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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이동관은 '마사지'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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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이동관은 '마사지'를 몰랐다

[기자의 눈] "홍보의 출발은 진실"이라더니…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왜곡'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이 1일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을 찾았다. 김 대변인은 "죄송하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며칠 간의 마음고생을 반영하는 듯 부쩍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곧 김 대변인은 기자실을 떠났다. 파문이 일자 사의를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공식적인 사의표명은 없었다"고 밝힌 청와대도 김 대변인의 거취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감정적으로 격해져 이야기한 것들이 증폭돼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안일한 '청와대 홍보팀'

청와대는 '봉합'을 시도하고 있지만 의문점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우선 대통령이 해외 언론과 가진 인터뷰 내용을 실무자들이 큰 폭으로 수정해 발표하게 된 경위다.

이명박 대통령은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조만간이라고 이렇게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연내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발언을 "연내라도 안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수정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이 대통령이 외신과 가진 공식 인터뷰 내용이 국내 언론에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자 출신 수석과 기자 출신 대변인이 포진해 있는 현재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판단이라서 더욱 그렇다.

이어 이동관 홍보수석은 뜻밖의 해명도 덧붙였다. 이 수석은 "자칫하면 지금 뭔가 진행이 돼서 곧 정상회담이 될 것 같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마사지'를 하다보니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표현도 부적절했을뿐만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갖고 이 대통령의 발언을 수정했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과 김은혜 대변인. ⓒ뉴시스

이동관 수석 사전보고 받았나…"알아서 짐작하시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파문의 발단이 된 이 대통령의 BBC 인터뷰는 스위스 현지에서 이뤄졌고, 현장의 홍보라인 책임자는 분명 김은혜 대변인이었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이번 순방에 동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현장의 홍보라인 담당자로서 김은혜 대변인의 책임이 무겁다. 김 대변인이 "대통령이 피곤한 상태였고 발언의 여파가 클 수 있어 대통령에게 그 의미를 물어 보도자료를 작성했다"고 설명한 대목도 적절치 못한 해명이었다. 대통령의 발언만 정확히 전달하면 아무 탈 없었을 일을 저지르고도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핑계삼았기 때문이다.

이동관 홍보수석도 이 대통령 발언의 '변조' 이전 시점에 보고가 있었다면 책임을 면키 어렵다. 이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 수석은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 알아서 짐작하시라"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이 수석은 다만 "경위가 어떻든 제가 책임자니까 정말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미안하다"는 사과로 에둘러갔다. 청와대 다른 관계자들도 이 수석이 사전에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극도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안팎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을 이처럼 '마사지'하는 과정이 김은혜 대변인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이 수석이 의심을 사는 이유 중에는 그가 행한 '전력'이 이번 일로 되새김질된 탓도 있다. 이동관 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첫해 '독도'에 대한 부시 전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과 다르게 부풀린 '허위 브리핑' 파문, 삼성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인사들의 명단이 발표되기도 전에 '사실무근'을 선언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파문의 당사자다.

또 지난해 4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에서 이 수석은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비해)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안을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지만, 백악관 발표에는 이같은 내용이 없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달 28일 지병으로 별세한 권종락 전 외교통상부차관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제재 결의안'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당시 국내 보수진영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무리한 브리핑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홍보의 출발점은 진실"이라더니

국내 언론의 대(對) 청와대 취재는 상당 부분 청와대 관계자들의 '입'에 의존한다. 기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일부의 공개행사를 제외하면, 대통령의 발언 역시 청와대 측이 배포하는 자료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공식적인 인터뷰 발언을, 그것도 남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입맛대로 '마사지'해 전달했다. 그러고도 청와대는 "일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식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같은 '보이지 않는 왜곡'이 얼마나 더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임자에 비해 공개적인 논쟁을 극도로 피하는 이 대통령이기에 의구심은 더욱 커진다. 이렇게 무너진 신뢰는 좀처럼 회복되기 어렵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동아일보> 논설위원 시절인 지난 2005년 '선전과 홍보'라는 제목의 기명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이 썼다.

"선전은 특정한 정치 목적에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감정에 호소하고 필요하면 거짓말도 동원하는 부정적 방식이다. 반면 현대 민주국가에서 말하는 홍보는 정확한 정보 제공을 통해 호의적 여론을 조성한다는 긍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중략)…조기숙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며 경제를 챙긴다는 이미지 만들기에 거부감을 보인다'며 '홍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참여정부는 아무래도 선전과 홍보를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홍보의 출발점은 진실이다."

과연 '홍보수석 이동관'은 "홍보의 출발점은 진실"이라고 한 '기자 이동관' 시절을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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