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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자치 없었으면 DJ·노무현 대통령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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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방 자치 없었으면 DJ·노무현 대통령도 없었다"

[1995+20, 풀뿌리 리더십을 찾다] ④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올해로 민선 지방 자치제가 20주년을 맞는다. 지난 1995년 6월 27일 첫 지방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출됐다. 이들 단체장의 임기가 시작된 1995년 7월 1일을 온전한 지방 자치의 출발일로 삼는다면 올해가 꼭 20주년째가 된다.

지난 6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중앙 정부의 리더십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에서 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모습을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보여주면서 지방 자치의 존재와 의미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우리 정치의 희망을 보여주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을 만나 자치와 분권의 현실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1995+20, 풀뿌리 리더십을 찾다' 네 번째 주인공은 문석진 서울시 서대문구청장이다.

문석진 구청장은 지방 자치 20년을 오롯이 현장에서 보낸 산 증인이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부활한 1991년 지방 선거 때, '월급쟁이'로 다니던 회사에 휴가를 내고 서울시의회 의원 후보로 나간 게 처음이다. 첫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고, 다음날 새벽 넥타이를 매고 곧바로 회사로 출근했다. 아련한 실패의 기억이다.

부침은 있었지만, 그 덕분일까. 지역에서 시작한 문 구청장의 정치 생활은 철저한 '풀뿌리 지향'으로 다져졌다. 문 구청장은 장애인도 오를 수 있는 등산로인 '자락길' 조성, 독립 지사와 민주 인사들이 홀대받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서대문독립민주축제,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 '100가정 보듬기 사업' 등을 펼치며 구민의 신뢰를 얻었다.

하지만 풀뿌리 행정이 중앙 정치와 잘 이어지느냐는 질문에 문 구청장은 "중앙 정치가 지방 자치를 폄훼한다"고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문 구청장은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계파 갈등을 놓고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통합해야 할 때 분열하고 쪼개지면 국민이 신뢰하겠느냐는 것이다. 문 구청장은 "지방 자치 덕분에 그나마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이 나왔다"면서 "이제는 지방이 중앙을 바꿀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6일 서대문구청에서 강양구 편집부국장이 진행했다. 정리는 김윤나영 기자가 맡았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프레시안(최형락)

"직장 휴가 내고 첫 지방 선거 출마해"

프레시안 : 정치에 입문한 계기를 듣고 싶다. 민선 5기에 이어 6기까지 5년째 서대문구를 맡고 계신다. 그동안 구정을 돌이켜본다면?

문석진 : 나는 민주화 이후 지방 자치가 부활한 1991년부터 지금까지 25년간의 지방 선거에 다 참여했다.

돌아보면 바닥부터 시작했다. 처음에 시의원 선거가 뭔지도 모르고, 직장 생활하는 동안 20일 휴가를 받아서 나갔다. 아쉽게 선거에서 떨어지고, 개표 결과를 새벽에 보고 다음 날 옷 갈아입고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나처럼 선거 치른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내가 35세였다.

지방 자치 역사 20년 동안 우리 주민 삶에 지방 자치 개념을 심어줬다고 자부한다. 지방 자치단체를 통해 주민과 밀착된 행정을 했다.

예를 들어 서대문구에 안산(鞍山)이 있는데, 그 산에 휠체어와 유모차가 갈 수 있는 '자락길'을 만들었다. 장애인도 숲 속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착안했다. 계단을 없애고 길을 지그재그로 만들어 2시간 30분 동안 산 한 바퀴를 빙 돌게 했다. 주말에는 젊은 부부들이 유모차를 끌고 오고, 휠체어 타신 장애인도 자주 온다.

"기초 의원은 저질?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 폄훼해"

프레시안 : '풀뿌리 행정', '주민 밀착형' 행정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행정을 위해서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

문석진 : 중앙 정부는 여전히 중앙 집권적인 사고에서 안 바뀐다. 지방 정부를 지방자치'단체'라고 부른다. 지방 정부 수장을 시민단체처럼 '단체장'이라고 부르는 곳은 일본과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권도 지방 자치를 너무 폄훼해왔다. 저 사람은 '구의원 출신', '시의원 출신'이라는 식으로 낮춰서 본다. 최근 기초의회 폐지론이 나오는 것도 '저 질 낮은 사람들 둬서 뭐하느냐'는 생각이 바탕에 깔렸다.

