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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주니어 스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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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주니어 스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최동호의 스포츠당] 학원 스포츠 성적주의 버려야

전영오픈테니스선수권대회(All England Tennis Championship). 개최지명을 딴 '윔블던 테니스 대회'로 더 잘 알려진 대회다. 1877년 1회 대회 이후 136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세계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이기도 하다.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졌던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유망주 정현(17. 삼일공고)이 주니어 남자 단식 준우승을 차지했다. 쾌거다. 그러나 정현의 준우승 소식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 윔블던 테니스 대회 주니어 남자 단식에서 준우승한 정현. ⓒ연합뉴스
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단식 준우승 전미라, 95년 호주오픈 주니어 남자단식 준우승 이종민, 2005년 호주오픈 주니어 남자단식 준우승 김선용. 이들은 시니어 무대에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좌절했다. 테니스뿐만이 아니다. 농구에서도 야구에서도 축구에서도 천재 소리를 들었던 수많은 주니어 스타들이 시니어 무대에서 빛을 잃고 사라졌다. 개인종목은 유망주를 육성하는 스타 시스템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단체종목은'메뚜기도 한 철'식이었다. 이참에 함께 대학가고 팀 성적 올리겠다고 몸이 망가지도록 천재를 혹사시켰다. 어른들의 탐욕과 무지로 수많은 주니어 스타들이 그라운드에서, 코트에서, 체육관에서 사라졌다.

청소년기부터 성적, 승리 위주로 훈련
…지도자들도 계약직 신분으로 단기 성적에 급급

국제무대에서 한국 스포츠는 시니어보다 주니어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한국 야구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5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쿠바(11회) 다음으로 많은 우승 횟수다. 축구는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83년 멕시코 대회 4강, 2009년 이집트 대회 이후 3회 연속 16강 진출을 일궈냈다. 기타 구기종목이나 개인종목에서도 한국은 시니어보다 주니어들의 성적이 두드러진다.

주니어 때 잘했으니 시니어가 돼서도 반드시 잘 해야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월드클래스에 올랐던 한국의 주니어 유망주들이 유독 시니어 무대에서 성장을 멈추는 것은 괴이한 현상이 아닐까? U-20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한 이광종 감독은 학교 체육의 구조적 문제에서 원인을 찾는다. "학원 스포츠의 환경이 그렇다. 성적 위주여서 기술적인 부분을 등한시하는 게 있다. 바뀌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훈련이나 가르침보다는 눈앞의 성적을 내는데 급급하다는 얘기이다.

눈 앞의 성적에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프로팀에 가기 위해서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 성적이 중요하다보니 탄탄한 기본기와 기초체력보다 이기기 위한 잔기술에 주력한다는 뜻이다. 단체종목 선수들은 팀 전술에 부응하는 부품화된 선수로 길러진다. 조직화된 플레이에 맞춰지다 보니 공격수도 수비수도 특정 임무에 특화된 반쪽짜리 선수로 성장한다. 팀 전술에 특화된 선수들의 조합이 완성되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조합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하위권으로 추락하는 것이 한국 스포츠의 현실이다. 개인종목 역시 포인트 위주의 기술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창의성 없이 기능화된 플레이. 주니어에서 반짝하는 한국스포츠의 현실이자 한계이다.

초중고 일선의 코치들도 기본기와 기초체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알면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일선코치들의 답답함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1년 계약직 신분. 지금 당장 성적을 내지 못하면 실업자가 되야하는 신세이다. 학교에서 받는 정식 급여는 월 150만~200만 원 수준이다. 학부모들이 회비를 각출해 코치의 실질 급여를 지급하는 현실에서 미래를 위한 탄탄한 기본기와 기초체력 습득이 가능할까?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경쟁과 압박 속에서 운동을 해온 선수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도 장기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다. 세계랭킹 57위까지 오르며 90년대 한국 테니스를 대표했던 박성희 국민대 교수는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 초‧중‧고등학교까지는 시키니까 하는 게 가능하지만 시니어에선 선수 스스로가 운동에 대한 동기 부여를 가져야 한다. 엄청난 경쟁과 압박을 겪으며 성장해 온 선수들이 스스로 동기 부여를 갖지 못하면 성인이 된 후에 심리적으로 방황하게 된다"고 말한다. 기본기와 멘탈을 잃어버린 선수들이 잔기술과 기능으로 버티는 한계가 20세를 전후한 주니어까지라는 것을 한국스포츠는 여실히 보여준다.

13⅔이닝동안 242개의 공을 던진 고교 투수
…끊임없이 반복되는 에이스 잔혹사

2006년 대통령배고교야구대회에서 정영일(광주 진흥고)은 이틀간 이어진 연장 16회 접전에서 13⅔이닝동안 242개의 공을 던졌다. 그해 정영일은 LA 에인절스와 계약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팔꿈치 이상으로 인대 교체수술을 받고 방출당했다. 같은 해 김광현(SK. 당시 안산공고)은 청룡기고교야구대회에서 이틀간의 연장 15회 접전동안 226개의 공을 던졌다. 김광현 역시 어깨통증을 겪으며 재활과정을 겪어야 했다. 한국 야구의 미래라고 기대를 모았던 정영일, 김광현의 부상과 부진이 고교시절 혹사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 2006년 미국 메이저리그 LA에인절스와 입단 조인식을 맺던 당시의 정영일 선수. ⓒ연합뉴스

야구의 경우 고교와 대학시절 유망주라 불리웠던 에이스 가운데 부상을 당하지 않은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를 거칠 정도의 선수라면 예외 없이 부상과 수술, 재활이란 통과의례를 거친다. 재활에 성공한 선수들은 시차를 두고 프로에 적응하고 재활에 실패한 선수는 이름 없이 사라질 뿐이다. 주니어 시절 혹사당한 후유증으로 프로무대에서 사라진 유망주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고교 에이스들의 혹사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5월 황금사자기 16강전에선 이수민(상원고)이 9⅔이닝동안 178개의 공을 던져 혹사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수민은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7경기에 등판해 974개의 공을 뿌렸다. 그중 6경기가 완투였다.

한국 테니스엔 모처럼 부흥의 징조가 보인다. 윔블던 주니어대회에서 준우승한 정현 외에도 청각 장애를 극복한 이덕희(15. 제천동중)가 남자프로테니스(ATP)랭킹에 이름을 올렸다. 정윤성(15. 대곶중)은 지난 6월 유럽주니어투어에서 단식과 복식 2주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그랜드슬램 주니어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전미라‧이종민‧김선용의 못다 이룬 꿈이 모처럼 등장한 유망주들에 의해 이뤄지길 기대한다. 94년 전미라 이후 10여년의 시간과 경험이 헛되지 않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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