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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에 못 가도 박태환은 박태환입니다"

[최동호의 스포츠당] 박태환 선수에게 보내는 편지

요 며칠 하늘이 파랗습니다. 같이 걸었으면 합니다. 이왕이면 제가 가끔 가는 사찰이면 좋겠습니다. 이따금 새소리만 들릴 뿐 고요합니다. 저는 붉게 핀 진달래를 좋아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석탑도 좋아하죠. 걷다 보면 평화로워집니다. 함께 걷고 싶습니다. 다 버리고 조금만 같이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겐 리우 올림픽 못 가도 박태환은 박태환입니다. 리우에서 메달을 따야만 박태환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이뤄놓은 게 많은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어쩌면 강박에 시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이니까, 명예를 회복해야 하니까, 내가 사는 길은 올림픽밖에 없으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메달만이 명예 회복은 아닙니다. 올림픽만이 살길은 더더욱 아닙니다. 성취와 성공에 환호한 만큼이나 팬들은 페어플레이와 정정당당함에 목말라 있습니다.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보겠습니다. '수영 선수 박태환'이 아니라 '인간 박태환'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스타들은 대개 갇혀 지냅니다. 운동 시작하면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됩니다. 스타로 떠오른 순간부턴 진실한 사람을 만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박태환이라는 이름과 인기를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겠죠. 아마 조금은 느꼈으리라고 봅니다. 2014년 도핑 양성 반응,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로마 쇼크' 로 추락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박태환 선수 곁에 진실한 사람, '수영 선수 박태환'이 아니라 '인간 박태환'을 걱정하고 말해주는 분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올림픽도 결국 한순간입니다. 인기와 명성도 언젠간 지나갑니다. 적지 않은 스포츠 스타들이 선수가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미숙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포츠 영웅을 많이 잃었습니다. 박태환 선수도 언젠간 인기와 명성을 내려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 박태환'으로서 먼저 당당해야 합니다. 아니 당당해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4월 6일 스포츠 공정위원회의 결정 직후 계속 말이 바뀌었습니다. "악법도 법이다. 체육회 결정에 따르겠다"는 말이 동아 대회에선 "국민 여러분께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 같다. 내 손에선 끝났다"로 변했고 5월 2일 기자회견에선 "국가에 봉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달라"고 말했습니다. 무릎까지 꿇은 그 모습. 우리의 영웅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스포츠 공정위원회의 결정은 규정을 지키자는 겁니다. 박태환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선 규정을 바꿔야 합니다. 이중 처벌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중 처벌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박태환이니까 규정을 바꿔줘야 한다는 생각을 끝까지 놓을 수 없습니까? 지금 당장은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 되돌아본다면 긴 인생에서 리우 올림픽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잘못한 이후가 중요합니다. 진정한 반성과 자숙이었다면 올림픽에 매달리는 모습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인간 박태환'으로서 훌쩍 더 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리우 올림픽 출전을 위해 애쓰는 박태환이 아니라 반도핑 홍보 대사로 스포츠 정신을 알리는 박태환이 되면 어떨까요?

"수영 선수이니까 수영밖에 몰랐다"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들은 그 말에 회한을 느낍니다. 후배들에겐 멍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영 선수는 성적이나 결과로 보여준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나길 바랍니다. 운동선수는 운동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운동선수도 인격과 지성을 함께 갖춘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가끔 다양한 사람을 만나 낯선 길을 걸어보길 바랍니다. 수영이라는 세계에서, 스포츠란 세계에서 벗어나 세상의 진짜 모습을 많이 보고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수영을 통해 인내와 도전을 배웠으니 다른 무엇을 해도 잘할 거로 생각합니다. 메달리스트 박태환 만큼이나 멋진 인간 박태환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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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YTN 보도국 스포츠부 기자를 시작으로 IB스포츠 신사업개발팀장을 역임했다. 현재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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