하지만 구의원, 시의원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시 효과가 있다. 제도가 있으니 구청에서 업무 보고, 감사, 결산, 예산 심의를 하지 않나. 기본적인 견제 기능이 있는 지방 의회를 폄하해선 안 된다. 설사 질 낮은 지방 의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은 공동으로 져야 한다. 우선 국회의원이 문제다. 국회의원들은 지방 의원을 선거 운동원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시민사회가 이런 구조를 깨고자 참여해야 하는데, 안 한다.

일부 지방 의원이 요구하는 '광역 의원 보좌관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물론 보좌관을 두면 비용이 들겠지만, 그보다는 집행부에 대한 감시 기능이 훨씬 클 것이다. 비용 효율을 따지는 논리대로라면 국회의원 보좌관도 없애야 하지 않나? 모든 것을 효율로 따지는 정부 행태는 독재다. 중앙 정부는 그런 실수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자기 아버지처럼 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게 무슨 민주주의이겠나.

ⓒ프레시안(최형락)

"새정치민주연합 계파 갈등 접는 데 지방 자치가 앞장서야"

프레시안 : 한국 정치는 답답하다. 획기적인 모습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한국 정치가 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가장 필요할까.

문석진 : 야당이라도 잘해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대로 친노/비노로 나뉘어 싸운다. 실제로 친노/비노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런 프레임 속에 걸리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자꾸 쪼개지면 잘 되겠나?

이런 상황에서 지방 자치의 역할도 크다. 국가가 이렇게 엉망인데도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은,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래도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장도 좋은 어젠다를 발굴하고, 각 지방 정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회의원보다 성실하게 현장 속에서 주민과 일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이 현장에서 가지고 있는 신뢰를 바탕으로 힘을 모아가야 한다. 분열하고 쪼개지려 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통합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제는 지방이 중앙을 바꿀 때가 됐다. 지방 자치 덕분에 그나마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이 나온 것이다. 만약 지방 자치가 없었다면 무슨 재주로 우리가 정권 교체를 할 수 있겠나?

"송파 세 모녀 사건, 서대문구라면 안 일어났다"

프레시안 : 복지 정책에 대해 묻겠다. 서대문구는 복지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발굴·지원하기 위해 올해 3월 복지 방문 지도 시스템을 개발했다. 또 지난 2013년에는 복지 사각지대를 전수 조사했다. 그 경위를 알려 달라.

ⓒ프레시안(최형락)
문석진 :
이전부터 복지에 관심이 많아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사례를 참고했다. 호주에서는 주민이 주민 센터에서 특정 복지 지원 부서를 찾는 식이 아니다. 주민이 자기 문제를 얘기하면 복지 담당자가 그 주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다 연결해준다. 그래서 우리도 주민 맞춤형 서비스를 동 단위에서 시도했다. 동의 행정 기능을 구로 이관시키고 동장이나 행정직 직원에게 복지 업무를 맡겼다.

동장들이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어려운 이웃을 찾아 후원하려는 종교단체, 개인, 법인과 연결해 한 명당 매월 30만 원을 지원하는 '100가정 보듬기 사업'을 했다. 보통 이런 단체의 후원이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을 '눈에 보이는 이웃'을 지속적으로 돕는 후원으로 유도한 것이다.

물론 이런 사업을 놓고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최선은 증세를 해서 그렇게 복지가 필요한 이웃을 중앙, 지방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증세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많은 없지 않나? 현실이 요원하니 일단 사회 연대의 힘으로 복지 제도를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지난 5월 대상자가 300호까지 나왔다. '찾아가는 복지'를 했더니, 동이 활력이 되고 복지 모델도 어느 정도 정착됐다.

이 제도를 안착시키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러니 수도·전기·가스 요금 체납자 리스트를 찾는 식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기법이 생기더라.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보건복지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복지 사각지대 전수 조사를 하라고 했다. 서대문구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이미 각 동마다 전수 조사를 했다. 서대문구는 복지부가 모범 사례로 꼽기도 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서대문구라면 안 일어났을 것이다.

"복지는 퍼주기가 아니라 국가의 존재 이유"

프레시안 : 문 구청장이 말하는 '복지 철학'은 어떤 것인가.

문석진 : 복지라는 개념은 '퍼주기', '포퓰리즘'이 아니라, 행정의 목표다. 나는 국가의 목표는 복지 국가 건설이라고 본다.

