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3년, <조선일보>를 선두로 한 보수언론이 갖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에서 안겨준 '종합편성채널'(종편)까지 등에 업은 '조중동'의 여론 주도력은 더 커졌는지도 모른다. 보수정권과 보수언론의 공생관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소위 '잃어버린 10년' 정도로는 끊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안티조선운동'을 비롯한 언론개혁운동의 성과로 많은 이들이 조중동이 때론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왜곡·과장보도'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종편까지 가세한 데다 또 다른 보수정권이라는 든든한 정치적 백까지 확보한 이들의 거침없는 행보를 어느새 당연시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언론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프레시안>이 첫 편집국 개편을 맞아 '오늘의 조중동'이라는 코너를 신설한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진영 논리를 동원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합리적 비판'이야말로 '소통'의 기본 전제 중 하나다. '오늘의 조중동'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발행될 예정이다. <편집자주>
여전히 '이석기 녹취록'이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다. 양파껍질 식으로 추가 녹취록 내용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신이 난 건 보수언론이다. 다수의 지면을 할애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그가 속한 당, 그리고 한국사회 내 친북인사들을 겨냥하고 있다. 3일 자 신문에는 전날 법무부에서 국회에 전달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내용이 머리기사였다.
<조선일보>는 1면 '김일성의 한자루 권총론 꺼냈던 이석기'라는 기사를 통해 체포동의안 속에 등장하는 추가 녹취록을 보도했다. <조선>은 5월 1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가진 강연회에서 이 의원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자루 권총'이란 사상"이라며 "이 한 자루 권총이 수만 자루의 핵폭탄보다 더한 가치가 있고 핵무기보다 더한 것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한자루 권총'은 북한 김일성이 아버지 김형직으로부터 두 자루 권총 중 한자루를 김정일에게 주면서 혁명 투쟁을 완성하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조선>은 이 의원의 발언은 김일성의 유업을 수행하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 문재인 의원. ⓒ프레시안 |
보수언론, 연일 '이석기' 때리기
3면에서는 이석기 의원이 어떻게 제도권, 즉 국회까지 입성했는지를 세세하게 분석했다. <조선>은 이 의원이 지역 좌파단체를 장악한 후 계획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뒤, 통합진보당 당권까지 거머쥐며 작년 총선 때 국회에 입성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속한 것으로 알려진 RO(혁명조직)도 2010년 지방선거 때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RO 조직원들이 민주당에 후보를 양보하는 대가로 경기 지역 지자체 산하기관이나 협력기관, 사회적 기업 등에 다수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이렇게 단계적으로 제도권에 침투하는 전략은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밀 침투 후 타 세력과 연대하는 방식을 통해 하부 조직단위에서부터 야금야금 장악한 뒤 종국엔 국가기관에까지 입성하는 전략을 썼다는 것.
4면과 5면에서는 RO가 어떤 조직이고 어떻게 운영됐는지, 북과 연계 여부 등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중앙일보>도 1면 머리기사 '이석기, 국회를 혁명 교두보 삼았다', 2면 'RO 세포 모임서 "장군님 지키는 게 조국을 지키는 것", 3면 '이석기 "결정적 시기왔다" 전쟁대비 3대 지침 하달', 4면 'RO 조직원들 '북 잠수함 지원방안 준비' e메일 교환' 등을 통해 꼼꼼하게 이번 사태를 보도했다. 이는 <동아일보>도 대동소이했다.
문재인 겨냥한 <조선>
보수언론이 다들 비슷하게 '이석기 녹취록'을 보도했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조선>이 6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문재인 '이석기 체포안 전 단계'서 기권 논란'이다. <조선>은 이 기사를 통해 2일 열린 정기국회 회기를 정하는 표결에서 문재인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회기가 확정되어야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찬반 표결을 위한 본회의 일정이 확정된다. 그렇기에 회가 확정 표결에서 무효를 던진 것은 사실상 반대 의미라는 것.
<조선>은 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의 말을 빌려 문재인 의원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이석기 의원이 사면, 복권됐다며 대통령까지 출마한 사람으로서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기권했다고 비판했다.
이석기 의원은 1992년 결성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에서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정부 건설을 목적으로한다'는 강령 아래 경기남부위원장으로 활동하다 1999년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됐다. 이후 도피 끝에 2002년 검거됐다가 2003년 3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 해 8월, 노무현 정부 때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됐고 2년 후 이 의원은 광복절 특별복권 대상자로 선정돼 피선거권까지 회복했다. 그때 문재인 의원은 대통령실 민정수석 비서관이었다.
<조선>은 '이석기 녹취록' 사태에는 이 의원을 사면해준 문재인 의원에게도 책임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보도를 보면 <조선>은 이번 사태를 이석기 의원, 그리고 RO, 통합진보당에만 국한하지는 않을 듯하다. 민주당이 애써 이번 사태와 선 긋기에 나섰지만 앞으로 어디까지 사태가 커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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