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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왕국의 '臣民' 거부하는 '주권자'가 나서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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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왕국의 '臣民' 거부하는 '주권자'가 나서야 할 때"

[시론] 누가 이 재물신 '맘몬'의 목에 고삐를 채울 것인가?

2010년 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며 국민에게 훈계조 지시를 내려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그 자신은 '거짓말'하지 않는 '정직'한 사람인 반면 국민이 '거짓말'을 많이 하는 '부정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횡령·배임·탈세 등 각종의 중대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음을 분명히 알고 있을 터인데 왜 그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성스러운 '맘몬'이 된 시장권력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정치권력의 힘은 강하지만, 정치적 민주주의의 기본 틀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고 몇 년에 한 번씩은 선거를 통한 교체의 기회도 있다.

반면 민주화 이후 시장권력은 정치권력의 강압과 속박에서 벗어났음은 물론 이제 정치권력을 뒤에서 주무르고 있다.

국민에게 민주화는 선거권 등 정치적 기본권의 회복을 의미하였지만, 시장권력에게 민주화는 바로 자본축적과 증식의 고삐 풀린 자유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뉴시스

현재 시장권력은 정치·시민사회의 전면에 나서서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 배후에서 '수렴청정'을 하고 있다. 정치권력은 비판받고 교체되기도 하지만, 그 뒤에 턱 하니 자리 잡고 있는 시장권력은 자신에 대한 비판도 교체도 용납하지 않는 성스러운 '맘몬'이 되었다.

이 재물신 앞에서는 노무현도 이명박도 5년짜리 계약직 고용사장일 뿐이다. 2005년 5월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력 강화를 위한 대책회의에서, 그리고 2009년 발간된 유고집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권력, 즉 자본으로 넘어갔다는 현실진단을 내린 바 있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 막강한 권력은 세세손손 혈통을 따라 계승된다.

'오너'의 피가 섞이지 않는 사람이 경영권을 이어 받는 일은 극히 희소하다. 반면 그 피를 받은 사람 간의 암투는 '왕자의 난'(현대 그룹), '형제의 난'(두산 그룹) 등으로 표출된다.

'빨갱이'자리 대체한 '반기업'낙인

재벌이라는 혈연적 대기업집단이 고수하는 1인 중심의 의사결정과 전제적 경영구조, 불법적 경영권 승계와 세금포탈 등 각종의 범죄에 대한 비판은 나라 경제의 동력인 기업의 발목을 잡는 반경제적·반시장적 주장으로 매도당하기 일쑤이다.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는 '빨갱이'라는 호칭이 인생을 끝장내는 낙인이었다면, '기업사회'가 된 지금은 '반기업'이라는 낙인이 이를 대체하였다. 예컨대, 정·관·언론계는 "삼성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 "삼성이 망하면 한국도 망한다" 등의 주술을 서로 앞장서서 퍼뜨린다. 그리하여 삼성을 위시한 재벌을 비판하는 사람은 '매국노'가 되고 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지만, 이 민주공화국의 원리는 '삼성왕국'의 성벽 앞에서 멈춘다. 예컨대, 삼성의 불법이 드러나도 수사기관은 수사를 머뭇거리고 공소기관은 기소를 주저하며 법원은 '솜방망이 판결'을 내리며, 유죄판결이 나도 대통령은 특별사면을 해준다.

삼성생명은 손실이 날 경우 주주 외에 계약자도 부담을 지도록 운영하면서 성장해왔는데, 금융감독위원회는 생명보험사 상장시 계약자의 몫을 0으로 만드는 "대국민 사기극"(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을 벌여 삼성생명에게 조 단위의 선물을 안겨준다. 헌법은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만, 삼성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전에 노조는 안된다"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훈을 지키기 위하여 온갖 비판과 부작용을 감수하며 '무노조정책'을 유지한다.

