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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틀어막는 게 '화합'인가?

[기자의 눈] 李대통령, 생전에 못다한 '예우' 이제라도 실천하기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돌연한 서거에 이명박 대통령은 즉각 애도를 표했다. 노 전 대통령이 생을 마감한 날인 지난 23일 이동관 대변인이 대신 전한 이 대통령의 언급은 다음과 같았다.

"참으로 믿기 어렵다.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

"전직 대통령 예우하라"는데 경찰은 왜?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온통 '예우'에 어긋나는 일들 투성이다. 경찰은 몰상식하다. 서울 대한문 앞에 자발적으로 마련된 빈소가 이내 경찰병력에 의해 통제됐고, 천막도 철거됐다. 거센 몸싸움이 벌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분향 자체를 완전히 금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에 꽃 한송이 놓으려던 시민들은 빼곡하게 들어찬 전경 차량과 경찰병력을 먼저 통과해야 했다. 분향소 주변에는 물대포까지 배치되기도 했다.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경찰버스로 둘러싸 아늑하다는 반응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덕수궁 대한문 앞의 시민 분향소에 대해 "영결식 이후에도 계속된다면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것을 검토하겠다"면서 '진압'을 경고하기도 했다.

비난이 빗발치자 경찰이 대한문 앞의 경찰병력을 부분 철수시키긴 했지만, 이미 민심은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뒤다. 서울광장에 대한 '원천봉쇄'도 계속되고 있다. 영결식 이후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치르겠다는 봉하마을 측의 요청에 대해서도 정부는 마뜩치 않은 눈치다.

정부가 전국 각지에 설치한 공식 분향소를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분향소는 그 규모나 의전 등에 있어 "무성의하다", "초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다수의 조문객들은 정부가 마련한 공식 분향소보다 서너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대한문 분향소를 찾는다. 정부에 대한 분노, 관이 주도하는 추모에 대한 거부의 메시지다.

광장을 허하라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고인의 뜻을 받들어 국민이 화합하고 단합해서,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이 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하는 나라로서 노력하는 게 우리의 몫"이라고 했다. 대변인을 통해 전한 첫 반응을 제외하면, 이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이 대통령이 밝힌 첫 공개적인 언급이었다.

▲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EU 공동 기자회견 도중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이 대통령.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위기극복을 위한 '화합'과 '단합'이 '고인의 뜻'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괜한 정쟁과 편가르기, 사회적 갈등을 고인이 원한 바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전 정권을 담당한 대통령의 죽음 앞에 화합을 위한 성의는 현 정권이 먼저 보이는 게 순서다. 국민들은 경찰 병력으로 분향소를 꽁꽁 틀어막고 광장을 봉쇄하는 게 화합의 손길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선 이 대통령의 '광장 공포증'을 의심하기도 한다. 추모의 촛불이 반MB 촛불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광장 봉쇄의 심리적 연원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미 주상용 경찰청장은 공식 영결식 이후에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분향 행렬이 이어진다면 "다른 시각에서 검토하겠다"며 강경진압의 엄포를 놓았다.

광장과 촛불이 걱정이라면 광장을 여는 게 걱정을 더는 지름길이다. 국민들이 고인을 마음껏 애도하고 슬퍼하며 가슴에 남은 응어리를 풀어야 화합도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직 대통령을 잘 모시겠다"던 이 대통령이 고인의 생전에 행하지 못한 '예우'를 뒤늦게나마 실천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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