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발제를 맡은 최성은 전북대학교 겸임교수는 '공동체라디오 방송 활성화 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현재 미니FM 수준에 불과한 한국 공동체라디오의 현실을 지적하며 제3영역의 방송에 맞게 개념과 위상, 규정을 재정의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공동체라디오 활성화를 위해서 공동체라디오의 출력증강,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별도의 기금 마련과 방송통신발전지원기금을 통한 지원책 마련, 신규 허가 추진 등을 강조했다.
이어서 송덕호 마포FM 대표는 '공동체라디오진흥법안' 수정제안으로 발제를 진행했다. 공동체라디오 도입 취지인 '지역공동체 활성화, 지방자치 실현' 등을 구현하기 위해서 허가된 방송구역에 한해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허용하고 공동체라디오에 맞는 심의와 규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재원 확보를 위해서 방송광고 결합판매 관련조항을 공동체라디오진흥법안에 넣고 공동체라디오방송발전기금을 조성하여 공동체라디오의 제작지원, 신규 공동체라디오 설립과 기술개발 등에 쓸 수 있게 만들자고 말했다.
두 발제자 모두 공동체라디오가 기존 주류 미디어(공영방송, 민간상업방송)와 다른 공동체 기반, 사회적 이익, 비영리성의 특징을 가진 제3영역의 방송이기 때문에 그에 부합하는 공적지원이 필요하다는 일치된 결론으로 발제를 마무리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김경환 상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실적이고 단계적인 공동체라디오 활성화 방안을 이야기했다. 당장 신규 허가를 늘리는 것보다는 7개 공동체라디오방송사업자들을 어떻게 정상궤도에 올려놓을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면서 제작비지원 등 예산을 마련하는 긴급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때 특정사업자에 공적자금을 지원한다는 비판이 예상되기 때문에 법적인 제도 안에서 프로그램에 대한 개별적인 제작지원 형태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다.
공동체라디오의 출력증강과 공적지원, 보도기능 허용에 대해서 고낙준 방송통신위원회 지상파방송정책과장은 현행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을 몇 가지 언급했는데 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문제들이 먼저 해결되어야 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허가가 필요하며 시청자 참여프로그램 지원 예산을 공동체라디오에 배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보도방송 역시 공식적인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으로 끝을 맺었다.
국민의 열망과 시대적 요구 - 지금 내가 직접 말하는 민주주의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19일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으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이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70번에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 전략 중 하나로 '미디어의 건강한 발전'(방송통신위원회)이 포함돼 있고 주요내용으로 공동체라디오방송 확대가 명시되어 있다. 지난 겨울, 우리 사회는 들불처럼 타오른 촛불혁명을 통해서 국가권력과 국민 사이의 원활한 소통, 민주주의의 회복, 참여와 자치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실현, 적폐청산에 대한 범국민적인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공동체라디오방송 확대'가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반영된 것은 고무적이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공동체라디오는 '소출력 지역 FM 라디오 방송 신설‧확대'라는 이름으로 국정과제(1998년)에 포함이 되어있었고 그러던 것이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에서야 시범사업으로 결정되고 2006년 법제화를 거쳐 2009년에 전국 7개 공동체라디오 정규사업자가 선정되었다. 이 성적표는 2017년 현재도 마찬가지 상태다. 이렇듯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탓에 지난 10년간 공동체라디오는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어 활성화되지 못했고 그 정책과 제도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 공동체라디오의 반복되는 제자리걸음과 우리가 경험한 뼈아픈 민주주의의 후퇴를 결부시킨다면 무리일까? 장삼이사 지역주민들이 마이크 앞에서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전하고, 마을공동체 활성화와 주민자치, 주민참여의 기반을 닦으며 때론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고 동네의 민원을 공유하며 문제해결을 위해 마을 전체의 지혜를 모아 시민사회의 힘을 키워가는 것. 바로 공동체라디오의 모습이다. 공동체라디오는 특정한 누군가가 소유하지 않고 공동체가 직접 운영하고 만들어가는 방송이기 때문에 권력의 입맛에 따라 공영방송이 망가지고 세상의 소금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누구나 사회적 발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생활 속 민주주의의 학습과 실현을 위한 장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뒤로 미루지 않으며 지금 내가 직접 말할 수 있는 민주주의! 공동체라디오는 바로 그것이다.