사실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법과 윤리의 판단자는 군주이다. 따라서 '삼성왕국'의 왕인 이 회장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왜 수사를 받고 유죄판결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겪은 수모나 삼성에 대한 비판은 '부정직'한 국민의 '거짓말' 때문에 음해를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이 회장의 자신과 측근의 범죄와 관련하여 대국민사과를 하였지만, 흉중에는 "내가 이 나라를 다 먹여 살리는데"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삼성의 직원은 자신이 주는 녹봉으로 먹고 사는 '신하'일 뿐인데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왕'과 대등하게 교섭한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

외국 출장이나 여행을 갔을 때 삼성 등의 한국 대기업의 광고를 만나면 반갑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으면 뿌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즉자적·원초적 '애국심'에만 호소하고 한국 재벌체제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뜯어 고치지 않는다면 한국 기업이 국민적 존경을 받는 기업이 될 수 없음은 물론,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도 불가능하다.

부모 도움 없이 학교 졸업하고 해군 복무해야 하는 발렌베리

외국의 예를 보자. 스웨덴에는 5대째 세습경영을 하면서 일렉트로룩스, 에릭슨, ABB, 사브, 스카니아 등 세계적 기업을 거느리고 있고 총시가총액이 스웨덴 주식시장의 40%를 넘는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이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기업지배권을 보장받고 있지만, '황제경영'을 하지 않는다. 발렌베리의 자회사는 각각의 이사회 중심으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자회사의 경영은 거의 전적으로 전문경영인에게 일임되고, 사주 일가는 투자자로서 구조조정, 인수합병,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의 중요 사안에만 관여한다.

발렌베리 가문 사람으로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부모 도움 없이 명문대를 졸업할 것, 혼자 몸으로 해외유학을 마칠 것, 해군장교로 복무할 것 세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최고경영자가 된 발렌베리 일가 사람들은 보통 시민들과 어울려 사는 소탈한 생활방식을 유지한다. 그리고 발렌베리는 탈세나 분식회계를 하지 않으며 불법적 재산상속도 하지 않으며, 이익의 85%를 법인세로 납부하고 또한 공익재단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인다. 물론 발렌베리는 노동조합을 인정한다.

휴대전화 모토로라로 유명한 핀란드의 '노키아'(Nokia)도 자국에서 한국의 삼성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기업집단이다. 그런데 노키아에는 재벌 일가의 경영권 독점과 불법 세습이 없다. 또한 노키아는 투명한 지배구조와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핀란드 사회는 한국 사회가 부자를 대하는 것과 다르게 부자를 대한다.

예컨대, 핀란드는 소득에 높을수록 벌금을 많이 부과하는 '반(反)부자 제도'를 가지고 있다. 2002년 노키아 부사장 안시 반요키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시속 50km 제한도로에서 75km로 달리다가, 11만 6000유로(약 1억 6천만 원) 벌금형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부자를 괴롭히는 나라"라고 항의하는 부자는 찾기 힘들다. 핀란드에서는 기업범죄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집행을 하여 기업이 '접대비'를 비용으로 처리해도 형사처벌하니, 탈세나 분식회계는 상상하기 어렵다. 노키아도 여러 사업 분야에 발을 뻗고 있으나 한국 재벌과 같은 문어발 확장을 하지 않는다. 노키아에는 당연히 노동조합이 있다.

'자각'이 안되면 주권자들이 고삐를 채워야

발렌베리도 노키아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지금도 문제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 상황과 비교하면, 이러한 재벌 일가에게는 기업지배권을 주어도 '행복'할 것 같고, 이 일가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싶어진다.

과거 1995년 이 회장은 베이징에서 "기업은 이류, 공무원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삼성은 항상 세계일류 기업임을 자처한다. 그러나 이상의 예를 보면, 삼성이 도대체 몇 류인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총수 1인에 의존하는 삼성의 경영방식과 지배구조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삼성을 발렌베리나 노키아로 만드는 것은 삼성의 '자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실 2003년 이건희 회장은 발렌베리 그룹을 방문했지만, 학습효과는 전혀 없었다. 기업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 공정거래질서의 확립, 기업의 준법경영·사회책임 경영이 가능하려면 이를 법과 제도와 문화로 구현시킬 수 있는 정치세력·사회세력이 있어야만 한다.

만약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국민이 '먹고사니즘'에 빠져 있을 때 국민은 영원히 '삼성왕국'의 '신민'(臣民)일 뿐이다. 주권자가 맘몬의 목에 고삐를 채워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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