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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언론자유 선언한 판사들, 반갑다"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매카시즘의 망령 되살아난 정권 말기, 맞설 자는?

매카시즘의 망령들이 이명박 정권 말기의 서울 하늘을 배회하고 있다. 연예인 김제동이 10.26 서울시장 선거 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투표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띄웠다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는 보도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이보다 앞선 2~3주간은 조·중·동 등 보수우익 언론의 판사 공격이 난무했다. 판사들은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힌미 FTA에 우리의 사법주권을 침해할 요소가 들어 있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특별연구팀(TF) 구성을 대법원장에 건의했고, 이에 170여 명이 서명으로 동참했다. 이에 조중동 등은 "힌미 FTA 판사들 법관의 본분을 잊고 있다", "제 손으로 법원을 허물어뜨리고 있는 판사들"는 등의 사설로 이들 판사들을 공격했다.

또 지난 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야당 추천 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SNS를 심의하는 새 기구의 설치를 강행했다. SNS의 위력이 날로 커져가면서 제도 언론의 힘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른 것에 불안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지난 7일 서울북부지법의 서기호 판사는 페이스부과 트위터에 "오늘부터 SNS 검열 시작이라죠? 방통위는 나의 트윗을 심의하라…"는 글을 올렸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자유탄압에 항의하는 법관의 도전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보수우익의 대변지로 통하는 <조선일보>가 신문 1면에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고 <동아일보>는 "법원에 '정치판사'들이 들끓어서야"라는 사설로 서기호 판사의 글을 비난했다. 붕괴를 앞 둔 앙샹레짐(구 체제)의 단말마적 몸부림을 보는 느낌이다.

'매카시즘' 견제하는 법관들에게 '빨갱이' 낙인찍는 조중동

매카시즘은 냉전 초기인 1940~50년대에 미국 사회에서 우익 세력이 사회를 지배하기 위해 진보주의 인물들을 친(親) 공산주의의 탈을 씌워 사회의 지도층에서 몰아낸 정치적 테러리즘이었다. 매카시즘의 선봉장인 조 매카시 상원의원은 수많은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사회에서 매장시켰다. 수많은 정계, 외교계, 학계, 언론계, 연예계 (특히 할리우드) 거물들이 매카시즘의 희생자가 됐다. 그 희생자는 1만 명에서 1만 2000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보수우익 언론이 진보 민주세력을 종북좌파로 몰고 있는 것이 바로 매카시즘이다.

미국에서도 매키시즘 시대에는 공산주의자라는 증거가 없어도 공산주의자의 혐의자로 찍히면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하원 비(非)미국인위원회(HUAC)에 소환돼 충성 테스트를 받았다. 증언을 거부하면 의회 모독죄로 처벌을 받았다. 공포의 시대였다. 이 공포 정치를 방조한 것이 <허스트>나 <하원드 스크립스> 같은 보수 신문들이었다. 이때 매카시즘을 견제하고 마침내 매카시의 비민주적 마녀사냥에 종지부를 찎은 것이 미국의 사법부였다.

오늘 한국에서 용기있는 판사들이 보수언론의 매카시즘에 맞서 국가의 주권을 수호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러자 보수우익 신문들이 이들을 정치판사로 낙인찍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좀 과격한 표현을 트집잡아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있다.

조중동이 판사들을 공격하는데 즐겨 인용하는 구절이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 관리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11월22일, 이 날을 나는 잊지 않겠다"는 최은배 부장판사의 페이스북 글이다. "뼛속까지 친미적인…"란 표현은 최은배 부장 판사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다. 대통령과 한 배에서 나온 그의 친형이며 정치적 멘토인 이상득 의원이 미국 대사에게 한 말이고 대사가 미국 정부에 보낸 전문에 기록된 표현이다. 한국 국민으로서 고개를 들기 어려운 창피한 말이다.

조중동은 왜 이런 수치스러운 말을 한 대통령의 형과 그런 말이 전 세계 언론에 전파됐는데도 사과 한 마디 없는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고 이 말을 그대로 옮긴 판사를 비난하는가? 잘 못 됐어도 한 참 잘못된 것 아닌가? 이런 보도를 보고 분노했다 해서 '정치 판사'라고 한다면 정치 판사 아닐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또 한미FTA의 투자자 국가 소송문제(ISD)도 법을 가장 잘 아는 법관이 국가주권이 침해될 중대한 위험이 있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대책을 강구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왜 그런 제의를 한 판사를 정치판사로 모는가? 한국 신문 시장의 70%를 지배하는 조중동이 그렇게 겁을 주는데도 170여 명이 그런 의견에 찬성했다. 이들이 모두 정치 판사란 말인가? 사법부는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아래서 사법살인의 공범 역할을 한 전과를 후회하고 다시는 그런 치욕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제도언론의 매카시즘적 협박에도 불구하고 법관으로서 할 일,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다. 왜 이들을 정치판사로 모는가? 조중동은 회개하고 매카시즘의 멘탈리티를 벗어날 것을 촉구한다.

