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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조선의 꿈, 배신자는 누구인가?
[해방일기] 1945년 12월 14일
독립동맹 집행위원회에서 결의한 "동맹 목전의 정치 주장"이 12월 21일에야 이남 언론에 입수되어 보도된 모양이다. 자료를 입수하고도 출처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11일에" 채택한 것이 "연안으로부터" 전달되었다고 모두에 소개했는데, 자료 끝에는 "1945년 11
김기협 역사학자
2010.12.14 08:24:00
'친일파'와 '협력자'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해방일기] 1945년 12월 13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④
일전 회견에서 "통일운동에서 민족 반역자 제외의 선후 문제는?" 하는 물음에 선생님은 "나는 그런 분자는 먼저 제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하셨지요. 그런데 김구 선생은 귀국 이튿날 회견에서 "爲先 통일하고 불량분자를 배제하는 것과 배제해 놓고 통일하는 것의 두
2010.12.13 08:44:00
'공산당'이라고 다 똑같은 공산당이 아니다!
[해방일기] 1945년 12월 10일
12월 12일 공산당 박헌영이 민족 통일 전선, 즉 정치적 통합 문제와 임시정부에 관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중 임시정부에 관한 담화 내용은 이렇다.
2010.12.10 08:25:00
부도덕한 자들의 '물귀신 작전'
[해방일기] 1945년 12월 9일
같은 송진우가 했다는 말이다. (1)은 1944년 가을 안재홍이 찾아가 독립 준비를 위한 활동을 함께 하자고 권했을 때 한 말이고, 그저께도 인용했던 (2)는 1945년 12월 중순 임정과 한민당 사람들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2010.12.09 08:22:00
미군 vs 소련군…진짜 '깡패'는 누구였나?
[해방일기] 1945년 12월 8일
8월 15일 이후 전국적으로 각 지방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되어 올라온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이 8일 서울 시내 천도교대강당에서 오전 11시 35분부터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날 대회장에는 북위 38도 이남북을 통하여 전선 13도로부터 모여온 농민조합 대표자 670명과 경향에서
2010.12.08 08:43:00
임정 유혹한 '요정 파티', 돈은 누가 댔을까?
[해방일기] 1945년 12월 7일
11월 1일의 독촉 회의에서 이승만이 한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청년 시절 이후 미국에서 살아오면서 공리주의 사고방식에 길든 그이기에 돈 얘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으리라는 점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가 '실력'을 숭상하는 자세는 그를 민족주의 지도자로
2010.12.07 08:22:00
들통 난 이승만의 '들러리 수법'
[해방일기] 1945년 12월 6일
李承晩을 중심으로 민족 통일 전선을 목표로 하고 결성된 獨立促成中央協議會는 月餘를 두고 자체의 조직 확대와 기능 강화를 위하여 예의 노력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정돈 상태에 있는 듯하더니 임시정부 영수들의 환국을 계기로 하여 다시금 활발한 동
2010.12.06 08:13:00
4700리 길을 걸어 귀국한 '독립 동맹'
[해방일기] 1945년 12월 3일
12월 8일자 <해방일보>에 김태준의 회견 기사가 실렸다. <조선가요집성>(1934), <청구영언>(1939), <고려가사>(1939) 등 뛰어난 업적을 낸 국문학자 김태준(1905~1949년)은 경성제대 강사로 있다가 1941년 경성콤그룹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1944
2010.12.03 08:35:00
잔치 다음날 집에 돌아온 영웅들
[해방일기] 1945년 12월 2일
임시정부 요인 제2진이 입국했다. 의정원 홍진 의장과 외무부장 조소앙, 군무부장 김원봉, 재무부장 조완구, 법무부장 최동오, 내무부장 신익희, 국무위원 조성환, 황학수, 장건상, 김붕준, 성주식, 유림, 김성숙, 조경한 등이었다. 제1진으로 입국한 요인은 주석 김구, 부주
2010.12.02 11:02:00
'인민공화국', 왜 그 이름에 집착했나?
[해방일기] 1945년 12월 1일
9월 8일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그 직전에 설립된 조선인민공화국(인공)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가 10월 10일 아놀드 군정장관의 인공 비난 성명이었다. 이 성명은 내용의 옳고 그름에 앞서 난폭하고 저열한 표현으로 당시 군정 당국자들의 몰지각
2010.12.01 08:3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