공동체미디어에 뿌리를 둔 마을미디어
2012년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마을미디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 마을라디오도 그 활동이 시작되었다. 지난 5년 간 서울의 마을미디어는 서울 전역에서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며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마을미디어의 성장과 확장은 단순히 지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마을미디어 그 훨씬 이전, 누구나 미디어를 접하고 참여하는 미디어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하고 실행해 왔던 다양한 실험과 실천들이 있었으며, 이러한 토대가 마을미디어의 성장 동력이자 밑거름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전국 마을미디어 팔도유람 - ‘마을미디어 현황과 과제’, 김희영, 2014)
마을미디어의 뿌리는 공동체미디어에서 찾을 수 있고 그 중심에는 공동체라디오가 있다. 국내 최초 그리고 유일한 레즈비언 공중파 라디오 프로그램인 마포FM의 'L양장점', 사고 잦은 삼거리 횡단보도에 신호등을 달고 성서지역에 공공도서관을 만든 성서공동체FM의 '주민발언대', 두리반 철거, 아현 뉴타운 개발 반대 투쟁의 목소리를 방송으로 퍼트린 마포FM '송덕호의 쌈박시사' 같은 방송들은 1)공동체의 소유와 통제, 2)비영리적 커뮤니케이션 활동과 비영리적 운영, 3)사회적 서비스 제공이라는 공동체방송의 세 가지 특성을 잘 내포하고 있다.(마을공동체미디어 활성화방안 세미나 - 마을공동체미디어, 풀뿌리 정치의 학교와 광장, 이희랑, 2017)
이는 다른 영역의 방송에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공동체방송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미디어 역시 이러한 성격을 고스란히 이어가며 방송을 만들고 있다. 세계 유일의 봉제 미싱사 방송 창신동 라디오 덤의 '동대문 그 여자', 파킨슨병 환우들의 사연과 정보를 담은 가재울라듸오의 '라디오파킨슨사랑방', 성북동 가로수 지키기에서 시작하여 지역주민들의 공론장 역할을 한 와보숑과 성북마을TV, 용산화상경마장 반대 투쟁을 함께 한 용산FM의 '굿바이, 용산화상경마장', 지역주민이 찾아나서는 동작구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동작FM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 등 지역밀착형, 주민주도형 콘텐츠로 공동체방송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프로그램들이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제작되고 있다.
소통을 위한 라디오와 공공재인 주파수의 만남
2012년부터 서울을 비롯하여 수원, 원주, 전주, 부산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마을라디오는 지상파 주파수(*주4) 송출이 아닌 팟캐스트(*주5) 서비스(podcasting)를 기반으로 하여 시, 군, 구 단위에서 주민들이 직접 지역사회 행정, 복지, 이슈, 생활정보, 마을소식, 관심사 등을 주제로 개인이나 소모임 형태로 제작하는 오디오 위주 방송이다.(일부 '보이는 라디오'도 있음) 공동체라디오와 달리 마을라디오는 할당된 주파수가 없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유통한다. 때문에 PC나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방송을 들을 수 있다. 필자가 지역주민들을 만나 마을라디오인 동작FM을 홍보할 때 이런 상황을 자주 겪는다.
(*주파수란 전파가 다니는 길로 국가가 소유하고 관리한다. 국토처럼 국가가 갖고 있는 자원의 일종이라고 보면 된다. 전파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며 국경도 없이 공중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기 때문에 전파월경으로 인한 국가 간의 분쟁도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전파가 이용되기 시작한 이래, 전파의 분배와 관리는 국가가 도맡아왔다. 주파수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국가는 방송이나 통신 등 특정 목적을 가진 기관이나 사업자에게 그에 적합한 주파수 대역을 할당한다. 할당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전파 이용의 합목적성이며 방송통신 산업 외에 국방, 항공 등 다양한 산업에 쓰일 수 있다.