조중동은 ISD가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RTA)을 맺은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이미 문제가 발생했고 그래서 미국의 해병대까지 주둔하는데 동의한 호주도 ISD에는 반대했다 하지 않는가?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다 받아들인 제도라고 정당화 하려고 하는데 다른 나라가 자발적으로 동의했는지 미국의 압력으로 동의했는지도 알아 봤는가? 다른 나라가 동의하면 우리도 덩달아 동의해야 하는가? 세계 대다수 국가가 가입한 핵비확산조약(NPT).이지만 인도는 자국의 이익에 배치된다며 가입하지 않았지 않나? 미국도 자국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가입하지 않은 조약이 한둘이 아니다. 나도 한미 FTA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국익을 제대로 챙기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미정책은 친미가 아니라 종미(從美)인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조중동은 한미 FTA를 밀어붙이려는 생각에서 매카시즘 수법으로 애국적인 판사들을 겁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매카시즘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비민주적 행태이다.

매카시즘을 몰아낸 핵심, 언론과 사법부

미국에서 언론인으로서 매카시즘 퇴출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 중의 한 사람이 CBS 방송의 저명한 앵커이자 해설가인 에드워드 머로우(Edward Murrow)였다. 머로우는 1954년3월9일 자신이 진행하는 <이것이 진실이다(See it now)>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조 매카시 자신을 초청해서 그의 발언과 발언 관련 사실을 일일이 대조해 보이고 매카시가 정직하지 못하고 무모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가 조사위원회에 소환된 증인들과 저명한 미국인들에게 증언을 강요한 사실들을 밝혔다. 그리고 머로우는 프로그램 결론에서 말했다.

"우리는 이견(異見)과 불충(不忠)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고발이 곧 증거인 것은 아니며 유죄 여부는 증거와 정당한 법 절차에 의거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신앙을 깊이 살며 본다면, 우리는 서로 두려워하며 길을 걷지 않게 될 것이며 우리가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방송은 매카시 시대의 막을 내리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머로우와 같은 언론인들의 용감한 행동이 매카시즘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면 미국 법원은 일련의 판결을 통해 매카시즘을 퇴출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재판이 공산주의 혐의자 블랙리스트 작성의 폐해를 없앤 존 헨리 폴크(John Henry Faulk)사건 판결이다.

폴크는 미국텔레비전 라디오 예술인연맹(Amercan Federation of Television and Radio Artists) 노조의 좌파 행동가였다. 그런데 개인의 공산주의자 '불충' 행적을 조사하는 민간회사의 하나인 어웨어(AWARE)가 그의 행동을 추적하고 그 결과 부적격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 때문에 그는 CBS 라디오에서 해임됐다. 그래서 폴크는 1957년 어웨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희생된 사람이 많지만 폴크는 소송을 제기한, 당시로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5년 재판 끝에 1962년 재판에 이겼다. 이 판결 이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재미를 봤던 민간회사와 이 블랙 리스트를 이용하던 자들은 그들의 행동이 법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위험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행동이 계속되기는 했지만 개인의 충성 행적을 뒷조사하는 민간조직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매카시즘을 제거하는 더 고차원의 작업은 연방대법원에서 이뤄졌다. 대법원은 매카시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시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법적 공백을 메웠다. 1956년 대법원은 슬로초워 재판에서 공산주의 혐의자로 고발된 사람이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거부할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다음 해 예이츠 사건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사실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 매카시즘을 잠재우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언론 자유'를 선언하는 판사들. 반갑다

이처럼 이념적인 이유로 국민을 죄인시 히고 사회적으로 피해를 주는 매카시즘을 축출하는데는 법원의 용기있는 판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미 FTA를 둘러 싼 한국 판사들의 행동도 FTA를 넘어 앞으로 이 땅에서 시대착오적인 매카시즘을 몰아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을 예고하는 희망적인 조짐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7일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오늘부터 SNS 검열 시작이라죠? 방통위는 나의 트윗을 적극 심의하라. 심의하면 할수록 감동과 훈훈함을 느낄 것이고 촌철살인에 감탄만 나올 것이다. 앞으로 분식집 쫄면 메뉴도 점차 사라질 듯, 쫄면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 엿까지 먹게 되니 푸하하"라는 글은 충격적이면서 감동적이었다. 제도언론의 매카시즘적 언론 협박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서 판사가 한국의 암담한 언론 현실을 직시하고 판사 자리를 걸고 이에 도전하겠다는 결의를 보인 글로 느꼈다. 표현의 점잖으냐의 여부는 오늘 MB 정권하에서 한국 언론이 처해 있는 상항을 고려하면 지엽적인 문제이다. 이제 판사들까지 현 정권의 언론 탄압을 인정하고 언론자유 투쟁을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역설적으로 한국의 언론 자유를 위해서 반갑고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하겠다.

▲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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