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뉴타운 사업 이후 분쟁 양상은 달라졌다. 건실한 주택이 재정비촉진 지구로 지정되면서 지가가 올랐고, 투기 세력의 지분 쪼개기 등으로 사업성이 악화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업성은 더욱 악화됐다. 이 때문에 원주민들은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높은 추가 부담금을 내야 했다. 적게는 1억 원에서 많게는 3억 원을 내는 상황까지 발생한 것.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안 조합원들은 뉴타운 사업에 반대하며 소송에 들어간 상태다. 반면, 여전히 뉴타운의 사업성을 믿는 주민들은 뉴타운 사업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을 주민 간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오는 1월, 뉴타운 해법을 발표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타운 진행상황에 따라 맞춤형 해법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뉴타운 문제는 쉽게 풀기 어려운 사안이다. 뉴타운 문제가 무엇인지, 왜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살펴본다. <편집자>
36년째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살고있는 박금자(68) 씨는 서울시가 뉴타운 지구 선정을 발표한 이후 마을 주민은 서로 원수가 됐다고 혀를 끌끌 찼다. 박 씨가 살고있는 지역은 신길1구역으로 지난 2008년 6월에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설립됐다.
"이 지역은 시골 동네 같아서 살기 좋았어요. 집이 다들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으니 김치를 담그면 동네 주민끼리 나눠 가지기도 하고 집에 큰 일이 있을 때면 서로 도와주기도 했죠."
그러던 동네 분위기는 뉴타운 지구에 선정되면서 달라졌다. 개발에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구청에서 뉴타운 관련, 주민설명회를 한 후, 몇몇 주민이 돌아다니며 조합설립추진위원회 동의서를 받으러 다녔다. 이들은 평소 다니지도 않던 절이나, 교회 등을 다니며 주민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반면, 반대 목소리를 내는 주민에겐 각종 음해와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 신길2구역에 붙여있는 현수막. ⓒ프레시안(허환주) |
뉴타운, 로또와 비슷하다?
박 씨가 처음 뉴타운 이야기를 들었을 땐, '뉴타운'이 뭔지도 잘 몰랐다. 구청 주민설명회에서 들은 바로는 '로또와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높은 아파트만 짓는 방식이 박 씨로는 탐탁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반대 견해를 내거나 찬성 견해를 내진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집을 부수고 아파트를 지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박 씨도 알지 못하는 사이, 추진위가 설립됐다. 추진위는 주민 50% 이상의 동의만 얻으면 설립된다.
그러면서 박 씨는 우연히 조합만 설립되면 뉴타운을 반대하는 주민이 있더라도 그대로 추진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박 씨가 이래저래 알아보니, 실제로 그랬다. 게다가 자신의 집이 없어지고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로 들어가려면 상당한 비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는 명확히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자신의 집이 재개발되면 얼마의 시세가치를 인정받는지도 알 수도 없었다.
박 씨는 약사로 일하며 번 돈을 모아 융자를 끼고 이곳에 다가구 주택을 매입했다. 약사 은퇴 후엔, 이곳에서 나오는 월세로 생활하고 있다. 박 씨는 "예전에 이곳은 공군 고위장교가 살던 주택으로 중대형 주택이 많다"며 "장교들이 빠져나간 곳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들어와 집을 여러 개로 쪼개 세를 놓고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세를 받아 생활하는 주민이 상당수라고 했다.
그나마 조합설립 단계에서 주민 반대에 부딪혀 조합은 설립되지 못했다. 박 씨는 "부동산이 한창 호황일 때는 '헌 집 주면 새집 준다'는 식으로 주민을 현혹해 동의서를 얻더니 지금은 그런 움직임도 없다"며 "지금은 많은 주민이 뉴타운의 허상을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 시업인가가 떨어진 영등포구뉴타운 지구. 하지만 뉴타운 반대 주민의 반발로 아직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
지붕에 물이 새도 고치지도 못하는 뉴타운 지구
조합이 설립되지 못했으니 자연히 뉴타운 사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주택은 함부로 고치거나 증·개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상금을 더 받으려는 집주인을 막기 위한 차선책으로 이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박 씨 집은 수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는 박 씨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박 씨는 "옆집 지붕에서 비가 새, 판을 설치하는 공사를 했더니 구청에서 45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며 "구청은 공중 촬영을 통해 집을 고치는 곳이 있는지 없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애초 뉴타운으로 설정된 지역은 주택이 낡았기 때문에 지정됐다. 하지만 지정만 해놓고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니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이 지역의 경우, 30년 가까이 된 주택이 많다. 사업이 진척되지 않으면서 슬럼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심각한 범죄도 발생하고 있다. 2010년 6월 어린 아동을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이 일어난 지역도 바로 이곳이다.
