 유불리에만 매달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참여경선을 받아들인 것은 완벽한 제도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닐 것이다. 노무현은 '등산화와 향우회'가 위력을 떨칠 것을 알고 우려했지만 결국 국민참여경선에 뛰어들었다. 정치에서 지고지순의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정치는 최악을 피하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참여경선에 참가한 것은 내가 말했듯이 시민사회와 노조 등의 사회단체의 힘을 믿어서 그랬을까? 그것은 나처럼 순진한 사람의 몫일지 모르나 그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작은 계산에 연연해하지 않고 큰 원칙을 지키는 것이 크게 승리하는 길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이다. 대체 국민참여당이 계승한다고 말하는 노무현 정치의 요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의 정책인가, 그의 정치 스타일인가, 작은 것은 버리고 원칙을 지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큰 승리를 얻어내는 그의 천부적인 승부사적 역량인가, 아니면 그의 이름 뿐인가?

노무현과 유시민의 길은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김해에서 한 번 더 갈라지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