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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애국자' 혹은 '정치꾼'
[해방일기] 1947년 2월 3일
백기완은 <해방 전후사의 인식 1>에 수록된 "김구의 사상과 행동의 재조명"에서 김구를 극단적으로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글 모두에서 김구의 자주 평화 통일 노선의 "과오와 불철저"를 지적한 "이 땅에서 숨 쉬고 사는 어느 지식인"을 비판하며 "백범처럼 생명을
김기협 역사학자
2012.02.03 10:34:00
천도교청우당이 "조선노동당의 외곽 단체"?
[해방일기] 1947년 2월 1일
요즘 들어 천도교청우당(청우당)에서 눈길이 가는 성명을 자주 내놓는다. 2월 1일에는 이런 성명이 나왔다. "미소공위가 재개될 가능은 이때에 있어서 국내 국외의 일부 완매한 분자들이 호응하여 우리 민족에게 유리한 정세를 악화시키려는 음모를 활발히 전개시킴과 함께
2012.02.01 08:02:00
"중도파는 반역 집단" 목소리 높인 이들은?
[해방일기] 1947년 1월 30일
1월 29일 좌우합작위원회(합작위)에서 합작위의 조직 확대에 관한 담화를 발표했다. "일반 대중과 각 방면 지도자들은 벌써부터 현 합위의 조직 확대 내지 합작 진영 조직의 필요를 역설하고 있으나 본 합위는 합작 통일의 본의와 정반대 결과, 즉 좌우 세력을 배척하는 모종
2012.01.30 10:14:00
"뼛속까지 친미파" 이명박의 원조는 이승만!
[해방일기] 1947년 1월 27일
브루스 커밍스는 1946년 말까지의 조선 상황을 다룬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제1권) 여러 대목에서 하지 사령관의 어리석음과 무능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런데 1947년 이후의 상황을 다룬 제2권 초입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경우 1947년에 이뤄진 결
2012.01.27 08:19:00
맛만 보고 도로 빼앗긴 '설날'
[해방일기] 1947년 1월 25일
"해방 후 첫 번의 음력 설" 해방 후에 처음 맞는 구정, 이 날은 시내에 있는 각 관서, 회사, 학교, 신문사도 전부 쉰다. 조선 사람은 과거 이 구정을 맞이하려고 애를 썼으나 일본 제정은 구정 폐지를 강요해서 한 번도 우리 '설'이라고 즐겨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2012.01.25 14:21:00
'우익의 적'이 된 '우익' 김규식
[해방일기] 1947년 1월 20일
입법의원의 1947년 첫 회의는(제2회 제1차) 1월 6일 열렸다. 그 회의에서 박건웅 외 12인의 의원은 정치범 석방 건의안을 제출했다. 지난 가을 이래 많은 좌익 인사들의 체포와 수배로 인해 입법의원 선거를 비롯한 정치 활동이 원활치 못한 문제는 누구나 아는 것이었다. 정
2012.01.20 09:55:00
반공 친일파의 대한민국 지배가 시작되다!
[해방일기] 1947년 1월 18일
철도 운임이 또 올랐다. 1월 15일부로 3등 여객 운임을 킬로미터 당 40전이던 것을 1원으로 하는 등 2.5배로 올린 것이다. 작년 3월 25일에 두 배로, 5월 1일에 다시 두 배로, 그리고 12월 1일에 또 두 배로 올린 것이었으니, 1년이 안 되는 사이에 네 차례에 걸쳐 스무 배
2012.01.18 10:35:00
'분단' 건국 위해서 이승만과 손잡은 김구?
[해방일기] 1947년 1월 16일
정병준은 <우남 이승만 연구>에서 1946년 12월 이승만이 미국으로 떠날 때의 상황을 서술한 절에 "이승만-김구-하지의 동상이몽"이란 제목을 붙였다. 당시 남조선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세 사람이 다가오는 변화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그런대로
2012.01.16 07:23:00
"경찰은 영웅, 애국자는 공무원!" 시민의 반응은?
[해방일기] 1947년 1월 13일
서울 시내에 며칠 전부터 괴 삐라가 무수히 나붙기 시작했고, 한 청년 단체는 자기네 소행이 아니라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경찰진 예찬 삐라 출처 밝히라 성명" 최근 시내에는 "영웅 장택상, 애국자 조병옥"의 위대한 치적을 예찬한다는 삐라가 무수히 붙었는데 13일 한국청
2012.01.13 08:38:00
하지의 '변절'에 분노한 반탁 세력
[해방일기] 1947년 1월 11일
군정청 공보부는 미소공위 속개에 관해 치스챠코프 소련군 사령관이 하지 미군 사령관에게 보낸 1946년 11월 26일자 편지와 하지가 치스챠코프에게 보낸 12월 24일자 편지 내용을 1월 11일 발표했다. 앞서 1946년 11월 7일에는 8월 12일자 하지의 편지, 10월 26일자 치스챠코
2012.01.11 08: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