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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전용 열차 강간 사건
[해방일기] 1947년 1월 9일
1947년 1월 7일 밤 9시경 익산 근처를 지나던 목포 발 서울 행 호남선 열차 안에서 여러 명 미군이 여러 명 조선인 부녀자를 강간한 사건은 미군정 기간 중 가장 충격적인 만행사건의 하나였다. 이 사건은 1월 11일자 여러 신문에 처음 보도되었다. "자기들 전용차에서 만행-
김기협 역사학자
2012.01.09 08:48:00
"분단만은 안 돼!" 백범께서 나서주셨으면…
[해방일기] 1946년 1월 6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런데 '밝았다'는 말을 새해에 붙여서 쓰는 것은 밝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려는 오래된 풍속인데, 금년에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군요. 1년 전 새해를 맞을 때는 해방된 그 해에 바로 건국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은 마음 한편에 있더라도, 이제
2012.01.06 10:33:00
좌익도 우익도 하지를 싫어해!
[해방일기] 1946년 1월 4일
하지 미군 사령관은 1월 4일 주둔군 사령관의 책임과 권한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의 직접 목적은 지난 연말 개원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입법의원, 입의)의 위상을 밝히는 것인데, 16개월 전 진주 당시의 예상보다 점령이 길어져 3년차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점령의
2012.01.04 10:44:00
장준하는 왜 김구를 떠났을까?
[해방일기] 1947년 1월 2일
김구 담 : "오랫동안 해외 생활에서 국내 사정을 잘 모르고 있다가 지난 1년 동안의 국내 생활에서 체험하고 느낀 바를 간단히 요약해서 말한다면, 40년간의 노예 생활에서 전례 없는 심각한 민족적 고난과 비애를 경험한 우리 민족이 아직도 민족적 자각이 부족하다는 것이
2012.01.02 10:10:00
베트남 독립 전쟁에 환호한 조선!
[해방일기] 1946년 12월 30일
을사조약(1905년) 직후 조선에서 <월남망국사>란 책이 유행했다. 무술변법(1898년)에 실패하고 일본에 망명한 양계초가 소남자(巢南子)란 베트남인과 만나 베트남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대화록을 현채가 번역하여 1906년 보성관에서 간행한 책이다. 국권을 상
2011.12.30 12:28:00
호치민이 '민족 반역자' 소리를 들었던 이유는?
[해방일기] 1946년 12월 28일
1946년 12월 19일 제1차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다. 1945년 8월의 일본 항복 이후 베트남의 사태 진전을 한 차례 훑어본다. 이 시기 베트남의 조건과 경험에는 조선과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어서 그 비교를 통해 두 나라가 함께 겪던 국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2011.12.28 10:25:00
'충무공 제삿날' 시작한 한국 최초의 의회?
[해방일기] 1946년 12월 26일
6월 29일 러치가 하지에게 제안하는 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미군정의 입법의원 설치 구상은 애초 11월초 개원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그 목표에 따라 전국적 소요 사태에도 불구하고 10월 하순 민선 의원 선거를 강행했다. 그러나 선거의 실체가 워낙 부실했고 극심한 좌익
2011.12.26 08:10:00
얼어 죽는 '노숙 여인' 방치한 경찰
[해방일기] 1946년 12월 23일
경무부 수사국장으로 있다가 12월 초 조병옥에게 파면당한 최능진은 두 차례 성명서를 통해 자기주장을 개진하다가 명예 훼손죄로 검사국에 입건되기까지 했다. 그가 11월 20일 조미공위에 제출한 보고서는 신문에 보도되지는 않고 <24군단 역사 파일(XXIV Corps Historic
2011.12.23 10:28:00
"요정을 개방하라!" "우린 어디서 놀라고?"
[해방일기] 1946년 12월 21일
실권을 미국인들이 갖고 있다 하여 스스로 "절름발이 시장"이라며 무책임의 극치를 달리던 김형민 서울 시장이 모처럼 한 가지 해냈다. 엄동에 집 없이 떨고 있는 전재 동포를 수용하기 위하여 서울시에서는 그 동안 적산 요리점의 개방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20일 김형민 서
2011.12.21 10:11:00
거리의 똥 치웠을 뿐인데…경찰 "너 좌파지!"
[해방일기] 1946년 12월 19일
지난 11월 11일자 일기에서 입법의원 이야기를 하다가 그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너무나 재미있는 당시의 기사 하나를 소개한 것이 있다. "넘쳐흐르는 분뇨는 누가 치우나?-'나는 책임질 수 없다.'-김 시장의 무성(無誠)한 답변"이란 제목의 이 기사를 다시 올린다.
2011.12.19 10:2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