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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국민의 손에 맡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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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국민의 손에 맡기면?"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프랑스 정치사에 획을 그은 사회당 '시민 예선'

지난 9일 프랑스에서는 내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사르코지 대통령에 맞서 싸울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 '후보 선거'가 있었다.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데 당원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이 투표에 참여하는 '시민 예선'이었다. 프랑스 역사상 일찍이 경험한 일이 없는 실험이기에 그 의미와 앞으로의 전망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

신자유주의의 수정을 주장하는 사회당의 '시민 예선'이 원만히 진행돼 좌파의 결속을 약화시키지 않고 사르코지의 보수 정권을 교체할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면 프랑스 좌파는 제5공화국 출범 이후 두 번째 집권의 기회를 갖게 될 뿐 아니라 세계의 신자유주의 흐름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르몽드>가 앞으로 프랑스 정치사는 '시민 예선'이 실시된 2011년 10월9일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게 될 것이라고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데 당 조직이 결정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당 밖에 있는 시민들에게 후보를 결정할 기회를 주는 것은 정당의 기능과 존재 이유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한 때 당내의 반발이 강했다. 특히 당권을 장악한 원로 정치인들 사이에서 그런 반대가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우익 정권에 연거푸 세 번이나 패배하여 지리멸렬한 상태에 있는 사회당이 보수 정당에 맞서 민주 정당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혁명적인 쇄신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이 젊은 당원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들은 당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시민이 대선 후보 선출에 참여하는 '시민 예선'제 도입을 주장했고 마침내 그 제안이 수락됐다. 시민이 정당의 대선 후보 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기도 했다.

"민주주의 가치를 신봉하는 시민들에게 완전히 열린 선거"

대통령 후보를 당에서 일방적으로 지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선을 통해서 선출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은 1912년부터 예선을 실시하기 시작했고 1968년 이후에는 하나의 제도로 정착했다. 이태리에서도 1990년대부터 민주당에서 예선제도를 도입해서 총리 후보를 선출했다. 프랑스 사회당도 1995년부터 대선 후보를 예선을 통해 뽑았다. 지난 2006년 사회당은 다음 해 있을 대선을 앞두고 예선을 실시했다. 결과는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여성 후보 세골렌 루아얄이 파비우스, 스트로스 칸 등 당내 원로들을 물리치고 지명돼 사르코지와 대결했다.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후보 예선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당이 9일 처음 실시한 '시민 예선'은 이태리 예선이나 미국 예선과 성격이 다르다. 이태리 예선은 총리 후보가 될 인물을 당 대표로 선출하는 선거이고 미국 예선은 대선 후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6개월에 걸쳐 각 주를 순회하며 당원이나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하며 마지막으로 전당대회에서 한 사람을 투표로 선정하는 선거다. 프랑스의 '시민 예선'은 단기간의 열띤 선거운동을 거쳐 단 한번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투표를 통해서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다. 선거인 명부에 올라있는 시민으로 "좌파의 가치를 신봉한다는 헌장"에 서명하고 최소 1유로(1600원)의 참가비를 지불하면 누구나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는 완전히 개방된 후보 선거다. 그래서 명칭도 '시민 예선'이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의 박영선 민주노동당의 최규엽 시민사회의 박원순 후보 중 한 사람을 야권 후보로 뽑는 경선에서 선거인단에 선정된 시민이 투표에 참가했다. 경선은 그 점에서 시민 예선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투표에 참가하는 시민 수가 제한돼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간단한 조건만 갖추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랑스식 '시민 예선'과 같은 개방된 시민 선거로 보기 어렵다.

프랑스식 '시민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서 투표 희망자가 서명해야 하는 "좌파 가치 헌장" 내용은 민주주의 원칙 원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좌파와 공화국의 가치를 신봉하고 자유, 평등, 박애, 정치와 종교의 분리, 정의 및 연대가 수반되는 진보의 사회를 신봉한다"는 것이 헌장 내용이다. 투표자는 투표에 참가함으로써 자신이 믿고 있는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리의 명문대 시앙스포(정치대학) 유럽연구소 명예 소장인 제라르 그렁부르 교수는 '시민 예선' 참가자의 수가 많고 적은 것보다도 '가치 헌장' 서명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프랑스인은 역사상 처음으로 좌파 가치를 지지한다는 헌장에 서명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기회를 가지며 이것은 우리의 정치생활에서 투표의 숨은 의미를 신성화하는 진정한 혁명"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 ⓒ프랑스 사회당

'좌파의 단합, 국민의 손에 맡기면?'