그나마 박 씨 집 옆인 신길1구역에 사는 이명자(52) 씨의 주택은 양호한 편이다. 이 씨가 사는 주택은 15년 전에 지어졌다. 그래서 이곳이 뉴타운 지구로 선정됐을 때만 해도 자신의 집은 지정 대상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래서 뉴타운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점차 뉴타운 지정 지역이 넓어지더니 어느 순간 이 씨의 집까지도 뉴타운 지구로 포함됐다. 알아보니 기존 지정구역만 개발하는 걸로는 사업성이 떨어져, 개발 범위를 더 넓히게 됐다고 했다.
박민서(가명·64)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우리 집은 만든 지 15년도 안 된 집"이라며 "우리 옆에 있는 '벌집' 건물을 재개발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까지 포함됐다"고 말했다.
박 씨는 "주변에 낙후된 주택을 개발한다는 이유로 우리 집도 뉴타운 지구로 지정됐다"며 "단순히 효율성만을 생각하는 게 뉴타운 정책이다"고 비판했다. 이 씨는 "사업 중단 이후 이 지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법으로는 매매할 수 있지만 사업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뿐더러, 뉴타운 지구로 해제되지도 않는 에매한 상황에서 누가 여길 들어오려고 하겠는가. 앉아서 피를 말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 신길9구역에서는 죽은 사람이 재개발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명부를 보면 조합설립 동의는 2009년에 한 걸로 돼 있지만 이 사람은 2008년에 사망했다. ⓒ프레시안(허환주) |
곳곳에서 진행되는 법적 분쟁
또 다른 지역에선 법적 분쟁이 쉼 없이 일어나고 있다. 신길9구역은 현재 조합설립인가처분무효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다. 공원용지(1430여 평)를 택지로 변경하고 그 지역에 무허가로 세워진 주택을 뉴타운 지역에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 재개발 지역에서 받은 인감 동의서를 그대로 뉴타운 조합설립동의서에 사용하기도 했다.
신길9구역은 뉴타운으로 지정되기 전인 2002년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받은 인감 동의서를 뉴타운 조합설립에도 그대로 사용했다고 소송을 낸 측은 주장한다.
박진석(60) 씨는 "공납공고 때는 무허가 판잣집을 지정구역으로 넣지 않았지만, 결정고시를 낼 때는 지정구역으로 고시했다"며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씨는 "이뿐만 아니라 조합 설립을 위해 인감을 받은 것 중에는 이미 죽은 사람의 인감도 들어 있다"며 "우리가 밝힌 것만 해도 상당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길12구역도 조합설립인가처분무효확인 소송 중이다. 조합설립 반대 측 주민이 문제가 되는 조합 동의서를 찾아내, 법원에 무효소송을 냈다. 이들이 찾아낸 문제가 되는 동의서를 빼면 74.65%가 된다. 조합이 설립되기 위해서는 주민 75%가 동의해야 한다.
1심 재판에서는 조합 설립이 무효라고 판정했지만 2심 재판에서는 조합 설립을 인정했다. 현재 신길12구역 조합 측은 내년 1월, 총회를 열고 사업시행인가 관련 찬반투표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반대 측은 대법원에 상고까지 한 상태다.
목적은 사라지고 주민 간 갈등만 난무하는 뉴타운
2005년 12월, 뉴타운 지구로 선정된 신길뉴타운지구는 146만9404.4㎡ 크기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총 16개 구역이다. 당시 서울시는 영등포 신길동 일대 낙후된 지역에 대한 토지의 효율적 이용과 기반시설의 확충 및 도시 기능회복을 위해 뉴타운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사업이 진행되면서 그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주민 간 갈등, 각종 소송만 난무하는 분쟁 지역으로 돼 버렸다. 이는 비단 신길뉴타운지구만이 아니다.
신길지구와 함께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된 미아, 가재울, 돈의문, 천호, 한남, 노량진, 신정 등 다른 지구에서도 이런 문제는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전체 뉴타운 사업지구에서 정도와 시간의 차이를 두고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는 요원하다. 여기에는 시행사, 조합, 세입자, 정비업체, 구청 등이 얽히고 설켜 복잡한 이해관계를 만들고 있어 사업을 중단하든 시행하든 문제는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타운 문제를 놓고 "항상 생각하고 있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라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뒷짐만 지고 뉴타운 문제를 방관만 하기엔 해당 지역 주민의 반발과 반목이 심각한 수준이다. 신길2구역 주민인 이성미(가명·58) 씨는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어 뉴타운을 진행하더니 이제와서 문제가 되니 다들 '나몰라라' 식으로 방관만 하고 있다"며 "문제가 있다면 법을 바꿔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거 아닌가"라고 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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