스웨덴 모델을 얘기하면, 많은 사람이 스웨덴은 우리와 조건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복지 국가 모델을 실현해서 우리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우리 정치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목표로 하는 그러한 모델이 없으면 정치는 왜 하나?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증세 논쟁에서 이겨야 한다. 나는 증세를 한 번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얘기하는 중부담-중복지를 하기 위해서라도, 1년에 1%씩만 올리면 20년이면 20%가 쌓인다. 만약 그조차 못 올리겠다면 1년에 0.5%라도 올리자. 거기에 맞는 복지를 해나가면 된다. 이런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20년이 지나면 고부담-고복지가 될 것이다. 점진적으로 복지 국가에 다가서야 한다.

프레시안 : 메르스 대응에서도 정부가 이윤만 추구하다가 사태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석진 : 정부가 의료를 병원 산업·영리적 관점에서 보니 문제다. 이윤을 내는 데는 도가 튼 삼성이면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걸 이번 메르스 사태가 보여줬다. 그 교훈은 공공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가치를 경제, 산업으로만 환치시킬 수 없다.

가난한 독립지사 어르신 "평생 오늘만큼 예우받은 날 없어"

프레시안 : 서대문구는 문화 예술 사업과 관련해서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밖에 다양한 문화 예술 사업에 대한 비전이 있나?

문석진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구 단위에서는 도저히 유지할 수 없는 박물관이다. 그런데 서대문구의 지원, 이정모 관장의 열정, 박물관 직원의 헌신이 어우러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 문화를 선도하는 특색 있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박물관을 가지고 있는 서대문구민의 자부심도 높다.

많은 지방에서 특산물을 내세우며 축제를 한다. 그런데 축제를 꼭 특산물로만 할 필요는 없다. 우리 역사를 가지고 하는 것도 축제다. 처음에는 독립 지사와 민주 인사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모셔서 발자국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리우드에서 핑거 프린팅을 하듯이 우리는 2010년부터 '풋 프린팅' 축제를 만들었다.

특히 생존 독립인사 중에 가장 고령이셨던 이병호 독립유공자협회 전 회장님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구 직원이 댁에서 모셔 와서 행사가 끝날 때 돌보다가 다시 모셔다 드렸다. 이병호 선생님이 "평생 오늘만큼 예우 받은 날은 없다"고 하시더라. 그 얘기를 듣고 오히려 나는 슬펐다. 독립을 위해 애쓰셨고 감옥에서 고생하신 분인데, 우리 사회가 그동안 이분들을 너무 예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대문구, 교육 도시로 만들 것"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문 청장의 공약에 눈길이 가는 것이 있다. 경제 부분 공약에 협동조합 100개 설립, 마을 기업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이 있는데, <프레시안>도 협동조합이다. 현재 협동조합 설립 지원 사업 등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문석진 : 서대문구에 협동조합이 88개다. 올해(2015년) 말까지 100개 만드는 것이 목표다. 협동조합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볼로냐, 스페인의 몬드라곤에 다녀와서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3개국 협동조합 관계자들을 초대해 성공회대와 서대문구청이 첫 협동조합 심포지엄도 했다.

최근에는 서울시와 구청들이 공공 조달에 사회적 기업을 우대하는 내용의 협약도 체결했다. 우리 구는 청사 청소를 사회적 기업에 맡기고 있다. 청사에서 청소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대신에 그 몫을 지역의 사회적 기업에 이전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 비용을 절감하려고 청소 노동을 저임금의 하청을 주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프레시안 :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문 청장이 꿈꾸는 서대문구는 어떤 모습인가? 서대문구의 미래와 목표가 무엇인가?

문석진 : 서대문구를 '교육 도시'로 만들고 싶다. 서대문구는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가 있는 대학 도시다. 그래서 연세대학교 앞의 '연세로'도 '대학로'로 만드는 중이다. 현재는 연세로가 주말에만 차 없는 거리이지만 앞으로는 완전히 차 없는 거리, 문화 광장을 만들려고 한다.

서대문구를 민주주의 교육, 자치 공동체, 민간 거버넌스가 잘 작동하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 서대문구가 문화적 측면, 공동체 측면 또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된, 서울 또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지역 공동체의 상징이 되었으면 한다. 갈 길이 멀다. 앞으로도 서대문 구민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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