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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과 식민주의, 노예제, 유대인 해방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8>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⑨
카리브 식민지와 관련해 혁명가들은 식민지 해방이나 노예제, 노예무역의 폐지에 전혀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노예해방은 카리브 식민지들이 영국의 손에 넘어갈까봐 취한 궁여지책에 불과한 것이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운 것은 흑인 노예들이었지 혁명가들은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2008.06.27 11:12:00
프랑스 혁명기의 문화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7>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⑧
문화와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려는 혁명기의 노력은 일부 살아남은 것도 있으나 테르미도르의 반동과 함께 대부분 자취 없이 사라졌다.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급진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종교문제가 특히 그렇다.
2008.06.20 12:03:00
프랑스 혁명과 자본주의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6>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⑦
1793년의 봉건제 해체를 포함한 혁명기 농촌사회의 변화는 자본주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봉건제 해체는 농촌사회의 토지소유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농민들이 당시까지 영주들에게 내던 여러 공납이나 부담을 면제 받음으로써 자신들이 경작하던 땅을 이제 직
2008.06.13 16:19:00
프랑스혁명과 봉건제 폐지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5>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⑥
맑스주의 역사가들에게 봉건제 내지 영주제의 폐지는 매우 중요하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봉건적 생산양식의 청산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에서도 봉건제 폐지를 통해 구체제를 파괴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를 위해 필수
2008.06.06 16:17:00
민주주의인가, 독재정치인가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4>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⑤
혁명에 의해 새로운 사회의 기준이 된 것은 무엇일까. 그 가장 중요한 것이 재산이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사회적 특권이 사라진 데 대해서는 불만을 느꼈으나 크게 잃을 것이 없었다. 소수의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귀족들이 망명을 했을 뿐 대부분의 귀족이 뒤에 남은 것은
2008.05.30 08:23:00
프랑스 혁명은 계급투쟁인가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3>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④
프랑스혁명을 귀족계급을 타도한 부르주아 혁명으로 보는 것은 맑스주의자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일이다. 그것을 통해 프랑스가 봉건적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르주아 혁명으로서의 프랑스혁명은 프랑스사에만
2008.05.28 07:39:00
수정주의 해석의 발전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2>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③
최근 2, 30년 사이의 프랑스혁명사 연구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맑스주의적 해석이 삽시간에 거의 붕괴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연구가 지나치게 맑스주의 도식에 의존함으로써 역사현실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05.21 07:18:00
맑스주의적 해석이란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1>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②
맑스주의적 해석은 프랑스 혁명을 앞에서 말한 대로 새로 흥기한 부르주아 계급과 전통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귀족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으로 본다. 따라서 부르주아 계급의 흥기가 혁명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물론 르페브르는 혁명에서 농민의 역할을 중시했고, 나중에
2008.05.16 08:15:00
프랑스 혁명의 두 얼굴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0>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①
20세기 전반에서 3/4분세기까지 그것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사회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세력을 확장한 사실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 온 것이 대체로 맑스주의적 해석이다. 반면 80년대 이후에는 수정주의적 해석이 점점 세력을 확대하며 지금은 오히려 맑스주
2008.05.14 08:12:00
근대 유럽과학의 절대화는 피해야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9> 근대 유럽 과학의 발전 ⑦
따라서 서양과학과 비서양과학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서양의 우월을 이야기하는 데는 그럴듯해 보이나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이 서양인이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17세기 이후 유럽과학의 발전을 유럽인의 창의성 탓
2008.05.09 11:10:00