팟캐스트란 아이팟(iPod)의 pod와 방송(broadcast)의 cast가 합쳐진 단어. 스마트폰의 본격적인 등장 이전에 나왔던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MP3플레이어 iPod(애플社)이라는 기기와 전세계 수많은 미디어 파일을 유통/배급하는 iTunes라는 응용 프로그램을 통해서 개인들이 제작한 방송이 배포-구독되는 시스템. 팟캐스팅(Podcasting)은 인터넷을 통하여 사용자들이 원하는 미디어를 선택하여 정기적 혹은 새로운 내용이 올라올 때마다 자동으로 구독할 수 있다.)
#1
지역주민: 방송 듣고 싶은데 동작FM은 주파수가 어떻게 돼요?
필자: 저희는 주파수가 없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듣는 팟캐스트에요.
지역주민: 아… 앱을 깔아야하는구나. 운전하면서 한 번 들어보려고 했는데…
#2
지역주민: 방송 듣고 싶은데 동작FM은 주파수가 어떻게 돼요?
필자: 저희는 주파수가 없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듣는 팟캐스트에요.
지역주민: (주로 어르신의 경우) 아… 저는 스마트폰이 없는데… / (주로 청소년의 경우) 아… 저는 데이터가 별로 없는데…
#3
지역주민: 방송 듣고 싶은데 동작FM은 주파수가 어떻게 돼요?
필자: 저희는 주파수가 없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듣는 팟캐스트에요. 팟빵에서 '동작FM' 검색하면 나와요.
지역주민: 팟빵이 뭐에요? 팥빵인가요? 이거 회원가입이나 로그인해야 해요? 유료인가요? 어떻게 사용하는 거예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만 있으면 청취 가능한 팟캐스트의 장점도 있지만 위의 경우처럼 사람에 따라, 나이에 따라, 지식과 정보, 소유 정도에 따라 마을라디오에 대한 접근성이 제약되는 일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본인이 방송 게스트로 출연하고서도 스마트폰이 없고 인터넷을 쓰지 않아서 본인이 나온 방송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6년 현재 서울에는 신문, 영상, 사진, 잡지,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로 100여 개의 마을미디어가 활동 중이고 20개 정도의 마을라디오가 있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80여 개의 마을라디오가 활동하고 있고 다들 위와 같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누군가 계속 말하고 있지만 이것을 듣기 어려운 상황, 마을라디오에 대해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마을라디오와 주파수는 왜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을까? 둘은 해리와 샐리처럼 자연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의지로 만나고 헤어지고를 결정할 수는 없다. 마을라디오와 주파수, 둘 사이의 대화는 정책과 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제는 이 둘의 만남이 필요한지 않은지를 고민하고 선택하는 사회와 제도에 있다. 주파수는 마을라디오의 청취자 확대 측면에서도 필요하지만 현재 마을라디오가 직면하고 있는 음원저작권의 문제, 광고수입의 문제, 지역사회에서 매체영향력을 높이는 문제 등 여러 가지가 결부되어 있다. 공공재인 주파수가 공공성을 담보하는 방송과 만나는 것은 자기 존재의 중요한 역할이다. 둘의 만남으로 마을라디오는 매력적인 더 큰 존재로 성장할 수 있고 주파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며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공공재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마을라디오가 주파수를 만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함께 상상해 보자. 지난 4~5년 간 지역사회에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주민들의 자기표현과 소통, 지역의 공론장 형성에 큰 기폭제가 될 것이고 지난 촛불혁명에서 보았던 것처럼 잘못된 일에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예산이 잘 쓰이고 있는지 감시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청소년들은 방송에서 자유로운 발언자가 되고 어르신들은 인생이모작의 꿈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새 정부가 출범하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장애인도, 이주민도, 노동자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와야 정말 달라진 세상이 아닐까? 진정으로 국민의 시대를 열고,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싶다면 주저 없이 공동체라디오를 선택하고 마을라디오를 키워야 한다. 이것은 지방자치와 분권, 일상의 민주주의를 향한 시대적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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