사회당의 대선 후보 '시민 예선'은 우리의 야당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프랑스 좌파는 제5공화국 53년 동안에 딱 두 차례 10년간 집권했을 뿐이다. 국민의 이념 분포를 보면 좌파가 결코 소수가 아니다. 그러나 보수에 비해 좌파는 항상 여러 갈래로 분열돼 있어 투표에서는 늘 소수 단위가 된다. 그래서 5공화국 출범 후 우파 집권 23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회당의 미테랑은 좌파는 분열하면 망하고 단합해야 집권할 수 있다는 유명한 교훈을 남겼다. 사회당 제1서기로 우파의 시라크 대통령 아래서 총리를 지낸 사회당의 조스팽(1997-2002)은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론조사로는 2차 투표까지 가면 승리 가능성이 있었으나 좌파 정당 후보들의 난립으로 1차 투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시민 예선'의 도입으로 좌파가 분열해서 사회당 후보가 1차 투표에서 탈락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최근 사르코지의 지지도가 32%까지 추락했다. 2007년 집권 이후 최저 기록이다. 그의 재선 전망이 아주 흐리다. 좌파가 단합만 하면 사회당 후보가 내년 대선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을 누르고 재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좌파가 단합을 잘 못하는 것은 프랑스나 한국이나 별 차이가 없다. 따라서 좌파 정당에 후보 단일화 작업을 맡기는 것보다는 국민이 참가하는 투표에 그 결정을 맡기는 것이 성공률이 훨씬 높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 예선'은 한국 좌파 정당들이 대선을 앞두고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시민 예선'의 이변, 거물의 탈락과 새로운 스타의 등장

9일 1차 예선 투표에는 6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사회당 출신 5명-마르틴 오브리(여) 당 제1서기와 프랑수아 올랑드 전 제1서기, 아르노 몽트부르 하원의원, 20007년 대선 후보 세골렌 루아얄 및 마뉘엘 발스-과 좌파 급진당의 장 미셸 베일레였다. 지난 5월 뉴욕의 호텔 여종업원 성폭행 사건으로 낙마할 때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주목 받던 국제통화기금 총재 스트로스 칸이 경쟁에서 탈락함으로써 1차 투표에서 50%를 득표한 후보는 없었다. 9일의 투표 결과는 올랑드 39%, 오브리 31%, 몽트부르 17%, 루아얄 7%, 발스 5.6%, 베일레 0.7%였다. 50%를 넘는 득표자가 없을 때는 2차 투표를 실시해야 하는 선거 규정에 따라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올랑드와 오브리가 오는 16일 2차 투표에서 맞붙는다. 여기서 승리한 자가 내년 대선에서 사르코지와 엘리제 궁 주인 자리를 겨루게 된다.

이번 투표에서 이변은 4년 전 예선에서 사회당 당원의 60% 지지를 얻어 대선 후보로 사르코지와 겨뤘고 그 후에도 유력한 대선 후보로 각광을 받아 온 세골렌 루아얄이 초라한 7%의 득표로 4위를 차지한데 그친 것이다. 비참한 결과에 루아얄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정치인의 인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실감케 했다.

또 하나의 이변은 지금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아르노 몽트부르가 '시민 예선'의 스타로 부상하면서 17%를 얻어 캐스팅 보트를 쥔 제3의 사나이로 등장한 것이다. '반세계화의 선수'를 자처하는 몽트부르는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2차 결선 투표에서 사회당 대선 후보의 자리를 다툴 올랑드와 오브리 후보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고 그가 제안한 은행에 대한 감독권 강화와 저축은행과 투자은행 분리정책, 산업보호 정책, 제5공화국을 쇄신한 제6공화국 체제 수립 정책에 관해서 두 후보의 답변을 요구한 것이다. 만약 자기 정책을 수락하지 않으면 2차 투표에서 자기를 지지한 17%의 유권자들에게 반대투표를 권고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서한이다. 2차 투표의 결과를 불확실하게 하는 검은 구름이다. 따라서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당 내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나 모처럼 각광을 받은 '시민 예선'의 효과가 거품이 될 수 있다.

<르몽드> "'시민예선' 대성공"

<르몽드>가 투표 다음날인 10일자 사설에서 지저한대로 사회당의 '시민 예선'은 대성공이었다. 원래 사회당은 100만 명의 시민이 투표에 참가하면 성공으로 간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무려 250만 명의 시민이 투표했다. 그러나 여당(UMP)의 코페 사무총장은 이것은 유권자 100 명 중에 네 사람이 참가한 꼴이라면서 대단한 것이 못된다고 평가절하했다. <르몽드>는 코페의 부정적 논평을 대통령의 생각을 그대로 옮긴 것 같으나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고 비판하고 예선이 관행이 된 미국에서도 예선 참가자는 8%에서 10%에 불과하다며 프랑스 유권자 4450만 중에서 250만이 투표했다면 6%의 유권자가 투표한 것으로 사회당의 실험이 성공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르몽드>는 또 한 사회당이 좌파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으며 지금까지 대선 후보를 선택해 온 당 기구의 역할에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중대한 민주적 쇄신을 도입했다고 칭찬했다.

<르몽드> 사설은 이제 프랑스 정치는 2011년10월9일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게 될 것이라고 그 의미를 평가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입증하는 증거가 우파가 좌파의 시민예선을 비판하면서 좌파의 현대적 참여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피용 총리와 장 피에르 라파랑 전 총리, 코페 사무총장 까지도 2017년에는 우파도 예선을 통해 대선 후보를 지명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며칠 있으면 16일 올랑드와 오브리 두 후보에 대한 2차 투표가 실시되고 여기서 승리한 사람이 내년 대선에서 사르코지의 재선을 막는 역사적 과업을 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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